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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꽃보다 칠순여행

혜민 스님마음치유학교

혜민 스님마음치유학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외국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되다 보니 감사하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미국 하와이 도서 축제 기간 동안 참석해 달라는 초청이 있었다. 미국 대학교수로 재직했을 때 학회 발표차 하와이에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굳이 다녀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올해가 어머니 칠순인데, 그간 승려라는 이유로 부모님 생신은 물론 환갑도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부모님 모시고 여행의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생각에 도서 축제 강연에도 응하고 별도로 부모님 여행 준비도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면서도 소소한 다툼 겪는다
자식과 같이 시간 보내기만 해도 행복해하시는 부모님

호놀룰루 공항을 빠져나오니 먼지 없는 투명한 파란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초록 나무들이 반겨주었다. 오른쪽으로는 옥색의 바닷가가, 왼쪽으로는 연둣빛의 가파른 산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아버지는 도착하시자마자 도로를 지나는 우리나라 차를 찾기 시작하셨다. “저기 봐라 저기, 우리나라 차 간다.” 시차가 있어 피곤해하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처음 보는 이국적 풍광 때문인지 기운이 넘치셨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모처럼의 여행은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았다. 숙소 주변이 너무 시끄럽거나 혼잡한 곳은 피해야 했고, 침대 및 제반 시설이 너무 불편한 곳도 피해야 했다. 교통비가 좀 들더라도 빠르고 편하게 이동해야지 너무 많이 걷게 되면 여행이 도리어 고생이 될 것 같았다. 더불어 현지 음식을 잘 못 드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한국 식당 등도 몇 군데 알아놓았다.
 
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부모님은 낯선 문화에 잘 적응하셨다. 잠도 잘 주무시고 걷는 것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며 드시는 것도 걱정과는 달리 맛있게 잘 드셨다. 마치 외국에 나오니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신 듯했다. 맨발로 해변을 한가로이 걷는 두 분은 때때로 바지 무릎을 적시며 올라오는 작은 파도에도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길에서 무료로 하와이 전통 훌라춤을 가르쳐주는 곳을 만나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잘 따라 하셔서 나를 놀라게 했다. 평소 보던, 내가 알던,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물론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힘든 점도 있었다. 출가 생활로 인해 오래 떨어져 지낸 부모님이지만, 그래도 부모·자식 간이라는 가까움은 서로의 기분과 우려, 생각과 고집 등을 여과 없이 전달하게 했고 서로의 행동을 바꾸려고 했다. 물을 자주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어머니는 계속해서 나와 아버지께 물을 마시라고 권하셨고, 아버지는 어딜 가시나 “여긴 너무 비싸다”고 하시며 뭐든 못 사게 막으셨다. 나는 아버지께 지나가는 아시아인들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그만 물으시라고 했고, 어머니께는 아침 뷔페에서 너무 많은 과일이며 요구르트 등을 챙기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듯 보이는 부모·자식 간이지만 사실은 나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버릇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여행을 함께하다 보니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있었다.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시며 행복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왜 예술을 사랑하게 됐는지 그 근원이 보였다. 여행 내내 큰 걱정 없이 느긋한 어머니를 보면서 내 안의 느긋함이 원래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틱낫한 스님은 사랑하는 부모님이 저세상으로 떠난다 하더라도 부모님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바로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서 나를 통해 부모님의 성격이나 버릇, 취향, 생각들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있으면 행복과 함께 소소한 다툼과 어려움을 겪는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못마땅한 모습을 자신의 아이에게서 혹은 반대로 부모에게서 수시로 발견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게 되고 싫은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다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좋으셨냐고 물어보았다. 부모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특별히 무엇을 봐서, 어디를 가서 좋았다기보다는 자식하고 모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가장 좋으셨단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부모님과 잠시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시길 바란다. 꼭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부모님은 자식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실 것이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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