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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꿈의 기술 좇다가 … ‘유니콘’ 대신 사기꾼 된 사업가들

‘테라푸기어’가 제작한 플라잉카는 면허·안전·환경 규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됐다. [유튜브 캡처]

‘테라푸기어’가 제작한 플라잉카는 면허·안전·환경 규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됐다. [유튜브 캡처]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은 평소 “사업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고객과 투자자에게 약속한 사업 계획을 잘 지키면 사업가, 지키지 못하면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이 미묘한 경계는 결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위대한 사업가로 칭송받는 스티브 잡스도 매킨토시의 실패로 사기꾼 취급을 받으며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스타트업 전성시대 빛과 그늘
240종 질병 진단하는 캡슐 개발
‘여자 잡스’ 홈스 신화 사기극 결론
자금 없어 파산, 법규 어두워 실패 …
3년 이상 버티는 스타트업 10%뿐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수많은 스타트업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창업투자 펀드인 요즈마 펀드는 100개의 스타트업 가운데 3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은 10개, 6년 이내에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업은 1개라고 보고 있다.
 
이에 경쟁의 형태도 과거와 달라졌다. 산업화 시대에는 개활지를 누가 빨리 개척하느냐의 경쟁이었다. 현재는 산악레이스에서 누가 빨리 정상에 서느냐의 싸움이다. 지름길을 찾든, 절벽을 타든 능력껏 산을 오르면 된다. 그러나 무성한 삼림에 숨어 경쟁자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남을 속이는 못된 기업도 등장한다. 투자금이 부족하거나 제도를 잘 몰라 실패하기도 한다. 혁신의 시대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기’ 기업이 양산되기 마련이다.
 
숨길 게 많으면 화려하다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는 환자 손가락에서 채취한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240종류의 질환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으나 허위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중앙포토]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는 환자 손가락에서 채취한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240종류의 질환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으나 허위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중앙포토]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홍보활동이 일반화됐다. 창업 성공에는 ‘홍보가 반’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과잉·과장 홍보는 자신의 빈약한 기술력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포장지로 사용되곤 한다.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헤지펀드 파트너펀드매니지먼트는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테라노스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9610만 달러(약 1089억원)를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테라노스는 채혈·내시경·컴퓨터단층촬영(CT) 등 복잡한 검사 없이 알약 크기의 캡슐을 손가락 끝에 찔러 240종류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테라노스에는 7억2400만 달러(약 8201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기업 가치는 한때 90억 달러(약 10조2000억원)까지 치솟았다.
 
테라노스의 성공에는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의 역할이 컸다. 그는 스토리텔링에 능했다. 2003년 19세의 나이에 테라노스를 세운 홈스는 어린 시절 바늘이 무서워 주사를 맞지 못한 기억에서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고 했다. 스탠퍼드대 화학과에 조기 입학해 중퇴하고 싱가포르 게놈연구소에서 일한 그는 큰 의심을 받지 않았다. 금발 미녀 최고경영자(CEO)의 등장에 대중은 열광했다. 스티브 잡스를 존경해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는다는 그에게는 ‘여성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국무부·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슐츠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빌 페리 스탠퍼드대 명예교수,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 등 거물들을 회사의 이사로 영입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탐사보도팀의 보도로 이 기업의 민낯이 드러났다. 피 몇 방울로 수많은 질병을 진단하는 혁신적인 기술은 없었다. 실제 진단할 수 있는 질병 수는 15개에 불과했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고 소송이 빗발쳤다. 바이오업계의 신데렐라는 순식간에 무일푼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인기 모바일 게임인 ‘루모시티’를 개발한 ‘루모랩’은 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했다. 루모랩은 이 게임을 알츠하이머 연구자 100여 명과 협력해 기억력 감퇴와 치매, 알츠하이머를 예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14.95달러(약 1만7000원)의 월정액을 내는 과금 사용자들이 크게 늘어 촉망받는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미 연방 통상위원회(FTC)의 조사 결과 이 게임은 뇌 질환을 예방하는 어떤 기술적 배경이나 연구자료도 없었다. 결국 루모랩은 과장 광고로 200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물이 말라 죽은 유니콘
 
클라우드 컴퓨팅회사인 ‘세일즈포스’의 설립자 마크 베니오프는 지난해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투자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는 유니콘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베니오프의 말마따나 자금난에 막혀 자의반 타의반 사기 기업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많이 등장한다. ‘릴리로보틱스’가 그런 사례다. 이 회사는 말 잘 듣는 애완동물처럼 주인을 자동으로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는 셀피(selfie) 드론을 개발했다. 지난해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6월 웹사이트에서 판매를 시작해 3400만 달러의 사전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올 2월 27일 돌연 파산을 선언했다. 예상보다 개발 비용이 불어난 것이 원인이다.
 
영국의 스타트업 ‘자노’도 셀피 드론을 개발하다 자금난에 좌절했다. ‘킥 스타터’를 통해 2015년 230만 파운드(약 34억원)를 모금했지만 그해 파산했다. 릴리로보틱스와는 달리 불완전한 상태로 제품 판매에 나섰으나 비행과 촬영 같은 핵심 기능에서 기술 오류가 발생해 구매자들의 원성을 샀다. 드론 기술은 비행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계 기술과 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오랜 시험 비행을 통해 누적된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까지 투자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기술력만 믿다가는 낭패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으나 허위로 밝혀져 과징금 처분을 받은 모바일 게임 ‘루모시티’. [유튜브 캡처]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고 홍보했으나 허위로 밝혀져 과징금 처분을 받은 모바일 게임 ‘루모시티’.[유튜브 캡처]

신기술을 소화할 시장이나 법적인 규제 등 주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자들의 고지식함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미국의 스타트업 ‘테라푸기어’는 2009년 플라잉카 개발에 성공해 놓고도 아직까지 상업화하지 못하고 있다. 플라잉카가 비행기인지, 자동차인지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실제 테라푸기어의 플라잉카는 비행기에 가깝다. 날개는 접이식이며 비행기처럼 활주로를 달려야 하늘을 날 수 있다. 동체가 지나치게 커 도로 주행에 적합하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수직이착륙 방식으로 개발 방향을 바꿨으나 이미 너무 많은 자금이 들어갔다. 특히 주행면허와 주차장, 안전관리, 대기오염 기준 등 제도적인 고려가 되지 않았다. 군용 외에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았다. 이에 최근 플라잉카 개발에 착수한 우버와 구글은 제도적 문제부터 먼저 접근하고 있다. 상용화 시점은 적어도 10년 뒤로 보고 있다.
 
1회 주사에 140만 달러(약 16억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으로 알려진 ‘글리베라’도 마찬가지다. 이 제품은 췌장염을 유발하는 유전자 질환인 리파아제 결핍증을 치료하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 때문에 2012년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뒤 단 한 차례만 처방됐다. 처방을 받으려면 질환을 입증하기 위한 수백 쪽짜리 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유전자 치료 시대가 열리는 마당에 글리베라는 바이오 스타트업들에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혁신 기업 실패 원인은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대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을 ‘성공한 기업’으로, 불행한 가정을 ‘실패한 기업’으로 바꿔봐도 그럴듯한 메시지가 나온다. 실패한 혁신기업엔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한 빌 게이츠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창업 투자의 옥석을 잘 가려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다. 투자금만을 노린 질 나쁜 창업가부터 시대와 맞지 않는 기술 창업까지 위험요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한 실패 사례가 많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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