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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연의 풍수기행] 군포 정난종 묘

조선 전기 이조판서와 우참찬(정2품)을 역임한 허백당 정난종(鄭蘭宗, 1433~1489)과 그의 후손들 묘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산3-1에 있다. 동래정씨(東來鄭氏)는 조선시대에 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17명, 대제학 2명, 호당 6명, 공신 4명, 판서 20여명, 문과급제자 198명, 무과급제자 484명을 배출하였다. 상신 수로는 왕족인 전주이씨 22명, 외척인 안동김씨 19명에 이어 세 번째다. 이중 13명의 정승이 정난종의 후손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묘역은 신도비·상석·혼유석·향로석·장명등·문인석·동자석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묘제·석조미술·금석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특히 정광필의 신도비 글씨는 퇴계 이황이 썼다.

옛날부터 동래정씨는 명당을 잘 쓰기로 소문난 집안이다.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산73-28 화지공원에 위치한 2세조 정문도 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할 만큼 유명하다. 이에 못지않게 유명한 곳이 경북 예천군 지보면 도장리 산38에 위치한 정사(鄭賜) 묘다. 동래정씨 13세인 그의 묘는 옥녀단좌형으로 조선8대명당에 해당된다. 정사에게는 난손(목사)·난수(군수)·난종(우참찬)·난원(첨정)·난무(부사) 다섯 아들이 있었다. 이중 3남 난종의 후손들이 크게 발복한다. 그 이유가 군포 수리산에 있는 묘역이 다른 형제들의 묘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정난종은 광보(연안부사)·광필(영의정)·광좌(안산군수)·광형·담 등 다섯 아들을 두었다.

묘역은 하나의 능선에 여러 개의 묘들이 상하로 배치되어 있다. 묘역 하단에는 정난종(15세)과 부인 완산이씨 묘가 쌍분으로 있다. 그 위쪽에는 장남 정광보(16세)와 부인 전의이씨 묘, 그 위에는 차남 정광필(16세)과 부인 은진송씨 묘가 있다. 또 그 위는 정광필의 4남 정복겸(17세)의 묘와 부인 묘, 그 위는 복겸의 아들 정유신(18세)의 묘가 있다. 이 곳의 특징은 선조 묘가 아래에 있고 후손 묘가 위에 있는 역장 배치다. 조선 중기 이전에는 자리만 좋다면 역장은 개의 치 않았다. 조선후기 성리학이 심화되면서 역장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역장은 관념일 뿐 풍수적인 길흉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역장은 조상의 묘를 쓸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리를 후에 알게 되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이곳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난종과 정광보의 묘에서 보면 앞의 하수사가 끝나지 않고 아래로 길게 내려간다. 그래서 혈을 맺는 주룡이라기 보다는 다른 곳을 보호하기 위한 호종사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앞에 확실한 안산이 없어 수구가 열려 있다. 수구가 막히지 않고 열려 있으면 기가 빠져나가게 된다. 다행히 아래에 갈치저수지가 있어 급하게 빠져나가는 것은 막고 있다. 반면에 정광필과 정복겸의 묘는 맥의 연결이 확실하고, 혈장도 뭉툭하게 뭉쳐져 있다. 또한 좌청룡의 능선이 안산이 되어 앞을 막아주고 있다. 물이 나가는 수구도 아래 묘에 비해 훨씬 좁아 보인다. 아래에 비해 위의 묘들이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광보보다는 광필의 후손들이 더욱 현달하였다. 광필은 노겸(주부)·휘겸(경기전 참봉)·익겸(사재감 부정)·복겸(강화부사) 4남을 두었다. 이중 복겸의 장남 정유길(좌의정, 대제학)의 후손에서 벼슬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유길의 호는 임당이며 묘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다. 그는 1남5녀를 두었는데 아들 창연은 좌의정이고, 셋째 딸은 김극효에게 시집가 김상용·김상헌을 낳아 안동김씨가 명문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창연의 아들 광성은 형조판서를 역임했고, 광성의 장남 태화는 인조·효종 때 6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명상이다. 한편 광필의 동생 광좌는 광산김씨 김극뉴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묘는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말 명당에 있다.

이곳 묘역은 한남정맥의 수리산(489.2m) 남쪽 자락에 있다. 광교산과 백운산과 오봉산을 거친 한남정맥이 수리산 정상을 향해 가기 전 228m 봉우리를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 좌우로 개장한 능선들이 마치 이곳을 안아주듯 감싸며 보국을 만들었다. 묘역 입구에는 정난종의 맏아들 광보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지은 종택이 있다. 손님이 대문을 거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출입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지었다. 동래정씨 문중은 이곳 묘역·종택·임야·전답·유품 등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무상 기증하여 귀감이 되고 있다. 훌륭한 조상에 훌륭한 후손들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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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