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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 정부 탈원전 드라이브에 혼란 빠진 영덕군 주민들…"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고부터는 동네가 한참 뒤숭숭했니더(했습니다). 주민들이 전부 벽에 금이 가고 마당이 내려앉아도 곧 팔릴 집을 고쳐서 뭐하겠나 싶어 놔뒀는데, 이제 와서 안 짓는다고 하면 우짭니꺼(어찌합니까)!"  
 

천지원전 건설계획에 뒤숭숭했던 경북 영덕
"수년간 보상 기다리며 집 수리도 안했는데"

"이제 와서 탈원전 정책 추진하겠다니 황당"

지난 2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마을회관. 문재인 정부가 '탈(脫) 원전'을 강조하면서 원전 건설이 무산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10여 명의 주민들이 일제히 불만을 쏟아냈다. 주민들은 입을 모아 지지부진한 원전 건설 사업을 비판했다. 한때는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던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새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뭘까.
천지원전 건설사업이 추진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전경. 영덕=김정석기자

천지원전 건설사업이 추진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전경. 영덕=김정석기자

 
지금 영덕 주민들은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후 화력발전소의 일시 가동중단을 지시한 데 이어 탈 원전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원전 건설 계획에 발맞춰 경북도가 정부에 제안한 원자력병원·원자력테마파크 건설사업도 멈춘 상태다. 지난해 경주 지진 등으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영덕군은 원전 관련 업무를 중단했다.
 
영덕읍 석리는 인근 노물리, 축산면 경정리 등과 함께 정부가 천지원전을 건설하기로 한 부지다. 2008년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때부터 추진됐고,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건설사업이 확정됐다. 2029년까지 신규 원전 2기를 짓기로 했다. 324만여㎡ 면적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영덕 주민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천지원전 건설준비실'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에는 마을 주민들끼리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주민 상당수가 종사하고 있는 미역 생산업에 피해가 갈 것이라며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원전 건설로 보상을 받길 원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2015년 11월엔 원전 건설 여부를 놓고 주민 찬반투표를 하면서 충돌했다. 전체 유권자 3만4432명 중 32.53%인 1만1201명이 투표에 참여해 주민투표법상 유효 기준에 미달, 뚜껑조차 열지 못했다. 수년간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결국 원전이 지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경북 영덕 천지원전 건설부지. [자료 네이버지도]

경북 영덕 천지원전 건설부지. [자료 네이버지도]

 
그러면서 주민들은 원전 건설에 따른 보상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석리마을회관에서 만난 구춘옥(70·여)씨는 "지금 동네가 엉망진창이다. 수년 동안 수리도 하지 않고 보상만 기다리고 있었다. 원전을 짓지 않더라도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춘희(74·여)씨는 "이곳에 19살 때 시집을 와 50여 년을 살았다. 원전을 짓겠다고 나가라고 할 때는 아쉬움도 컸지만 어렵게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하니 이제는 다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보상에는 3~4군데 가구만 보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마을회관에 있던 김모(74)씨는 "원전 건설사업 추진에 앞장선 주민 일부만 토지매입에 동의해 보상을 받은 상태"라며 "대부분 주민들은 눈치만 살피다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 천지원전건설준비단은 지난해 7월 매입공고에 들어가 전체 부지 중 18% 정도를 매입한 상태라고 한다.
 
반면 원전 건설이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이른바 외지의 '투기성 자본'은 일찌감치 보상을 챙겼다고 주민들이 주장했다. 최근 34세대가 건축허가 신청을 냈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이보다 더 일찍 들어온 투기꾼들이 이미 수십 채의 집을 지은 뒤였다. 60대인 마을주민은 "마을 곳곳에 들어온 펜션이나 무늬만 단독주택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실제 천지원전 건설예정부지 곳곳엔 컨테이너로 급하게 지은 듯한 건물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천지원전 건설사업이 추진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 들어선 펜션 건물. 영덕=김정석기자

천지원전 건설사업이 추진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에 들어선 펜션 건물. 영덕=김정석기자

 
원전 사업을 의욕적으로 진행해온 경북 울진군과 경주시 공무원들도 긴장하고 있다. 현재 신한울원전 1·2호기를 건설 중인 한수원은 이달 착공을 앞두고 있었던 울진 신한울 원전 3·4호기에 대한 종합설계용역을 중단했다. 2012년 설계수명 30년을 다했지만 연장운영 중인 경주 월성원전 1호기도 운영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경주시민 2167명이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처분 무효확인 행정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항소했고 다음달 5일 항소심이 열린다.
 
경북도는 정부의 원전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북은 전국 원전 25기 중 12기가 위치한 지역이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경주)도 운영 중이다. 2028년까지 원자력 발전과 연구·생산·실증을 복합한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세우기도 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덕=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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