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론]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은재호한국행정연구원선임연구위원

은재호한국행정연구원선임연구위원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거대한 변화를 요약하면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적폐 청산이 국민 통합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적폐가 청산된 그 지점에서 통합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폐 청산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국민 대통합의 시대를 여는 전제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적폐 청산과 국민 대통합을 같은 반열에 나란히 올려놓고 추진하는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양자의 관계가 반드시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폐 청산이 또 다른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이 경쟁과 배제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 투쟁의 도구로 전환되며 다름과 차이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그 자체가 적폐가 되었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수행된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적폐가 된 까닭이 무엇인가. 국정교과서와 블랙리스트를 넘어 권력 사유화에 이르기까지, 적폐 청산으로 시작되었던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규정하는 과정과 절차 모두를 특정 소수 집단이 독점해 비극적 결말을 자초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 정부가 국정 방향과 국정 과제를 정할 때 광화문광장에서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통합 정부 5대 실행 과제’는 시민 원탁회의 등 대국민 직접 소통의 필요성을 적시하고, 국론 통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제안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예정된 개헌에 관한 논의도 국민 참여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한다.
 
참여와 숙의를 결합하는 공공토론은 ‘경쟁’이 아니라 ‘경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합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당정치에 기반을 두는 대의민주주의의 당파적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다. 또 주제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의사를 표출하는 통상적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완해 숙고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심의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참여자들이 누리게 될 정치적 효능감 증대는 덤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끼리’ 즐기는 이벤트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여기에는 참여의 포괄성과 대표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 두 가지가 없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잔치’가 될 뿐이다. 토론자를 선정할 때 특정 단체에 소속된 회원들을 대상으로 알음알음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연령·지역·직업별(또는 소득별) 특성을 고려하는 할당표본추출법을 도입하면 두 가지 전제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
 
결과의 수용성은 절차의 공정성에 비례한다. 토론을 통해 도출한 결과에 참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할 경우, 그를 통해 도출된 의견을 수용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또 이 과정에서 정부가 공정한 심판자로 기능했다고 판단되면 내용에 대한 찬반 의견과 무관하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사회 갈등이 격화되는 것을 예방할 뿐 아니라 사회의 응집성도 높일 수 있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무너뜨린 역사적 전환점에서 통합을 증진하며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명백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공공 토론을 진행하고 최대공약수에 기초해 정책을 만드는, 건강한 공론장 형성이 답이다. 내년 6월에 예정된 개헌을 주제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첫 시도가 될 수 있다. 전국 지방의회 단위에서 우리 국민이 원하는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수렴한다면 우리 국민이 원하는 대한민국을 가장 포괄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토론을 거쳐 개헌안을 만든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원하는 내일의 대한민국을 가장 집약적으로 헌법에 담아낼 수 있다.
 
호주(1999년)는 입헌군주제와 공화제 사이의 기로에 섰을 때, 유럽연합(EU·2007년)은 유로 통화 체제를 선택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대규모 공공 토론을 조직해 정제된 민의를 수렴했다. 헝가리(2008년)는 실업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방안을 국민들에게 물었고, 일본(2011년) 역시 광우병으로 인한 식품안전 정책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정책을 공공 토론에 부쳤다. 국가적 위기의 한복판에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기술은 사회적 합의를 겨냥하는 숙의 토론이었다.
 
참여의 대표성과 포괄성을 보장하는 한편 논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공공 토론을 통해 다가올 개헌이 정파 간 거래와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의 산물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럴 때 비로소 헌법 개정이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국민 대통합의 전기가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국민 대토론회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립적 운영 기구가 하루빨리 구성되길 기대한다. 그래서 양극화 해소, 고용과 노동, 무상 복지의 범위와 재원, 국가 에너지 수급계획 등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민감한 주제들을 던져놓고 국정 운영의 풍향계로 삼길 바란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