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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순수-참여 진영 대립, 건전한 긴장관계로 봐야"

프랑스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했다. [사진 대산문화재단]

프랑스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했다. [사진 대산문화재단]

종이책 도서관은 더 이상 인간지식의 성소가 아니다. 방대한 인터넷이 대체한다. 사서들의 절망은 커진다. 검색에 할 일을 빼앗겨서다. 전자책 시장의 성장은 한계에 이르고 종이책 판매도 시들하지만 사람들이 과거보다 덜 읽는 건 아니다. 휴대전화 문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e메일의 바다에 빠져 하루 종일 허우적댄다. 갈수록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로 꼽히는 앙투안 콩파뇽(67)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그린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다.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혁명, 그에 따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시대를 풍미한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제자로 유명한 콩파뇽은 지난 23~25일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최근 한국을 찾았다. '여러 언어로 읽기'라는 제목의 기조 강연문에서 디지털화가 초래한 읽기 문명의 변화상을 다양하게 짚었다.
 콩파뇽의 진단이 섬뜩한 건 디지털화로 단순히 하드웨어만 변한다고 한 게 아니어서다. 소프트웨어라고 할 만한 인간 지적 활동의 핵심적인 부분까지 변한다고 봤다. 가령 연구자의 역할이 변한다. 정밀한 독서와 다양한 사고실험을 바탕으로 인간 지식의 확장을 도모하는 게 종전의 역할이었다면, 디지털 세기의 연구자는 과학이나 신념, 어떤 이론이든 등가로 취급되는 인터넷 바다에서 어떤 것이 지식이고 어떤 것이 견해인지 구분하는 일을 역할로 삼게 될 거라고 진단한다. 
 문학 800, 역사·지리 900식으로 구분하는 도서관의 도서 분류체계도 사라진다. 역시 검색 때문이다. 텍스트의 질감과 빛깔을 중시하는 문학연구에서조차 읽기는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니다. 빅데이터 활용이 대세가 되면서 읽기는 오히려 연구의 방해물로 여겨진다. 진위 논란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감정도 빅 데이터가 대신한다. 컴퓨터를 돌린 결과 텍스트의 고유성은 오직 셰익스피어 작품에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단어가 아니라, 관사·소유격·지시사·대명사 같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통사적 단어들의 사용빈도나 패턴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작품의 스타일은 그러니까 '특징'들의 배치가 아니라 '평범'들의 총합인 걸까.
 콩파뇽이 이런 변화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로 문화가 확장되는 과정을 경험해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누렸다며, 다만 디지털 토박이인 다음 세대가 두 세계간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지는 미지수라고 글을 맺었다. 이런 그의 입장은 프랑스의 국립 이과 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 후 문학연구로 방향전환한 이력과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발제문에 쓴대로 도서관은 사라지나. 
 "갈수록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직접 방문하지 않고 다운받아 자료를 볼 수 있지 않나. 도서관은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설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미래를 걱정하는 운영자나 사서가 많다. 실제로 파리나 뉴욕의 큰 도서관에 가보면 책을 찾기보다 디지털 자료 찾는 법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서라는 직업 자체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앞으로 좋은 사서는 유용한 사이트를 안내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도서관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구글 같은 사이트가 도서관의 전통적 도서분류 체계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도 도서관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사서의 직업영역, 검색방식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최근 '디지털법'이 통과돼 학술논문의 디지털화와 무료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그럴 경우 저작권 개념은 어떻게 되나. 사라지나. 
 "디지털법을 통한 '오픈억세스'는 공적 지원을 받은 연구 저작물에 한한 것이다. 공적인 자금 이 투입된 출판물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일부 민간 출판사가 독차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런 식의 장치가 프랑스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디지털화한 저작물의 무료 공개에는 유예 기간이 있다. 과학·기술·의학 등 순수과학은 6개월, 인문사회과학은 12개월이다. 나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시장에서 소비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유예기간을 3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도 인문사회과학 영역 출판사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대학생들의 도서 구입도 예전 같지 않다."
 -빅 데이터로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작품 독창성의 존재론적 지위가 손상되는 건 아닌가. 
 "작품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문학비평과 관계된 문제인 것 같다. 기계는 작품의 의미나 미적인 가치를 따지기보다 인간이 지나쳤던 작은 요소로 작품의 진위를 판단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 비평가보다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기계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겼다고 해서 바둑이라는 게임의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모더니티의 다섯개 역설』을 쓴 모더니즘 전문가다. 한국 문단은 오랫 동안 모더니즘=순수문학, 리얼리즘=참여문학, 이라는 가설 아래 이른바 순수-참여문학으로 진영이 나뉘어 수십 년간 대치해 왔다. 이에 대해 둘 사이의 대립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역사적 리얼리즘 자체가 모더니즘의 한 갈래였다는 주장인데. 
 "둘 사이의 이분법, 긴장감은 프랑스에서도 강하다. 내가 청소년기였던 1960~70년대 사르트르의 참여문학이나 마르크시즘적 해방론이 득세했고 18세기에 문학은 계몽의 수단이었다. 반면 19세기 낭만주의는 순수예술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둘 사이의 긴장관계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쪽에서는 문학의 교육적 가치를 중시하고, 다른 쪽에서는 미적 가치를 내세우곤 했다. 언제나 있어왔던 대립이다. 부정적인 이분법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긴장감, 문학의 이중적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프랑스는 문학의 자율성을 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문학의 자율성을 밀어붙여 문학이 발전할수록 읽기 어려워지기 마련이고, 그럼 독자층을 잃게 된다. 그건 비극 아니냐. 수학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비슷한 질문인데, 최근 한국 문단에서는 한 문학상을 두고 양 진영 간에 갈등이 벌어져 결국 수상자가 수상을 거부한 일이 벌어졌다.
 "맥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답하기 조심스러운데, 문학상을 원래 창립 취지대로 운영할 수 없다면 시대에 맞춰 변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공쿠르상도 원래 자연주의, 리얼리즘 작품에 주던 상이다. 시간이 지나며 다른 경향의 작품에도 상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문학은 아직도 프랑스 등 유럽에서 저평가된 것 같다.
 "프랑스에서 한국문학 번역은 20년 전부터 이뤄졌다. 한국문학 전문 편집자들도 생겼다. 언론에서도 정기적으로 다룬다. 한국문학은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이제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술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팝아트를 부정적으로 보는데,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 같은 작가도 마음에 안 들 것 같다. 
 "존경하는 현대미술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덜 평가하는 작가도 있다. 가령 바스키아는 20, 30년 전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얼마 전 경매에서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작품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과연 그 가격에 맞는 가치인지는 잘 모르겠다. 허스트는 개인적으로 덜 좋아하는 정도다."
 -한국에서는 문학평론의 위축이 두드러진다.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의 상황은 문학평론 자체가 위축된다기보다는 언론의 위축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문학평론 신문지면이 줄어든다. 언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변화를 모색하는 상황에 따른 결과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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