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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권 5년 가늠할 ‘문재인의 100일’

최 훈 논설실장

최 훈 논설실장

방향과 속도. 리더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향은 ‘개혁’과 ‘통합’이다. 방향만큼 그에게 중요한 건 속도다. 시간이 녹록하지 않다. 화급한 과제가 여기저기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58.9%에겐 조기에 믿음을 줘야 할 부담도 있다. 정상적인 새 대통령에겐 6개월의 프라임 타임이 주어진다. 2월 말 취임 뒤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다. 주요 공약을 다듬어 첫 가을 국회에서 입법·예산의 지원을 꾀한다. 새 대통령과 야당·언론의 허니문이 6개월인 이유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황금기’는 100일 정도다. 허송하면 여소야대 의회의 역풍과 내년 지방선거의 회오리에 휘말린다. 5년의 순항을 장담키가 어렵다. 개혁이든 통합이든 힘이 실린 때가 관건이다.
 
벤치마킹해야 할 지점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 대통령(1933~45년 재임)의 취임 초다. 그는 전임 후버 대통령이 낳고 방치한 암흑의 대공황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1933년 3월 4일 취임 때 실업률은 25%를 넘었고 국내총생산(GDP)은 30%나 하락했다. 20% 이상 은행이 문을 닫았다. 독일 히틀러와 일본이 야욕을 드러낸 다발성 위기의 시기였다. 공화당 보수 대통령이 무너뜨린 나라를 이어받은 민주당의 진보 대통령이었다. 위기 극복의 동력은 소아마비 장애인인 이 대통령이 나라를 일으키려 시작한 ‘첫 100일 작전’이었다. 이 기간 루스벨트 팀은 숱한 창의적·개혁적 정책을 쏟아냈다.
 
우선 팀 구성이 돋보였다. 후보 때부터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로 불린 싱크탱크를 꾸려 정책 격론을 벌여 온 결과였다. 미국의 첫 여성장관으로 발탁한 프랜시스 퍼킨스는 ‘모든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고용주와 교섭할 권리’를 선언한 노사관계법을 만들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최저임금제, 아동노동 금지, 시간 외 근무 규정을 선언한 공정노동기준법도 창안했다. 동시에 기업을 설득했다. 하층 노동계급인 산업노조연합(CIO)은 뉴딜정권 내내 루스벨트의 협력자가 됐다. 노조·기업·정부 3자의 파트너십이라는 사회협약 모델의 시초였다.
 
중산층 출신인 퍼킨스는 뉴욕 소비자연맹에서 일하던 31세 때 끔찍한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면직공장’ 화재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146명의 10~20대 여공들이 비상구도 열지 않은 채 먼저 탈출한 공장 간부들 탓에 추락해 숨졌다. 절도 방지를 위해 출구가 하나뿐인 공장이었다. 퍼킨스는 그 후 삶의 진로를 바꿨다. ‘고통받는 소수’를 위한 진보적 가치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그를 노동 수장으로, 사회복지사 출신을 연방 구호사업의 총책임자로 골라 개혁을 이끈 게 루스벨트의 사람 보는 안목이었다.
 
건실한 은행만 선별해 정상화시킨 은행법, 100만 청년 백수의 취업을 환경친화 사업과 연계시킨 민간자원보존단, 400만 실업자를 구제한 테네시강유역개발(TVA)과 토목사업청의 발족, 농산물과 공산품의 가격 차를 조정한 ‘패리티 가격(parity price)’의 도입 등 각종 아이디어 정책상품을 출시한 게 취임 100일이었다.
 
거센 역풍과 반발은 당연했다. 보수적인 연방대법원과 공화당에 의해 일부 법안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퍼킨스 노동장관은 탄핵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진정 눈여겨볼 대목은 이를 헤쳐가는 루스벨트의 ‘소통 방식’이었다. 취임 8일 뒤 그는 라디오 연설로 대중을 직접 설득하는 노변정담(fireside chat)을 시작했다. “여러분의 돈을 매트리스 밑에 넣어두는 대신 다시 문을 연 은행에 맡겨주십시오. 그래야 산업과 농업이 돌아갑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설득에 사흘 뒤 다우존스 주가는 15%가 폭등했다. 연설 말미 “여러분의 어려움을 제게도 얘기해 달라”는 그의 호소에 일주일 새 백악관엔 45만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국민통합을 위한 대통령 자신의 노력은 바로 ‘100일의 속도’를 가능케 해준 힘이었다.
 
늘 온화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는 회기 중 매일 3~4시간씩 의원들과 토론하며 친교를 쌓았다. 정부기관장들에겐 “여러분과 나의 돈과 존속은 모두 의회에 달려 있다. 의원들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익살을 떨기도 했다. 취임 4일 뒤 하원 은행위원장이 잉크도 안 마른 은행법안을 흔들고 다니며 의석에 돌려 38분 만에 통과시켜 준 협치의 장면이 나올 정도였다.
 
하버드대 교지 편집장을 지낸 루스벨트는 언론의 문화를 잘 이해했다. 기자회견을 거의 않던 불통의 전임자와는 달리 일주일 두 번꼴로 기자들을 만나 세미나를 방불케 한 정책 토론을 즐겼다. 조언을 경청했다. “취임 초반 의사당과 대중, 언론에 좋은 첫인상을 심은 대통령이 성공한다”(헤리티지재단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는 통설의 교범이 바로 루스벨트였다.
 
57%의 득표로 당선한 루스벨트는 다행스럽게도 의회 역시 민주당의 여대야소였다. 여소야대의 험지에 놓인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더욱 겸허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국민과 의회에 다가가야 할 처지다. 겸허하고 진실되게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그에게 적(敵)이란 없다.
 
최 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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