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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묻지마 범죄, 정신질환 탓 아니었네 … ‘진짜 방아쇠’는 외톨이 만드는 사회

"당신에게 이 나라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차별적이에요. 돈 있고 '백'(뒷 배경) 있는 사람들은 편하게 살고, 나 같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차별받아요."(20대 남성 A씨)
A씨는 처음 본 사람에게 수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흉악범이다. 살인죄가 확정된 무기수다. 그는 지난달 이 교수와 3시간 면담하는 동안 시종일관 화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한 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교수는 면담 상황을 이렇게 취재진에게 전해줬다. 
 
이 교수가 "어릴 때 밥을 어떻게 챙겨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누군가와 같이 먹어 본 기억이 없다.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가출한 이후 가족 간 유대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마음을 터놓을 만한 친구도 없었다. 그는 정신병을 앓은 적도 없었다. 학창 시절 '비행'을 저지른 적이 없었고 어렵지 않게 대학까지 진학했다. 그런데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이 교수는 심층 면담, 각종 심리 분석, 통제력·공감 능력 검사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 일생 지속된 '피해 의식'과 '사회적 단절'이 범죄를 야기했다는 결론을 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남성의 살인은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다. 지난해 5월엔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남성이 아무 관계 없는 여성 등산객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이런 부류의 범죄가 최근 몇 년간 수십 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알려진 사건만 3건이다. 
이런 범죄의 공통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도 언제든지 묻지마 범죄에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졌다. 이런 사건이 나면 '범인=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고 알려진다. 지난해 강남역 사건, 수락산 사건, 오패산터널 사제총기 사건이 모두 그랬다. 
 
조현병은 망상이나 환청에 시달리면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정신질환이다. 일각에선 이런 증세가 묻지마 범죄를 일으킨 것으로 단정짓는다. 30일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돼 조현병 환자의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지고 기존 입원환자의 퇴원 길이 넓어진다. 강제 입원을 줄여 조현병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정신건강의학회 등에서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게 돼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하지만 이 교수가 25명의 묻지마 범죄 범인들을 심층 분석했더니 ▶외톨이로 자라온 과정 ▶성인인 된 이후 사회적 네트워크 단절 ▶사회를 향한 분노가 범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 같은 정신병력(病歷)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법무부 의뢰를 받아 전국 구치소·교도소에 수감된 묻지마 범죄자들을 일일이 만났다. 2013년 18명, 올해 7명이다. 묻지마 범죄자의 면담 분석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불특정자이고 ▶흉기 등 위험한 도구로 신체·생명에 위해를 가하며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경우를 묻지마 범죄로 규정해 25명을 선별했다. 이들은 폭행·살인·살인미수 등을 저질렀다. 평균 연령은 38세, 남성이 24명이다.
25명 중 16명은 정신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A씨는 사회를 향한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어머니 가출 후 남은 가족과도 유대가 매우 약했다. 이런 외톨이 성향이 더해져 범죄로 이어졌다. 나머지 15명 중 반사회성이 강한 사람은 전과가 많았고 외톨이 성향이 강한 사람은 그 동안 억눌린 불만이 범죄로 연결됐다. 상당수는 충동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외부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사이코패스 경향이 강했다.
 
정신병력이 있는 9명(6명은 조현병, 3명은 우울증)도 병에다 반사회적 성향과 외톨이 환경이 더해져 범죄로 나타났다. B씨(61)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사장을 전전하며 보냈다.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다. 30대에 폭력범으로 4년 형을 살았고 40대에 강도살인를 저질러 16년 형을 살고 지난해 출소했다. 넉 달 만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B씨는 출소 직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범행 당시 조현병 증세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수와 면담에서 B씨는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타인의 정서를 인식하는 능력이 결여돼 있고 사회적 관계가 다 끊겨있는 점,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점,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는 점이 충동적 범죄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C씨(60)는 조현병으로 수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이 교수와의 면담에서 "범죄 당시 환청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환청이 조현병 증세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범죄를 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어려서부터 누적돼 온 외톨이 성향이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 성향이 없었으면 조현병 증세만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진단했다. 
다만 다른 2명의 조현병 환자는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다. 환경적 요인보다 조현병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은 대개 폭력성을 동반하지 않는데 이 2명의 경우 보기 드물게 범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는 3명도 이 질병이 묻지마 범죄의 직접적 요인이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이 교수의 분석을 종합하면 25명 중 2명(8%)만 조현병이 범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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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의 대부분은 정상적인 가정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인관계 미숙, 불안정한 생활 , 사회 부적응 등이 공통적 특징이었다. 22명(88%)은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같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있었다. 18명이 미혼이었다.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한 사람은 2명뿐이다. 15명은 가족과 살지만 심리적 고립 상태였다. 
이 교수는 "정신질환 유무 자체로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성향에 대한 분석이 따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가정 환경, 대인 관계 등 다른 요인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범행으로 이어질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흉악범=정신질환자'라는 편견을 바꾸려면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피해의식은 가족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렵지만 작은 갈등이나 이상 행동이 '사인'을 보낼 수는 있다. 이를 발견했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와 상담에 들어갈 수 있는 지역사회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번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이 낙인 효과에 시달리면 또 다른 피해의식이 생길 수 있다. 퇴원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관찰이 가능하도록 지역 사회의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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