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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퍼스펙티브] “정권 줄 타고 내려온 사장들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징비록
징비(懲毖)는 지난 잘못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대우조선해양의 징비록에 끌린 건 이 회사가 구조조정의 흑역사로 불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17년 전부터 살거니죽거니를 반복했지만, 교훈을 얻지 못했다. 정부·시장·회사는 실패를 거듭했다. 그새 세계 최고 기업은 대표적 좀비 기업이 됐다. 놔두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갈 길이 바쁘다. 오랫동안 청소를 제대로 못 했다. 새 정부에도 구조개혁은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대우조선이 시금석이다. 정부·기업·가계·노조와 글로벌 경쟁자까지 서로 이해가 얽혀 있다. 어떤 실타래를 어떻게 잡아당기냐에 따라 한국 중후장대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구조개혁 입에 달고 지냈지만
안일한 퍼주기 급급
박근혜 정부 실패 자초

고통 분담 원칙 철저히 지키고
회사보다 산업 전체를 보되
낙하산 인사 뿌리 뽑아야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음은 없어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 점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집권 직후 최대 골칫거리였을 현안 처리에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다. 임종룡은 구제금융을 선택했다. 정권 교체를 한 달여 앞둔 지난 3월이었다. 나는 “왜, 지금, 당신이냐”고 물었다. 그때 임종룡은 “시간이 없다. 일단 무너지고 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뻔히 이런 사정을 알면서 다음 정권에 떠넘기는 것이야말로 청문회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는 했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대우조선 처리는 실패했다. 2015년 10월 4조2000억원을 넣고도 못 살렸다. 그때 “다시는 돈을 더 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서별관회의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때 주무 장관이 임종룡이다. 그래 놓고 1년 반 만에 또 5조2000억원(자금 지원 2조9000억원+출자전환 2조3000억원)을 더 넣겠다니 채권단부터 설득이 잘 안 됐다. 국민연금과 사채권자의 극한 반대도 이해할 만했다. “시장 전망에 실패했다”는 변명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나. 상식적으론 새 정권이 의지를 갖고 새 해법을 내놓는 게 맞을 것이다. 시비·책임소재도 분명해진다. 그렇다 보니 당시 시장에선 새 정부와의 거래설까지 돌았다. 차기 정부 출범 전에 대우조선이라는 골치 아픈 건을 임 위원장이 해결해 주기로 했다는 게 거래설의 골자다. 그렇다면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 다른 대안은 없나. 나는 이런 의문들을 풀어야 했다. 시작은 아무래도 임종룡이어야 했다. 지난달 26일 임 위원장은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필자 뒤로 보이는 소난골 드릴십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상징이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는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1년째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못 받은 돈만 한 척당 5000억원. 얼마 전 거제 현장을 찾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 배를 바다에 묶어놓는 건 죄짓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필자 뒤로 보이는 소난골 드릴십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상징이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는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1년째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못 받은 돈만 한 척당 5000억원. 얼마 전 거제 현장을 찾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 배를 바다에 묶어놓는 건 죄짓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시 묻겠다. 왜 그때 당신이었나.
“구조조정은 정치다. 채권단은 손익 계산만, 정부는 산업적 판단만 하면 된다. 최종 결정은 정무적 판단, 리더십의 문제다. 결국 청와대 몫이란 얘기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청와대가 비어 있었다. 두려웠다. 모두 금융위만 쳐다봤다. 나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5만 노동자의 생사, 거제 경제의 부침, 국민연금의 손실, 국영은행의 혈세 투입, 개인투자자의 손실 책임…. 말 한 번 잘못하면 소송이요, 발 한 번 삐끗하면 패가망신이다. 이 모든 걸 임명직 공무원이 떠맡는 건 확실히 큰 부담이다. 그래도 해야 했다는 말이다. 임종룡은 “앞으론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의견을 내면 청와대가 국회의 뜻을 물어 결정하는 게 옳다”고 했다. 하기야 과거 일방통행식 구조조정 시대는 끝났다. 관치(官治)로 감당하기엔 시장이 너무 투명해졌다. 감출 수도 없다. 한두 사람, 한두 은행 팔을 꺾어 될 일이 아니다. 임종룡의 금융위가 회생안에 따른 대우조선의 앞날을 낱낱이 공개한 것도 그래서다. 과정·결과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대우 회생안의 골자는 ‘크기를 줄인 뒤 매각’이다. 한 번에 죽이기보다 천천히, 핵심 인력은 최대한 유지하자는 쪽이다.
 
그게 정답인가? 왜 한진해운 때와 다른가.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최선이다. 한진해운과는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 모든 구조조정이 같을 수 있나. 살리면 산업 논리, 죽이면 금융 논리라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말아 달라.”
 
임종룡은 대우조선이 한진해운과 비교되는 걸 많이 불편해 했다. 새 정부와의 거래설도 일축했다. “(문재인 대표가 하지 않겠다고 한) 인력 감축도 최대한 한다. 누구만 봐주는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다. 진짜로 거래했다면 그렇게 했겠냐는 뜻이다. 그의 ‘정답’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내게 그는 “현장을 가보라”고 했다. 그는 “현장엔 사람이 있다. 배가 있다. 6000억원짜리 소난골 드릴십 두 척도 있다. 저 배를 바다에 묶어 놓는 건 죄짓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달 30일 거제를 찾았다.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없다’ 제1 건조도크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에 그 유명한 소난골 드릴십이 있다. 해양플랜트, 대우조선 부실의 상징이다. 다 만들었지만 선주가 돈이 없다며 인수를 미루고 있다. 언제 받을지, 과연 받을 수는 있는지 알 수 없다. 못 받은 돈이 한 척당 5000억원, 두 척이니 1조원이다. 대우조선에 2차 구제금융을 지원케 한 주범이다. 대우조선이 당장 문을 닫으면 돈을 돌려받을 길은 영영 사라질 수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경쟁력이다. 경쟁력이 없다면 청산하는 게 옳다.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 사업을 사실상 접기로 했다. 한때 연 8조원이던 해양플랜트 매출을 지금 2조~2조5000억원 정도로 줄였다. 능력이 되는 공사만 맡기로 했다. 해양플랜트 총괄 이영순 상무는 “최근 5년간 손실 중 해양플랜트에서만 60%를 깨먹었다”고 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실력도 없이 저가 수주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과거 경영진은 실적만 따졌다. 매출 지상주의다. 설계·관리 능력도 없이 저가 수주에 매달렸다. 현대·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빅3 간 경쟁이 불붙어 피해를 키웠다. 결국 해외 선주들 배만 불렸다.”
 
대우조선은 수주심의위원회를 만들고 저가 수주를 금지했다. 사후약방문이지만 그나마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조선 빅3의 목표는 일단 살아남는 것이다. 수요에 맞춰 덩치를 줄이되 일감은 최대한 끌어와야 한다. 언제 저가 경쟁의 지병이 도질지 모른다. 지금도 해외 선주들은 “한국 3사는 절대 타협 안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인력 구조조정은 질과 양에서 미흡하다. 1차 자구 계획에 따라 2년간 2만 명 넘게 줄였는데 대부분 협력업체 직원(1만9000여명)이다. 원청업체는 3118명 감축에 그쳤고 그나마 대부분(약 2200명) 관리직이다. 협력업체 김영보 대표는 “같은 기술로 같은 일을 하는데 인건비는 원청 1명당 협력사 1.8명꼴”이라며 “그런데도 구조조정 땐 협력사 직원이 제일 먼저 잘린다”고 말했다. 임종룡의 2차 자구 계획에도 추가 인력 감축이 들어 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조원은 찔끔, 대부분 협력업체 인력이 정리될 것이다. 벌써 노조는 “회사가 살아나면 깎인 복지를 다시 늘려 달라”고 채권단을 채근하고 있다. 이래서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국민 혈세로 노조 좋은 일만 시킬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기 십상이다.
 
다른 조선사들의 불만도 크다. 대우조선이 사실상 정부 소유라 더 봐주고 퍼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경쟁업체 관계자는 “대우는 우리보다 훨씬 구조조정을 덜했다”며 “중국 정부가 좀비 기업을 지원해 우리 기업이 피해 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 라고 반문했다.
 
잠수함·군함을 주로 만드는 특수선 쪽은 경쟁력이 있다. 정부 주문 위주라 돈을 떼일 염려도 없다. 잠수함개발사업담당 서동식 상무는 고부가가치 선박의 성패는 결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군함·잠수함은 사람 싸움이다. 일본 도쿄대는 조선공학과를 없앴다. 중국은 조선공학과가 있지만 별로 인기가 없다. 국내엔 조선공학과가 13곳이나 된다. 경쟁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특수선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연 매출 1조원(총매출의 10~15%)이 고작이다. 현대·삼성중공업의 방산 부문과 합병설도 꾸준히 나온다. 특수선만 따로 살 수는 있어도 특수선만으론 대우조선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짚은 업황·기술·인력의 문제는 사실 작은 것이다. 진짜 징비 대상은 따로 있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낙하산”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로 쓰러진 대우조선을 1년 반 만에 살려낸 정통 대우맨이다. 10년 전엔 삼성중공업 주가도 추월했다. 세계 1등을 넘보던 대우조선은 왜 무너졌나. 그는 청와대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2006년 남상태·고재호 전임 사장들이 정권의 줄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인사 때가 되면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조직은 모래알이 됐다. 무소신·무책임만 남았다. 최고의 생산성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데 9년은 충분하고 남는 시간이었다.”
 
구조조정에 왕도는 없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의 건조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유럽, 가격의 중국과 싸우는 건 여전히 버겁다. 더 어려운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중국발 20년 조선업 호황은 2008년 끝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버티고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치킨게임이 진행 중이다. 초호황기 거품을 누가 효율적으로 제거하느냐에 승부가 달렸다. 가장 빨리, 많이 덩치를 키운 한국이 더 어렵다. 삼성·현대가 혼자 용을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우조선 회생안이 대우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지금의 불황만 넘기면 조선업이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근거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금융 채권자는 고통을 분담하되, 노동자와 중소 협력업체들의 고통이 추가되면 안 된다”고 했다. 같이 여행하다 경비가 떨어졌는데 한쪽은 한 푼도 내지 말라는 것과 같다. 이런 말은 이제 접어야 한다. ‘선거용 멘트’에 매달리다 대한민국 조선업의 미래를 망쳐선 안 된다.
 
시장이 봐주지도 않는다. 대우 채권 3900억원어치를 보유한 국민연금 기금은 정부의 이번 회생안에 끝까지 버텼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과 세금이 문제됐을 땐 당연히 국민연금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세금 편을 들면 배임이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과 세금은 다르다. 국민연금은 내가 저축한 돈이다. 소유·책임관계가 더 명확하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사실상 지급보증을 해준 뒤에야 회생안에 찬성했다. 대우조선 케이스는 두고두고 선례가 될 것이다.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다 되는 시절은 끝났다는 얘기다.
 
만만치 않기는 개인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우 채권 5억원어치를 보유한 이경신씨는 “증권사 직원이 말렸지만 투자했다. 책임도 내가 진다”고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과 그를 감독해야 할 산업은행의 분식회계 책임은 끝까지 묻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정부의 잘못도 철저히 따지겠다는 의미다.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구조조정은 진검승부다. 정부·시장·회사가 이해로 얽혀 있다. 일방통행식은 안 된다. 투명해야 한다. 낙하산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고통 분담의 원칙은 필수다.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주는 구조조정은 100% 실패한다. 대우조선만 봐선 안 된다. 회사가 아니라 산업 전체를 봐야 한다. 이미 시장에선 빅3→빅2로의 재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삼성과의 합병, 한화·GS 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선종(船種)별 헤쳐모여까지 다양한 방안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개혁을 내내 달고 살았지만 제대로 못 했다. 숙제는 더 밀려 새 정부로 넘어왔다. 또 다음 정부로 미룰 시간도, 돈도 없다. 구조개혁의 성패가 정권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오늘 ‘돌을 던져 옥을 구하는(抛塼引玉) 마음으로’ 대우조선 징비록을 기록하는 이유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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