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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도는 집권 않고 보수 혁신한다는 각오 가져야”

2030 ‘샤이 보수’ 심층 인터뷰
‘샤이 보수’. 지난 대선을 강타한 키워드 중 하나다. 부끄럽다는 뜻의 샤이와 보수 성향의 시민을 조합한 신조어다. 왜 이들은 보수임을 숨기고 싶은 걸까. 특히 2030 젊은 유권자일수록 샤이 보수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건 익히 알려진 얘기다. 일단 또래 집단 내에서 소수에 속한다는 게 큰 영향을 미친다.

왜 샤이인가
젊은층 민주당 지지 많아 말 못 꺼내
다양한 목소리 존재할 수 있었으면

보수의 현주소는
계파 갈등으로 총선 지고도 혁신 소홀
종북 프레임 쓰다 되레 틀에 갇혀

왜 보수 지지하나
우리만 北 지원하는 건 부적절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에 반대

같은 보수라도 투표 경향은 다양
“장기적으론 보수에 긍정적” 분석도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만 19~29세의 절반 이상(53%)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지지율은 12%로 민주당 다음이었고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2%로 가장 낮았다. 30대의 경우 민주당 59%, 국민의당과 정의당 각 9%, 한국당 5%, 바른정당 4% 순이었다. 반면 60대 이상은 민주당 37%, 한국당 17%, 바른정당 3%로 세대 간 격차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앙SUNDAY는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2030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실명은 물론 사진까지 실리는 기사라고 설명하자 선뜻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익명을 요구한 경우를 포함해 취재에 응한 이들 대부분은 “2030의 샤이 보수 현상이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보수 성향 말만 꺼내도 매장되는 분위기”
회사원 서지명(33·서울 목동)씨는 “제 주변에서는 보수 성향이라는 말만 꺼내도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의사인 이모(27·서울 서초동)씨는 “20대 동료들 사이에서 보수 성향을 드러내면 곧바로 주목의 대상이 되고 때론 힐난을 받기도 한다”며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 그냥 샤이 보수로 남게 되는데, 그럴 때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했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진모(30·서울 성수동)씨는 “주변 친구들에게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를 찍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회사에선 그럴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마치 GOD 팬클럽 안에서 혼자만 홍석천 팬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찍었지만 아직 명확한 보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진 않은 것 같다”(차모씨·23·대학생)는 응답도 있었다.
 
2030 샤이 보수들이 바라보는 보수의 현주소는 냉혹했다. 이들은 ‘보수의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보수의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신범준씨·38·회사원)거나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여당으로서 민심을 수습했어야 하는데 계파 간 힘겨루기나 하고 탈당과 복당을 번복하는 등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김도희씨·26·취업준비생)고 꼬집었다. “지난해 총선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고 선거에 패하고도 혁신 노력이 부족했다”(서재창씨·29·회사원), “국민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보수 특유의 ‘꼰대’ 마인드가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이현경씨·26·취업준비생)는 응답도 나왔다.
 
이른바 ‘종북 좌파 프레임’이 거꾸로 보수 정당을 위기로 몰았다는 의견도 적잖았다. 취업 준비 중인 박승민(26·서울 압구정동)씨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나 한국당 일부 의원이 사용하는 좌파 프레임이 오히려 보수를 틀에 가두면서 구태 정치를 계속하는 것처럼 비쳐지게 하고 있다”며 “젊은 보수들은 이런 것 때문에 보수 정당 지지를 철회하거나 샤이 보수로 남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지명씨도 “선거 때마다 진보 정당이 집권하면 ‘빨갱이’ 세상이 된다며 종북 프레임을 내세워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보수 정당 지지 이유는 안보·경제관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체로 안보관과 경제관을 언급했다. 이모(27)씨는 “국제적으로 대북제재 국면인데 우리만 북한과 대화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금 문제에 대해서도 “납세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복지의 과실만 취하려 하는 건 정의롭지 않다”며 “부자 증세라 불리는 소득세 상위 구간 신설과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임모(32·서울 공덕동)씨는 “보수 정당이라면 안보나 경제 분야에 기본적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복지 포퓰리즘 등 바람에 휘둘리지 말고 기존의 가치를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 정치인이긴 했지만 탄핵이 됐다고 해서 보수 전체가 궤멸해야 하는 건 아니잖느냐”며 “바른정당이 지금은 군소정당이지만 보수의 대안으로서 국민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순실 사태 이후 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당직자로 근무하는 2030은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보수 진영이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온몸으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황규환(36) 한국당 공보실 운영팀장은 “개혁과 혁신을 외쳤지만 국민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며 “무엇보다 합리적 보수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젊은 인재 발굴과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원(31) 바른정당 공보국 간사는 “국민 앞에 머리 한번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향후 10년 정도는 집권할 생각 말고 타락한 보수를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한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이른바 보수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양분되고 각 당의 주자들이 대선을 완주하는 과정에서 그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당 관계자는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내에서도 지지하는 정당이 갈려 토론하다 보면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대선 패배 요인에 대한 분석이나 해법도 다양해 당장 처방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2030 젊은 보수들도 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를 찍었느냐에 따라 상황 인식이 달랐다. 홍 후보를 찍었다는 이들은 무엇보다 보수 정권 재창출이 간절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모(25)씨는 “보수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홍 후보를 택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신범준씨는 “대통령 탄핵으로 처참히 붕괴된 보수의 재건을 위한 간절함이 컸다”고 했다. “보수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고 계파에 얽매이지 않은 점이 좋았다”거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뽑으려다 TV토론을 보고 홍 후보의 화통한 말투에 반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합리적 야당 면모 보이느냐가 과제
유 후보를 지지한 이들은 좀 더 먼 미래를 언급했다. 차모씨는 “유 후보의 공약이 기존 보수와 달리 신선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당선 가능성이 없음에도 소신투표를 한 건 유 후보가 보수의 새로운 축을 형성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진으로 활동했던 이모(29·서울 청담동)씨는 “한국당은 자성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아 당선 가능성을 떠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유 후보에게 투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과 한국당의 적당한 긴장 관계가 유지되기를 기대하면서 유 후보를 응원했던 사람도 적잖다. 회사원 김지윤(25·서울 봉천동)씨는 “유 후보의 득표율이 너무 낮으면 홍 후보가 기세등등할 것 같아 일부러 표를 준 측면도 있다”며 “과거는 잘못 됐더라도 좀 더 나아지는 보수 정당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박승민씨와 이현경씨는 “유 후보 공약들이 좋았고 선거 막바지에 바른정당 의원들이 탈당해 한국당으로 가는 걸 보면서 유 후보에게 더욱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보수 성향이지만 홍 후보나 유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서지명씨는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찍었다. “홍 후보는 보수가 아닌 수구 세력이라 생각했고 유 후보는 정책이 너무 진보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모(27)씨는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았다. 보수 후보 중 지지하는 사람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홍 후보는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대통령으로선 도덕성에 흠이 될 수 있다고 봤고 유 후보는 원내 20석이라는 한계 때문에 집권하더라도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보수 성향이라 해도 투표 경향은 이처럼 다양했다. 보수의 스펙트럼이 확대되면서 결집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보수 진영 전체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샤이 보수 수준에 머물던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올리기엔 지금이 적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원 손승민(28·경기도 광주시)씨는 “아직도 ‘보수 지지자=수구 꼴통’이란 인식이 주변에 팽배하다”며 “보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좌빨’ ‘종북’ 운운하며 표를 모은 업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고 있는 만큼 중도 개혁 성향의 젊은이들도 보수 정당 지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차모씨는 “지금이 보수의 위기라고 하는데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선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합리적인 야당으로서 현 정권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2030 세대도 얼마든지 보수 정당의 지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정서영 인턴기자
amator@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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