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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조각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한 조각의 뼈로 (돌아온 남편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처음으로 신원이 공식 확인된 단원고 고(故) 고창석(당시 40세) 교사의 아내 민모(38)씨는 17일 기자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서 이렇게 심정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남편도 아직 모두 수습하지 못했고 아직 수습되지 못한 가족들이 있다"며 에둘러 인터뷰를 거절했다. 
고창석 단원고 교사.[사진 세월호 자원봉사자 임영호씨 페이스북 캡처]

고창석 단원고 교사.[사진 세월호 자원봉사자 임영호씨 페이스북 캡처]

고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 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세월호 참사로 변을 당했다.
 
대학 시절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 등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였다. 
 
그러나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그는 탈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먼저 입고 배를 빠져나가라"고 했다. 
 
고 교사의 마지막 모습은 학생들이 있던 4층 객실에서 목격됐다.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목이 터지라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한 생존 학생은 "구명조끼를 챙겨 입으라고 처음 지시한 사람은 선장이 아니라 선생님이셨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그는 "또치쌤"으로 불렸다. 짧은 스포츠머리 때문이었다. 
 
꽃샘추위가 이어지는 3월. 이른 아침마다 학생들의 등교지도를 하면서도 고 교사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안녕. 어서 오렴"이라며 손을 흔들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간식으로 싸 온 고구마와 따뜻한 차를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고 교사와 함께 근무했던 김덕영(40) 교사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교육·지도를 하면서 학생부 교사인데도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제자들도 많이 따랐다"며 "성격도 너무 좋아서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동료 교사에게 친한 형님으로 불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고 교사의) 시신을 온전하게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다른 미수습자들의 시신도 모두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 교사의 제자들도 기사 댓글 등을 통해 "정말 자상하시고 열정적이셨던 분", "고슴도치 같던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모습을 보고 터미네이터 같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서 돌아와달라", "선생님 때문에 체육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고 행복했다"고 추모했다. 
 
고 교사는 '아내 바보'로도 유명했다. 그의 아내 민씨는 단원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단원중학교 교사다. 그는 담장 너머로 아내에게 간식을 건네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엔 꽃을 보내는 로멘티스트기도 했다. 두 아이에게도 지극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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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아내에게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민씨는 2014년 10월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면서 "처음엔 발견된 시신이 남편이 아니기를 바라다가 며칠 뒤부터 제발 남편이기를 기원하게 됐다. 사고 며칠 전 맞잡은 손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다. 뼛조각이라도 찾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한 지 1127일 만에 남편을 찾았다. 
민씨가 기자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이렇다.
 
"기사를 쓰신다면 교사 고창석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스승의 날은 너무 가슴아픈 날이었습니다."  
 
안산=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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