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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의 比에 관한 연구, 우주의 조화 탐구로 연결

[수학이 뭐길래] 피타고라스의 수리 철학 <하>
로버트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에 실린 삽화. 이 책에서 플러드는 세계와 우주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림 위의 신의 손이 우주의 일현금을 조율하면 각각의 천구까지의 거리의 비에 따라 조화로운 음정들이 만들어짐을 보여 준다.

로버트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에 실린 삽화. 이 책에서 플러드는 세계와 우주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림 위의 신의 손이 우주의 일현금을 조율하면 각각의 천구까지의 거리의 비에 따라 조화로운 음정들이 만들어짐을 보여 준다.

음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수의 비를 발견했던 피타고라스는 음악 이론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이후 온 우주를 수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발전시켜 나갔다. 피타고라스의 철학에서 수의 비는 음악을 넘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 속 행성 운동의 원리에도 숨겨져 있었다.

우주는 원 모양으로 회전 운동
천구들 거리 비= 8음계 현의 비
라시도레미파솔라 음 내는 악기

보이티우스 『음악론』서 집대성
유럽의 표준 음악 교재로 사용
근대 과학자 캐플러 등도 매료

수의 비나 유리수 교육과정서
철학·음악적 논의는 거의 빠져

 
그는 우주의 별들과 행성들이 투명한 천구에 박혀 지구를 중심으로 가장 완벽한 기하 도형인 원 모양의 회전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 행성이 원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여 각 궤도의 반지름을 추정했다. 이를 통해 피타고라스는 각 행성과 별들의 천구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달·금성·수성·태양·화성·목성·토성 그리고 고정된 별들의 천구 순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각각의 천구가 지구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등속 운동을 한다고 보았다. 각각의 천구들이 지구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에 따라 서로 다른 높이의 음을 낸다고 여긴 점이 독특했다. 이는 천구의 회전 속도가 변하지 않고 늘 일정하다고 보았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피타고라스는 가령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회전하고 있는 달이 가장 높은음을 낸다고 보았다. 반면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서 돌고 있는 고정된 별들의 천구는 가장 낮은음을 낸다고 생각했다. 특히 피타고라스는 지구에서 달·금성·수성·태양·화성·목성·토성 그리고 고정된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들까지의 거리의 비가 각각 8 음계의 음을 내는 현의 비와 일치한다고 봤다. 그리고 각각의 행성의 천구는 고정된 별들의 천구부터 달의 천구까지 라시도레미파솔라의 순으로 높은음을 내고 있었다. 그에게 우주는 성스러운 지성에 의해 완벽하게 조율된 하나의 악기에 다름 아니었다.
 
근원적인 원리를 발견하기 위한 열쇠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수의 비를 통해 우주의 질서 및 조화의 원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이 “우주 전체가 하모니이자 수”라고 보았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그들에게 수학과 음악, 천문학 그리고 우주론 등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수는 모든 존재 아래에 있는 근원적인 원리를 발견하기 위한 열쇠였다. 이는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했던 필로로스가 “수와 수의 본질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나 다른 것과의 관계에 대하여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제자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수에 대한 교육을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으로 두었고 이후 음악·기하학·천문학·신학 등의 분야들을 교육해 나갔다.
 
그렇다면 행성 운동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했을까? 우선 그는 행성들이 회전할 때 큰 음이 나지만, 우주는 그러한 음들이 서로 조화로울 수 있도록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행성이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으므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미 그 소리에 익숙해져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그러한 음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타고라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완벽한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은 정신이 육체에 속해 있어 그 조화로움이 깨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이 조화로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육신의 정욕과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끊임없이 통제해야 했다. 수련이 필요한 이유였다.
 
수의 비와 음의 조화, 그리고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생각은 이후 제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전해졌다. 천구 음악의 하모니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을 비롯하여, 로마의 정치가인 키케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및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면서 해당 사회에서 익숙한 관념이 되어 갔다.
 
이후 서유럽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수의 비와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생각이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보이티우스의 『음악론(De Institutione Musica)』에 의해 체계적으로 집대성됐다. 이 책에서 보이티우스는 음악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우주의 수학적 조화를 보여 주는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과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보여 주는 ‘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그리고 우리가 즐겨 듣는 ‘도구의 음악(musica instrumentalis)’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우주의 음악’은 천체의 규칙적인 질서와 조화로운 운동이 만들어 내는 참된 음악을 가리켰다. ‘인간의 음악’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공명이 만드는 참된 음악을 의미했다. 이에 반해 ‘도구의 음악’은 피타고라스적 관점에서 볼 때 참된 음악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참된 음악을 모방한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대한 통찰 및 참된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는 이유였다.
 
보이티우스의 책은 이내 유럽에서 표준적인 음악 교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피타고라스의 음악론 및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생각 역시 중세 유럽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중세 유럽에서 음악은 세계의 질서와 우주의 하모니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됐다.
 
로버트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의 권두화.

로버트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의 권두화.

특히 우주의 음악에 대한 연구는 지구와 행성 간의 거리 및 행성의 속도 등에 관한 천문학적 연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음악에 대한 관심 역시 인체의 수학적 질서 및 인체와 천체 간의 조화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져 인체의 수학적 비 및 점성술에 대한 연구를 자극했다. 그리고 도구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화성학 및 음향학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성가의 형식으로 교회의 예배 속에 자리 잡아 갔다.
 
음악 및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연구는 이후 르네상스기를 통해 신피타고라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수비학(數秘學)적 연구들이 주목을 끌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가령 수학자이자 우주론자, 의사이자 점성술사였던 로버트 플러드는 『두 세계의 역사(Utriusque Cosmi Historia)』에서 지상계와 천상계라는 두 세계의 수학적 조화를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인 삽화를 통해 우주를 거대한 일현금(Monochord)으로 묘사했다.
 
일현금은 피타고라스가 음과 길이의 비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사용했던 악기였다. 하나의 줄에 특정한 길이의 비를 이루는 지점을 표시하여 각 지점을 누르고 현을 튕길 때, 길이의 비에 따라 일현금은 서로 다른 음을 냈다. 플러드는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한 비율을 갖도록 천구들을 배열할 때 우주를 거대한 일현금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주와 인체의 수학적 하모니
케플러의 『우주의 조화』 속 행성의 음악.

케플러의 『우주의 조화』 속 행성의 음악.

또한 이 시기에는 인간을 소우주로 보고 인간과 우주의 연결 및 조화를 발견하려는 경향도 증가했다. 이는 플러드의 『두 세계의 역사』의 권두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플러드는 우주라는 대우주 안에 인간이라는 소우주가 놓여 있다고 보았다. 플러드에게 인간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고, 그 비밀은 수의 비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의 지도제작자인 안드레아스 켈라리우스가 성도로 제작한 ‘대우주의 조화’ 속 지구 중심의 천구 우주 구조를 표현한 그림.

독일의 지도제작자인 안드레아스 켈라리우스가 성도로 제작한 ‘대우주의 조화’ 속 지구 중심의 천구 우주 구조를 표현한 그림.

우주의 하모니에 대한 생각은 근대 유럽의 과학자들까지도 매료시켰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이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부등속 타원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에도, 태양으로부터 각 행성까지의 거리와 회전속도의 변화에 따라 각 행성이 회전하면서 각기 다양한 음역의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다. 또한 티코 브라헤나 아이작 뉴턴 그리고 윌리엄 허셜 같은 과학자들 역시 행성 운동과 음악 사이의 관계 및 음악 이론 등에 관해 연구했다. 학자들은 우주에서 발견되는 수의 비와 우주의 하모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다. 많은 과학자에게 음악을 연구하는 것은 우주를 연구하는 것의 일환이었다. 역사적으로 수의 비에 관한 연구는 단지 수학 연구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세계의 조화, 더 나아가서 우주의 조화 및 질서를 탐구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서양 문명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대상물에 감추어진 특정 수의 비를 찾는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수의 비는 철학적인 연구이자 음악 연구였으며 또한 우주론에 관한 연구였다.
 
우리나라에서 수의 비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 처음에는 약분 등을 통해 수의 비를 계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중학교 때 이르면 수의 비가 나타내는 유리수를 공부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수의 비나 유리수에 관한 교육 과정에서 철학적이거나 음악적인 논의는 거의 모두 빠져 버렸다.
 
사실 수의 비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산술 계산을 넘어 오랫동안 철학적이고 우주론적인 연구와 연결되어 발전해 왔다. 수의 비를 통해 음악의 하모니의 원리는 물론이고 인간과 우주의 조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수의 비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분야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학은 많은 경우, 수학 그 자체의 논리를 통해 발전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수의 비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와 관련되어 연구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했는지를 살펴볼 때 수학이 어떤 학문이었는지를 보다 새롭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조수남 수학사학자 sunamcho@gmail.com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 현 서울대 강사, 전북대 과학학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며, 과학사와 수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에서 연구했으며, 『욕망과 상상의 과학사』 등을 썼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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