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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192시간 필리버스터로 테러방지법 반대했던 의원들의 침묵

 “저는 이 시간, 테러를 빙자한 전국민 감시법을 막아 헌법의 가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국회에 있습니다” (진선미 의원)
“모든 길은 국정원으로 통하는 뻔뻔한 법입니다. 필연적으로 다른 기관의 영역을 침범하게 될 것입니다.” (유승희 의원)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장 연단의 마이크에서는 24시간 쉴 새 없이 야당 의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 강행 처리에 나서자 야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다.
대테러센터를 설치하고, 국가정보원에 정보수집권과 추적권을 부여하는 것이 테러방지법안의 골자였다. 야권에서는 법안 내용 중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 및 위치ㆍ통신이용 정보 수집이 인권 침해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는 무려 192시간 27분동안 이어졌고, 세계 의회사의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로 기록됐다. 하지만 법안은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직후 새누리당이 단독 처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9일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1년 3개월 전 국회를 떠오르게 했다. 서 후보자는 청문회에 앞서 서면답변서를 통해 테러방지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민주당에선 한마디라도 정책적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청문과정은 싱겁게 진행됐다.  
민주당에서 서 후보자의 테러방지법 입장에 대해 질의한 것은 청문회가 시작되고 6시간 가량 지난 오후 4시쯤이었다. 이인영 의원이 “(서 후보자는)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는데, (법안 찬성 입장은) 인권 침해 등을 가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개선하는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자, 서 후보자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 의원은 “인권침해 소지 혹은 반민주적인 작동원리로 근거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엄격히 자제하고 국정운영을 이끌어가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서 후보자는 “철저히 동의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훈시’에 가까운 2번의 문답 외엔 더이상 테러방지법 찬성 입장에 대해 따져묻는 의원이 없었다.
  
지난해 필리버스터를 주도했던 민주당 의원들도 별다른 문제 의식이 없었다. 당시 연단에 섰던 26명의 민주당 의원 중 20대 국회에서도 활동 중인 10명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당시 5시간 20분 동안 반대했던 유승희 의원은 “정확한 전후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서 후보자가 국정원장이 된 후 논의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0시간 33분간 발언했던 이학영 의원은 “근본적인 인권 침해 요소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서 후보자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며 다소 곤혹스러워했다.  
3시간 8분간 발언했던 안민석 의원은 “그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현재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 외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박영선ㆍ진선미ㆍ이종걸 의원은 전화 통화가 어려워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서 후보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제세 의원 뿐이었다. 그는 “우리 당이 테러방지법에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국민들의 성원도 얻었는데, 국정원장 후보자가 찬성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당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필리버스터에 나선 38명의 의원들은 연단에 오를 때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국민은 거리 투쟁 대신 국회 안에서 ‘합법적’으로 법안 저지에 나선 야당 의원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의 개정안을 마련하고 조속히 통과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20대 국회가 들어선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30일 현재까지 발의된 테러방지법 개정안은 1건이다. 무소속 윤종오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의원들은 아직까지 아무도 발의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소속이 바뀌면 국정 철학도 바뀌는 것인지 묻고 싶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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