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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용기가 바꾼 대한민국 투표

14대 의원 총선 군 부재자투표 선거 부정 폭로 [사진=중앙포토]

14대 의원 총선 군 부재자투표 선거 부정 폭로 [사진=중앙포토]

과거 군 부재자투표의 부정을 고발했던 이지문 중위의 사연이 재조명됐다.  
 
지난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군에 노골적인 지시가 떨어졌다.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에 투표하도록 전 장병에 정신교육을 실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자유당의 기호 1번 후보에 투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군 부재자투표는 영내에서 진행됐다. '상명하복'의 군 문화에 따라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던 동료 군인 500여 명은 묵묵히 명령에 따랐다.
 
동료 군인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단 한 명이 여기에 항명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학군단 29기로 임관해 육군 제9보병사단 28연대 2대대 6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던, 이지문 중위다.
 
1992년 3월 23일 밤, 당시 24세였던 이 중위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전국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조리를 폭로했다. 기자회견 직후 나가는 길에 그는 헌병에 구속됐고 다음 달 파면됐다.
 
이 사실이 퍼지자 그동안 입을 다물었던 군인들이 '부정 투표'가 사실이었음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날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고려대생등 대학생ㆍ재야인사들이 이지문 중위의 구속적 부심이 열리고 있는 9사단 보통군법회의장 앞에서 헌병들이 막아선 가운데 공개재판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고려대생등 대학생ㆍ재야인사들이 이지문 중위의 구속적 부심이 열리고 있는 9사단 보통군법회의장 앞에서 헌병들이 막아선 가운데 공개재판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이 중위의 폭로로 군 부재자투표는 영외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당시 민주자유당은 14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미래를 촉망받던 이 중위는 불명예 전역했고 예정되어 있던 대기업 취업은 취소되고 만다. 또한 이때 얻은 내부 고발자 낙인 때문에 삶이 순탄치 못했던 그는 1992년 3월 22일의 고발을 아직도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그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의 용기는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한 명의 용기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이 같은 부정선거 관행이 뿌리뽑힌 것이다.
 
임유섭 인턴기자 im.yu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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