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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합시다’가 합리적인 까닭

합리는 객관적 사실의 논리적 조합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판단이 합리적이라 믿는다. 자기 판단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심적 안정과 기분 좋은 감정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은 사소한 자극에 쉽게 영향받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과 캐나다 토론토대학은 조명 밝기가 사람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조명이 밝을수록 긍정적으로 평가한 단어는 더욱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 단어는 더욱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또한 매력적인 상대는 더욱 매력적으로, 공격적 성향의 캐릭터는 더욱 공격적이라 느꼈다. 흥미로운 것은 조명이 밝을수록 실험 참가자들은 더 매운 치킨 소스를 선택했다. 밝은 조명은 사람들의 판단과 느낌은 물론, 취향까지 강화시킨 것이다.
 
조명 같은 외부 자극뿐만 아니라,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도 뇌 활동에 영향을 준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연구에 의하면,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타인의 표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상대 표정을 따라 하는 안면 피드백(facial feedback)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파악한다. 보톡스로 얼굴 근육이 마비되면 안면 피드백 같은 근육 신호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 역시 마비된다.
 
일상에서 흔히 복용하는 진통제도 타인의 아픔을 감지하는 능력을 둔화시킨다. 2016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은 진통 효과로 신체 감각이 무뎌지면 타인의 신체적 고통과 감정적 슬픔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능력이 함께 무뎌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당신이 방금 보톡스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복용했다면 평소보다 건조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판사들조차 식사 여부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린다는 점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조나선 레바브 교수는 이스라엘 수용소에서 1000건의 수감자 가석방 청원에 대한 판사들의 결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석방 승인 비율은 판사가 식사를 마친 직후에는 65%였지만 심사가 지속될수록 계속 하락하다가 다음 식사 직전에는 0%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판결 패턴은 오전 간식, 점심, 저녁 식사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방금 식사를 마친 판사의 뇌 속에는 심사에 필요한 에너지가 충분하며, 기분 좋은 포만감은 무의식적으로 너그러운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심사가 지속되어 대뇌 에너지가 바닥나면, 무의식적으로 판단 자체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강해진다. 이로 인해 가석방 승인비율은 계속 하락하다가 피곤함과 배고픔이 절정을 이루면 0%까지 추락한다.
 
본능이 판단에 개입하면 ‘밥’이 ‘법’을 좌우한다.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적 판단조차 포만감이나 배고픔에 영향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합리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 믿음이나 기대와 달리, 순도 100% 합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논리적 추론 과정에서 사소한 외부 자극과 몸의 은밀한 개입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외부 자극에 편향되지 않도록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차를 두고, 세 번 이상 고민하라. 또한 본능의 개입을 최소화 하려면 직관적 느낌보다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하라. 무엇보다 좋은 결정을 하려면 끼니부터 챙겨라. 에너지가 고갈된 뇌는 작동하지 않는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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