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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소개하는 태극 소년] ①송범근 父 "골키퍼 싫다고 울던 아들… 이제 자신만의 축구 철학도"


세상의 모든 아들에게 아버지는 '가깝고도 먼' 존재다. 사랑하는 마음은 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반면 아버지에게 아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고 싶은' 존재 그 자체다. 또 커 갈수록 자신을 닮아 가는 아들을 보면 가진 전부를 주고 싶다.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이 20일 드디어 막이 올랐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에 선 '태극 소년'들은 죽음의 A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 중이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서는 속내는 떨리기만 하다. 이런 U-20 대표팀을 안쓰럽게 지켜보는 이가 있다. 아들을 위해 기꺼이 '축구파파'가 된 아버지들이다.

축구파파들은 아들을 대표팀 일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축구장과 학교, 집을 오가는 십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들의 축구와 관련해서라면 준 전문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회가 시작된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일간스포츠가 U-20 월드컵을 맞아 대표팀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들을 만나 본다. 첫 편의 주인공은 GK 송범근(20·고려대)과 열혈 축구파파 송태억(54)씨다. 

"허. 저 놈 '축구 신동'인데! 공을 기가 막히게 차네. 감각이 있어."

2004년 봄 경기도 분당의 한 골목길. 동네 꼬마들의 축구를 구경하던 어른들은 여섯 살 송범근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함께 그 자리를 지키던 송범근의 아버지 송태억씨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차붐' 차범근(60) 2017 피파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의 팬이었던 송씨는 아들의 이름마저 '범근'이로 지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그런 아들이 축구를 잘하니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볼 차는 솜씨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그런데 축구를 할수록 주변에서 '신동이다' '천재다' 칭찬하는 목소리도 커지더라고요. 축구를 시켜 보라는 제안도 있었고요. 또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했거든요. 오죽하면 아들 이름도 차범근 위원장님의 이름을 따 범근이로 지었겠습니까."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송씨는 아들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스포츠 시장 환경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착실하게 공부를 하는 청년으로 자라나길 바랐다. 하지만 아들의 축구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급기야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송)범근이에게 '왜 축구를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축구를 할 때 나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어리지만 진심이 느껴졌어요. 아들이 동네 축구를 떠나서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입니다."

 

송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의 손을 잡고 차범근 위원장이 운영하는 축구 교실로 향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서울까지 만만하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빠는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제가 범근아~ 하고 부르면 아이들이 깔깔 웃었어요. 이름이 같다 보니까 현장에 있던 코치들도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원래 아들의 꿈은 공격수였다. '차붐'이 그랬듯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공격수인 '송붐'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송범근이 갑작스럽게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처음 맡게 된 건 신용산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김종식 신용산 초등학교 감독님께서 '범근이가 또래에 비해 키가 크다. 골키퍼를 시켜 보라'고 하셨어요. 애는 골키퍼 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죠. 거의 1년을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했어요. 당시에 골키퍼는 '재능은 없는데 축구는 하고 싶은' 꼬마들이 선택하는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저도 '골키퍼는 싫다'고 버티고 얼굴도 붉혔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선택은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그때만 해도 골키퍼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포지션이 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골키퍼가 하기 싫다던 아들은 서서히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하며 재미를 느꼈다.

"당장 자기 앞에 공이 날아오고 그걸 잡아내는 과정이 반복되니까 흥미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공을 막는 쾌감 같은 것이 있었나 봐요. 범근이가 좋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죠."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나름대로 골키퍼에 대한 철학과 역할까지 정립했다.

 

용운고에 다니던 송범근은 2015 금석배 전국 고등학생 축구대회에서 GK상을 받는 등 두각을 보였다. 휴식일에는 영상을 통해 이케르 카시야스(36·FC 포르투)의 리더십과 마누엘 노이어(31)의 대범함을 공부했다. 그 결과 골키퍼는 단순히 공만 막는 사람이 아니라 그라운드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악단의 지휘자가 그렇듯 나머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위치를 조율하고 지시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 바로 골키퍼라는 것이다.

"김병지 선수가 '내 뒤에 골은 없다'는 말을 했었죠. 그런데 범근이는 '내 앞에 공 자체가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경기장의 지휘자로, 처음부터 공이 자기 앞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제 아들이 한 말이지만 깜짝 놀랐어요."

신태용(47) 감독이 송범근에게 '부주장'의 역할을 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버지의 바람은 딱 하나다.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원 없이 해서 그토록 바라는 유럽 진출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이런 큰 대회에 우리 범근이가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매 경기마다 나머지 10명의 선수들과 함께 완급을 조절하는 골키퍼가 돼 주길 바라죠. 아들의 꿈은 더 큰 리그로 진출하는 거예요. 아버지로서 '차붐'처럼 거침없이 뻗어 나가길 기도할 뿐입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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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