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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넘버2’ 지터, 영원한 ‘뉴욕의 연인’이 되다

데릭 지터 재단 사진 [지터 페이스북]

데릭 지터 재단 사진 [지터 페이스북]

"세계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팬들 앞에서 플레이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가족의 의미는 영원히 남는다. 양키스의 가족으로 남게 돼 무척 감사하다."
 
'뉴욕의 연인' 이 건넨 작별인사는 달콤했다.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 4만7883명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15일은 뉴요커들이 20년 동안 사랑했던 데릭 지터(43)를 떠나보낸 날이었다. 뉴욕 양키스는 지터를 위한 영구결번식을 열고 가운데 담장 뒤 역사관에 자리를 만들어 그를 선수가 아닌 '가족' 으로 받아들였다.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의 등번호(2번) 영구결번식이 15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뉴욕 로이터=뉴스1]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의 등번호(2번) 영구결번식이 15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뉴욕 로이터=뉴스1]

116년 역사를 가진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40회 우승, 월드시리즈 27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명문 구단이다. 지터에 앞서 등번호가 영구결번된 양키스의 전설들은 베이브 루스(3번), 루 게릭(4번), 조 디마지오(5번), 미키 맨틀(7번) 등 20명 정도다. 기록만 놓고 보면 지터는 쟁쟁한 선배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홈런왕이나 타격왕,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등번호처럼 지터는 '2번'이라는 숫자와 어울리는 선수였다. 최고의 재능을 갖지 못했기에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열정이 넘쳤고, 진심을 다했다. 팬들과 언론이 극성스럽기로 악명 높은 뉴욕에서 지터는 1995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양키스 선수로 뛰었다. 그 결과가 메이저리그 통산 3465안타(역대 6위)와 5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그리고 뉴욕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얻었다.
 
스타 구단’ 양키스에서 20년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지터는 2003년 주장이 된 뒤 2014년 은퇴할 때까지 ‘뉴욕의 캡틴’으로 불렸다. [뉴욕 로이터=뉴스1]

스타 구단’ 양키스에서 20년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지터는 2003년 주장이 된 뒤 2014년 은퇴할 때까지 ‘뉴욕의 캡틴’으로 불렸다. [뉴욕 로이터=뉴스1]

1974년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당했다. 뉴저지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양키스의 유격수가 되겠다'는 수필을 썼다. 그의 꿈을 모두가 비웃었지만 그는 1992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양키스에 입단했다.
 
3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지터는 21세 나이에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가 됐다. 1996년 타율 0.301, 10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맛봤다. 젊은 나이에 스타가 됐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은퇴 시즌까지 평범한 땅볼을 굴려도 죽을 힘을 다해서 1루까지 뛰었다.
 
2004년 7월 2일 보스턴과의 홈 경기 연장 12회. 지터가 전력질주해서 파울 타구를 잡은 뒤 관중석으로 뛰어들어간 장면은 '더 다이브(the dive)'라는 고유명사로 불렸다. 딱딱한 의자와 부딪힌 얼굴에 피가 뚝뚝 흘렀다. 지터의 투혼 덕분에 양키스는 이날 승리를 거뒀다. 2012년 디트로이트와의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왼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그는 들것에 눕지 않고 걸어나왔다.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타 구단’ 양키스에서 20년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지터

‘스타 구단’ 양키스에서 20년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지터

지터의 성실함은 강한 리더십을 만들었다. 2003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11년 동안 양키스의 캡틴(주장)이었던 그는 모든 인종의 동료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지터가 양키스를 강하게 만들수록 상대는 그를 미워했다. 그러나 지터가 2014년 9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마지막 원정 3연전을 치를 땐 펜웨이파크의 레드삭스 팬들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지독한 앙숙 팀의 팬들도 결국에는 지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놀림의 대상이었던 그는 어느덧 '뉴욕의 얼굴'이 됐다. 그의 구릿빛 피부와 비취색 눈동자는 코스모폴리탄의 도시 뉴욕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의 영구결번식에는 임신한 아내 한나 지터(27)와 함께 했다. 이전까지 지터는 머라이어 캐리, 아드리아나 리마, 제시카 알바, 스칼렛 요한슨, 제시카 비엘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와 사랑을 나눴다.
 
은퇴할 때까지 그는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선수로 기억됐다. 많은 기록을 성취했고,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지터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날 의심하는 걸 좋아한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더 노력할 테니까."
 
데릭 지터는 …
● 포지션: 유격수(우투우타)
● 경력: 1992년 뉴욕 양키스 입단(메이저리그 1995년 데뷔)
199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2000년 월드시리즈 MVP, 올스타전 MVP
2003년 뉴욕 양키스 주장(은퇴 때까지) 2014년 은퇴(등번호 2 영구결번)
● 통산 기록: 타율 0.310, 3465안타(6위), 260홈런, 1311타점
● 별명: 뉴욕의 연인(머라이어 캐리, 타이라 뱅크스, 아드리아나 리마, 스칼렛 요한슨, 제시카 알바 등과 열애), 혼혈의 천사, 미스터 노벰버
 
김식 기자 seek@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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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