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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떠도는 청소년 단순 쉼터 아닌 스스로 일어서게 도왔죠

“잘했다. 축하하고 정말 대견하구나.”
 

오수생 푸른꿈청소년상담원장
삶이 바뀌는 교육, 때 놓치면 안 돼
자활카페 열고 대안학교까지 운영

경기도 용인 풍덕천동에 위치한 ㈔푸른꿈청소년상담원의 오수생(68) 원장은 가출 청소년이었던 김모(19)군으로부터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국내 한 식품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채용됐는데 6개월 교육 뒤 이 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김군은 상담원에서 운영 중인 가출 청소년 보호·지원시설인 푸른꿈청소년쉼터 출신이다. 5년 전 가정이 해체되면서 오 원장과 인연을 맺었다. 쉼터에서 생활하며 바리스타를 꿈꿨는데 이제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 다.
 
오수생 ㈔푸른꿈청소년상담원 원장(앞줄 가운데)이 대안학교 교사, 학생들과 함께했다. 6년여간 한국청소년지도자연합회장을 맡은 그는 국내 청소년 쉼터의 어려운 여건 등을 정부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오수생 ㈔푸른꿈청소년상담원 원장(앞줄 가운데)이 대안학교 교사, 학생들과 함께했다. 6년여간 한국청소년지도자연합회장을 맡은 그는 국내 청소년 쉼터의 어려운 여건 등을 정부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14년 전 남 부럽지 않던 중소기업 사장에서 청소년 돌보미로 변신한 오 원장의 인생 2막 중 한 장면이다. 그는 1998년 교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모의 학대나 가정해체 등으로 인한 위기 청소년들의 아픈 삶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려 서울 양재동 자택 등을 기꺼이 처분한 후 이 길을 선택했다.
 
당시 결혼 12년 만에 어렵게 얻은 큰아들 영광(32)씨가 고3이었다. 아내 이영희(64)씨의 만류에도 결국 가족들을 설득했다.
 
쉼터 운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상실·절망감을 맛본 가출 청소년들은 닫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다가갈수록 오히려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또 청소년 문제는 노인이나 장애인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앙·지방정부의 정책적 관심, 예산지원도 소홀했다.
 
하지만 오 원장은 “‘내 이름이 재수, 삼수도 아닌 오수생 아니냐.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보자’는 진정성에 아이들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더라”며 “일일 찻집, 쉼터 청소년들의 그림 작품전시회 등 행사로 독지가의 관심을 이끌었다. 부족한 운영자금의 단비였다”고 떠올렸다.
 
지금까지 쉼터를 거쳐간 가출 청소년만 1000여 명. 그는 의식주만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2007년 쉼터 인근에 150여㎡ 크기의 청소년 문화공간 ‘그린비전하우스’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재능기부를 통한 바리스타 교육 등이 이뤄진다. 그린비전하우스 한쪽의 카페 ‘그린나래’의 수익금은 쉼터 청소년의 자립기금으로 쓰인다. 오 원장은 2년 전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재능기부를 이끌어 내 청소년 자활카페인 ‘더드림’도 문을 열었다. 대안학교인 ‘푸른꿈보금자리학교’도 7년째 운영 중이다. 오 원장은 “청소년 교육은 타이밍이다. 질풍노도(疾風怒濤)로 대변되는 청소년은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너무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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