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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재조산하

박정호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후보 시절부터 ‘나라다운 나라’를 내걸었던 문 대통령의 공식 블로그를 다시 둘러봤다. ‘문재인이 묻고 답하다 59문 59답’ 32번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좋아하는 한자성어는?’에 ‘재조산하(再造山河)’라고 적었다.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다. 재조산하는 문 대통령이 즐겨 인용한 문구다. 스스로 ‘2017년 올해의 한자’로 꼽기도 했다.
 
지난달 28일에도 그랬다. 당시 문 후보는 충무공 이순신(1545∼98) 탄신 472주년을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재조산하, 나라를 다시 만들라는 당신의 말씀 받들겠다’고 되새겼다. 재조산하를 말한 주체를 충무공으로 보았다. 충무공이 임진왜란 때 실의에 빠진 서애(西厓) 유성룡(1542~1607)에게 써 준 글귀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집권준비팀 명칭도 재조산하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실록·문집 어디에도 충무공이 그런 말을 한 기록이 없다. 잘못된 정보가 유통된 데에는 2015년 방영된 사극 ‘징비록’의 영향이 컸다. 진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절망한 유성룡에게 충무공이 “우리 모두 죽을 자격도 없다”며 재조산하가 적힌 종이를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극적 효과를 노린 드라마 제작진의 설정이다. 반면 재조산하를 실제로 꺼낸 이는 중국 명나라 특사다. 전란에 빠진 나라를 안정시킨 영의정 유성룡을 높게 평가하면서다.
 
이순신 전문가인 이상훈 한국국제대 연구교수는 “충무공이 만약 ‘재조’ ‘산하’ 두 단어를 썼다면 역모 혐의를 뒤집어썼을 것”이라고 했다. 왕조시대에 신하가 입에 담기에는 무겁고, 위험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되레 임란 당시 임금 선조는 조선에 병사를 보내 준 명나라 황제에게 보은하는 뜻에서 ‘재조번방(再造藩邦)’이란 글씨를 많이 썼다고 한다. 번방은 제후의 나라다.
 
국가개조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문 대통령에게 딴죽을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전략적 대의로 선택한 재조산하를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여소야대 정국, 위기의 한반도를 헤쳐 나갈 문 대통령의 국민통합, 정의로운 국가에 거는 기대가 크다. 패권주의라는 비판도 말끔히 씻어 내는 탕평정치를 고대한다.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문 대통령, 앞으로 매일 광화문광장의 충무공과 마주할 것 같다.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은 경청(傾聽), 즉 생각이 다른 이의 입에 귀를 활짝 열었다. 신분·직위를 떠나 전장에서 이길 지혜를 구했다. 재조산하의 시작은 거기에 있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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