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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이 한국어 노래 부르는 그룹 등장…지금 K팝은 실험중

한 한국 케이블채널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EXP 에디션. [사진 아임어비비]

한 한국 케이블채널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EXP 에디션. [사진 아임어비비]

다른 음악으로부터 K팝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정의가 ‘한국어로 만들어져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라면 진작에 깨졌다.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한 9인조 트와이스 멤버 중 절반은 일본ㆍ대만 국적이고, GOT7은 한층 다양해 미국ㆍ홍콩ㆍ태국 출신 멤버들이 포진해 있다. 더이상 나고 자란 국적이 곧 문화권과 일치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한국인 없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그룹. 이들을 K팝이라 할 수 있을까.  
뉴욕에서 결성돼 서울에서 싱글 ‘필 라이크 디스’를 내고 활동을 시작한 EXP 에디션. [사진 아임어비비]

뉴욕에서 결성돼 서울에서 싱글 ‘필 라이크 디스’를 내고 활동을 시작한 EXP 에디션. [사진 아임어비비]

 

뉴욕 출신 4인조 EXP 에디션
싱글 내고 한국서 본격 활동
K팝 패러디 그룹 BgA도 인기
영역 확장 어디까지 가능할까

최근 K팝을 상대로 몇 가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싱글 ‘필 라이크 디스(Feel Like This)’를 발표한 EXP 에디션(EXP EDITION)이 대표적이다. 미국인 헌터를 비롯 크로아티아 출신 시메ㆍ포르투갈 출신 프랭키ㆍ일본계 미국인 코키 등 멤버 모두 한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한국인처럼 꾸미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다. MBC 뮤직 ‘쇼! 챔피언’ 무대에 올라 ‘그대 생각에 영원한 이 순간/ 나 숨쉬는 이유’라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한국 아이돌과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네 사람의 나고 자란 고향은 전부 다르지만 한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K팝 그룹이 됐다. [사진 아임어비비]

네 사람의 나고 자란 고향은 전부 다르지만 한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K팝 그룹이 됐다. [사진 아임어비비]

그룹명에서 엿볼 수 있듯 이들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하나의 ‘실험(experiment)’이었다. 2014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하던 김보라 씨가 평소 K팝에 관심이 많던 일본계 카린 쿠로다, 대만계 서맨사 샤오와 함께 아임어비비(I’m Making A Boy Band)라는 회사를 만들어 직접 오디션을 열고 보이그룹 육성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미국에서 발매한 싱글이 생각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돼 한국 활동까지 할 수 있게 됐다”며 “문화 간 접점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시도에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몇 년간 K팝의 성공으로 마치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장르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인 없이도 K팝 그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 가능해진 것은, (K팝을) 뮤직비디오나 화장법 등 몇 가지 코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장르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문화적 상호 교류나 시장 확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문화 한류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으로 역수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유튜브 스타 라이언 히가가 결성한 K팝 패러디 그룹 BgA. 한국 아이돌의 전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BgA 페이스북]

유튜브 스타 라이언 히가가 결성한 K팝 패러디 그룹 BgA. 한국 아이돌의 전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BgA 페이스북]

유튜브에서는 보다 활발한 교류를 포착할 수 있다. 구독자 수가 1960만 명에 달하는 일본계 미국인 라이언 히가는 지난해 5월 BgA(Boys generally Asian) 결성을 알렸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 여성들이 K팝 그룹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지만 아시안임을 강점으로 내세워 R.O.P(라이언)ㆍP드래곤(필립 왕)ㆍ대양(데이비드 최)ㆍJ라이트(저스틴 전)ㆍ증리(안준성)이라는 빅뱅 패러디 그룹을 만든 것이다.  
 
첫곡 ‘Dong Saya Dae(똥싸야돼)’는 ‘너는 여자/ 나는 모자/ 우린 감자’ 같은 '아무말 대잔치'에 가깝지만 누적 조회 1억 뷰를 기록했다. 이어 지난 3월 발표한 신곡 ‘후즈 잇 고나 비(Who’s it Gonna Be)’는 발매 2시간 만에 신보를 낸 몬스타엑스와 GOT7을 제치고 아이튠스 K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일주일 전부터 SNS를 통해 티저 광고를 내보내고, 팬클럽 이름과 그룹 컬러에 이어 리더를 정하는 과정을 담은 10분 짜리 뮤직비디오까지 만든 결과다. 단순히 K팝 그룹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에 퍼져 있는 관습까지 지적한다.  
 
지난달 한국어 싱글 ‘어때’를 발매한 흑인 여성 듀오 코코 애비뉴. [사진 코코 애비뉴 페이스북]

지난달 한국어 싱글 ‘어때’를 발매한 흑인 여성 듀오 코코 애비뉴. [사진 코코 애비뉴 페이스북]

과연 이들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영상사회학을 전공한 마이클 허트 교수는 “K팝이 미국 힙합 등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차용해 다시 새로운 시도의 발판으로 삼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와 재전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에미넴이 등장했을 때도 ‘왜 백인이 랩을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이내 문화적 경계를 허무는 기폭제가 됐듯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태국에서 유행하는 T팝이나 베트남의 V팝 모두 팝보다는 K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K팝에 대한 인종 장벽은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동아시아와 동아시아인이라는 문화적ㆍ인종적 차원이 작동하는 정체성의 공간”이라는 홍석경 교수의 설명처럼 피부색과 문화권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보다 열려있지만 그 경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폐쇄적으로 변한다. 한국 걸그룹 라니아에 합류한 흑인 래퍼 알렉산드라나 미국에서 열린 K팝 경연대회 우승자 출신인 흑인 여성 듀오 코코 애비뉴(CoCo Avenue)에 대한 상대적으로 저조한 관심이나 불편한 시선이 이를 방증한다. 버즈피드 설문조사 결과 EXP 에디션을 K팝 그룹으로 볼 수 없다는 응답률도 90%에 달한다.  
 
세계한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인규 고려대 교수는 “사람들이 K팝에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음악이 아닌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체계적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이들 사이에 외국인 멤버가 들어가면 음악은 더 잘할지 몰라도 아시안이 아닌 이상 튀어보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오 교수는 “BgA의 개그코드는 기존 한류에 냉소적인 계층에 소구력이 있다"며 “주류 K팝 팬들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단발성 이벤트가 될 확률이 높아 수익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 태권도처럼 세계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해외에 본사를 두고 현지에서 발굴해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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