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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투명한’ 신탁 방식이 뜬다

240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맨션 2차 아파트. 이 단지 주민들은 부동산 신탁사에 재건축 사업 시행을 맡길지 검토 중이다. 한국자산신탁이 최근 사업참여 의향서를 제출했고,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가 다음 달 10일 주민 대상 투표를 통해 신탁방식 재건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재용 준비위 총무이사는 “과거 주변 재건축 단지 조합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어 주민들이 신탁방식을 선호한다”며 “추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동작구 흑석뉴타운 11구역은 서울에서 신탁방식 재개발 사업을 처음 확정했다. 지난달 재개발 조합이 이사회에서 신탁방식의 사업 추진을 의결한 데 이어 최근 신탁사 2곳의 사업참여 제안서를 받았다. 조합은 다음 달 중순께 조합원 총회를 열어 신탁사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재건축·재개발시장에 ‘신탁 방식’ 사업이 새로운 트렌드로 뜨고 있다. 이는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부동산 신탁사에 수수료를 내고 사업을 맡기는 방식이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된 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재건축과 재개발 단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조합이 직접 추진하던 재건축·재개발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은 지난해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졌다. 서울에선 재건축 위주로 신탁 방식이 활발했다. 특히 시범·수정·공작아파트 등 여의도 재건축 단지가 사업을 이끌어왔고, 올해 들어 강동구 삼익그린맨션 2차, 서초구 신반포 2차·방배7구역 등이 신탁 방식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재개발 구역으로는 동작구 흑석11구역, 도봉구 도봉2구역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요즘엔 부산과 대전, 인천으로도 신탁 방식 정비사업 열기가 번지는 분위기다.
 
신탁 방식이 확산된 건 조합 방식보다 사업 속도가 빠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추진위원회나 조합설립 단계를 거치지 않아 사업 기간을 1~2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형용 흑석11구역 재개발 조합장은 “사업 기간이 단축되는 만큼 공사비와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탁사가 자금관리를 맡아 조합 방식보다 투명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코람코자산신탁 관계자는 “조합 집행부 비리에 대한 리스크(위험)가 없어 신탁 방식을 원하는 주민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 요건이 비교적 까다롭다는 점이다. 우선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기존 조합 설립 요건과 동일하다. 동시에 주민들이 토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신탁사 명의로 등기이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시행자 지정 효과는 없다. 한 도시정비업체 관계자는 “아파트 소유권을 신탁사에 위임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신탁 방식을 추진하는 단지의 상당수가 신탁사 선정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 시 신탁 수수료가 적정한지도 살펴봐야 한다. 수수료는 대개 분양 매출의 2~4% 정도다. 업계에선 일반분양 물량 500가구짜리 서울지역 단지의 경우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본다. 또 신탁 방식이 도입 초기 단계여서 아직 사업을 마친 사례가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사업 과정에서 시행 착오를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사업을 진행하던 중 분쟁 등 문제가 생기는 경우 신탁 계약을 해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해관계인 전원의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수탁사(신탁사)의 귀책 사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신탁방식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흐름이 확산될 것으로 내다본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의 오랜 병폐인 조합 비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어 신탁 방식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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