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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정책 완급 조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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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 2학년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의 강의였고 학생들이 한 사람씩 앞에 나가 자신의 좌우명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필자의 차례가 되어 고등학교 때부터 외고 다니던 『채근담』의 한 구절을 암송했다. 다음과 같은 문면이다.

『채근담』 “분주한 때도 여유 필요”
괴테, 『파우스트』 40여 년 걸쳐 집필
국가 근본 바꾸는 일 급박해선 안 돼
앞 정권 정책 보존할 목록도 살펴야
적폐 아닌 것까지 청산하는 일 곤란

 
“보라! 천지는 조용한 기운에 차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해와 달은 주야로 바뀌면서 그 빛은 천년만년 변함이 없다.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적막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모습이다. 사람도 한가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며 한가한 때일수록 장차 급한 일에 대한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무리 분주한 때일지라도 여유 있는 일면을 지니고 있을 것이 필요하다.”
 
발표를 마쳤는데 선생님은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청년의 생각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채근담』의 이 대목이 말하는 세상살이의 이치가 사뭇 진중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젊은 날 이래 이 처세철학서의 일절이 지속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삶의 완급을 조절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었다.
 
『채근담』은 중국 명나라 말엽에 홍자성이 쓴 책이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졌고 모두 359개의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소한 일상생활 가운데서 진정한 인생을 발견하라는 잠언집이다. 동북아 한문문화권의 정신사를 이끈 유학의 근본주의자들은 이를 경박한 처세술의 교본으로 폄하했다. 학문적 엘리트주의가 도저하던 옛날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처럼 민초들의 집약된 힘이 세상의 틀을 바꾸는 시대에 있어서는 매우 실효성 있는 길잡이가 되는 형국이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속에 담긴 교훈이 여전히 공감을 불러오고 있다면, 이처럼 시공을 넘어 생명력을 갖는 저술이 이른바 고전이다.
 
우리들 각자의 삶, 또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급한 것과 여유로운 것을 균형있게 조절하는 힘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멀리 내다보고 꾸준히 나아가는 지속성을 바탕에 두었을 때 생성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 조절에 매달릴 이유도 없다. 세계문학사의 거인으로 불리는 독일의 문호 괴테(1749~1832)는 83년의 생애를 살면서 철들면서부터 기력이 쇠진할 때까지 일생에 걸쳐 글을 썼다. 그의 이 지속적 시간과 함께 한 글쓰기를 통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 같은 불후의 명작이 나왔다.  
 
더욱이 『파우스트』는 41세의 장년 시절로부터 82세, 곧 타계 1년 전까지 40여 년의 집필 시간을 기록했다.
 
단순히 이 문호가 전 생애를 통해 성찰하고 오래 썼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 문학사에 남을 대작을 꿈꾸며 한 세대가 넘도록 그 꿈을 밀고 나가는 데, 어떻게 불굴의 인내가 없었을 것이며 어떻게 그 인생의 완급과 강약에 대한 경륜이 없었을 것인가. 신과 악마 사이의 쟁점이 한 인간을 통해 전개되는 과정을 그리는 판국에, 자기절제의 균형성이 없었더라면 이 세계사적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괴테는 독일문학의 정수요 자존심이다. 심지어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기관의 이름이 ‘괴테 인스티튜트’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주째를 넘기고 있다. 취임 후 첫 국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가 83%나 나왔다고 하니, 앞 정부와의 비교나 허니문 효과도 있겠지만 실제로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위주의의 자리를 과감하게 버리고 서민들과 소통하며 국민적 관심사를 직접 챙기는 모습은 연출된 장면들이기보다 문 대통령 원래의 품성이 반영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형식만으로도 신선하고 우호적인 감정을 촉발한다. 때로는 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올해 배정된 청와대 비서실의 특수활동비 등에서 42%인 53억원을 절감하기로 하면서, 대통령의 식비도 청와대 예산이 아닌 개인 임금으로 공제한다는 것이다. 그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나, 그렇게 되면 국민이 그야말로 인정 없는 ‘상전’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사소한(?) 일은 그냥 넘어가자. 문제는 국가의 근본을 바꾸는 일들을 너무 급박하게 몰고 간다는 우려에 있고, 이를 떨치지 못하는 여론이 많다는 데 있다. 특히 국가 정체성이나 외교 및 안보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앞 정권의 정책 모두를 비판의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보존하고 이어가야 할 목록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자칫 국력의 낭비와 유실을 가져올 수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이 다른 인물들도 발탁하고 있어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 반대로 그동안 핍박을 받은 인물이라고 해서 철저한 검증 없이 쉽사리 중요한 공직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적폐 청산에 과감한 개혁성의 기치를 내거는 방식은 옳다. 다만 자칫 적폐가 아닌 것까지 청산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완급과 강약과 경중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굳이 여기에 홍자성의 『채근담』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를 불러온 이유다. 첫 시기의 지지율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 간직한 초심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과 연동되어 있는 까닭에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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