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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미래만큼이나 무한 훌륭한 전통이 영감의 원천

피에르 알렉시 뒤마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는 180년 전 브랜드를 창업한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손이다.

피에르 알렉시 뒤마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는 180년 전 브랜드를 창업한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손이다.

 ‘잘 되는 집안은 뭐가 다를까.’‘기업이 180년 이상 영속하는 비결은 뭘까.’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피에르 알렉시 뒤마(50) 아티스틱 디렉터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여기 있었다.

에르메스의 6대손, 피에르 알렉시 뒤마 아티스틱 디렉터

뒤마 디렉터는 1837년 에르메스를 설립한 티에리 에르메스(1801~78) 창업자의 6대손이다.
그의 부친 장루이 뒤마는 1978년부터 2006년까지 최고경영자(CEO) 회장직을 무려 28년간 맡은 전설의 경영자다.
마구(馬具) 용품을 만들던 에르메스를 세계적인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뒤마 디렉터는 그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장루이 뒤마 회장이 닦아 놓은 기틀 덕분에에르메스는 오늘날 최고 명품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백이 없다”는 영국 가수 제인 버킨의
불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버킨백이나 모나코 왕비가 된 배우 그레이스 켈리 덕에 유명세를 탄 켈리백은수천만원이란 가격도 가격이지만 공급량이 달려 몇년을 기다려도 구매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수요에 따라 공급을 늘리지 않는 전략도 뒤마 회장으로부터 나왔다.
최근 럭셔리업계가 한풀 꺾인 가운데서도 에르메스는 두자릿수 성장을 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뒤마 디렉터를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시계 주얼리 박람회 바젤월드에서 만났다.
 
글(바젤)=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에르메스
 
- 아티스틱 디렉터의 역할은.
 
 “에르메스의 가죽(핸드백)·실크(스카프)·의류·시계·향수 등 16개 제품군 전체와 존 롭(남성 슈즈)·생루이(크리스탈)·퓌포카(포크·나이프 실버웨어)와 같은 그룹 소속 자회사의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총괄한다.
에르메스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비전을 제시한다. 제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린다. 비전이 없으면 사막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6시 방향에 위치한 기계식 모래시계가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려주는슬림 데르메스 레흐 앙파시앙뜨.

6시 방향에 위치한 기계식 모래시계가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려주는슬림 데르메스 레흐 앙파시앙뜨.

- 에르메스의 본질이 뭘까. 창의력인가.
 
 “아버지는 ‘걷기 위해서는 두 개의 다리가 필요하다’고 늘 말했다. 한 다리는 디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장인의 기술이다. 회사가 오랜 세월 영속하면서 쌓인 지식과 경험이 에르메스의 본질이다.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는 건 행운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앉아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과거는 큰 자산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 시계 부문은 매출 비중이 3%에 불과하다.
 
 “1920년대에 증조부(에밀 에르메스)가 시계 사업을 추가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션과 장신구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계를 만들게 됐다. 이젠 우리 DNA와 역사, 전통의 일부다. 당시는 예거 르쿨트르 같은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와 협업하는것이 새로운 시도였다. 70년대 아버지가 스위스에 시계 제조 회사를 세웠고 무브먼트(시계 동력 장치) 제조사인 보쉐 지분을 인수해 자체 무브먼트를 제작하게 됐다.”
 
 에르메스 시계는 기계식 시계가 구현하는 복잡한 기술력을 낭만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르 땅 서스팡듀’는 원하는 순간에 버튼을 누르면 시계가 잠시 멈췄다가 원래 시간으로 돌아간다. 시침이 숨었다가 원할 때 나타나게 하는 ‘레흐 마스케’, 숫자판이 불규칙한 간격과 크기여서 그 사이를 지나는 시곗바늘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서둘러 움직이는 ‘그란되르’도 재미있다. 올해 바젤월드에서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시간을 맞춰 놓으면 그 시간이 될때까지 카운트다운하는 분침을 볼 수 있는 ‘슬림 데르메스 레흐 앙파시앙뜨’ 시계를 선보였다.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까지 즐기자는 의미다.
 
- 미술을 전공(미국 브라운대)했는데, 1992년 에르메스에 입사해 홍콩·대만·중국 등 아시아 각국 지사에서 근무하며 경영부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입사 후 10년간은 리테일 업무를 했다.홍콩에서 근무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개척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97년 한국과 중국에 각각 첫 에르메스 매장을 열었다. 아버지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파리로 돌아왔다.
아버지한테 직접 제품 개발과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배우고 싶었다. 매일 아버지와 함께 일한 그 날들이 내겐 의미있고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2006년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뒤를 이어 아티스틱 디렉터가 됐다.”
 
- 아버지가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아버지는 한 해 동안 에르메스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올해의 테마’를 정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가령 2005년 주제는 강(River)으로 정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에르메스는 강과 같아서 수원지가 여러 곳이다. 그것이 모여 흘러서 에르메스라는 더 큰 강을 이룬다.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나의 세계가 되듯이 에르메스도 흐르는 강물이 되어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자.’ 에르메스에 대한 아버지의 직관이 담긴 말이다.”
 
- 오너 가문인데 경영자 길을 접은 이유는.
 
 “경영 파트에 있을 때 어느날 문득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우울했다. 나는 창조하는 과정을 사랑한다. 남보다 안목이 좋다는 게 내 장점이라는 것도 안다.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부정하면 행복할 수 없다. 아버지는 순순히 허락했는데 오히려 나 자신이 이를 인정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 여섯 세대가 이어가는 동안 어려움도 있었을텐데.
 
 “내가 속한 6세대는 LVMH그룹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막아야 했다. 사촌인 악셀 뒤마(46) 회장의 지휘 아래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방어에 성공했다. 가족기업이 독립성을 잃으면 그 사업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안정됐지만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경쟁사인 LVMH는 에르메스 지분을 비밀리에 사들여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증조부 에밀 에르메스도 1929년 대공황 직후 빚을 못 갚아 회사를 거의 잃을 뻔했다. 사위였던 내 조부(로베르 뒤마)가 납품업자들을 일일히 찾아가 설득한 끝에 2년간 상환을 유예받았다.”
 
- 세대별 업적에서 배울 점은.
 
 “세상은 계속 변하고 우리는 그 세계를 수용하며 흐름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사는 방식도, 필요한 것도 다 달라진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차가 사라질 때 에밀 에르메스는 승마와 마구 용품 사업에서 가방·장신구로 전환했다. 1960~70년대 항공산업이 활황일 때 아버지는 전 세계를 무대로 면세 사업을 시작했다. 내 세대는 중국·한국·대만과 같은 아시아 시장을 개발하는 것으로 기여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당시 이런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은 현재 우리 수익의 4분의 1을 차지할만
큼 중요한 시장이 됐다.”
에르메스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가 토요 이토와 함께 지은 바젤월드의 에르메스 파빌리온. 장인 정신, 자연 소재의 우아함, 그리고 혁신에 관한 철학을 표현했다.

에르메스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가 토요 이토와 함께 지은 바젤월드의 에르메스 파빌리온. 장인 정신, 자연 소재의 우아함, 그리고 혁신에 관한 철학을 표현했다.

 
- 과거라는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나.
 
 “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면서 동시에 유산을 관리하는 볼티모어팀 수장이다. 사내박물관에 서류, 제품 컬렉션과 모든 추억을 모아 보관한다. 오래된 제품을 되사와 아카이브 컬렉션을 채우고, 디지털화 하는 작업도 한다. 추억이 없는 하우스는 비전이 없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다음 세대가 알 수 있도록, 또 비전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방대한 작업이다. 과거는 미래만큼이나
무한한다. 제품을 이해려면 제품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무엇이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어떤 장애물이 있었는지를 함께 알아야 한다.”
 
- 장인 정신과 기술을 앞세우게 된 배경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우리의 차이는 장인이다. 우리는 프랑스에만 15개 공장에 3000명의 장인이 있다. 아버지의 비전은 공장 그 이상의 작업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장인 개개인이, 그리고 그들이 작업하는 공간이 존중받는다고 느낄만큼 독립적이고 온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장엔 자연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령 가방 하나 만드는데 20시간이 걸린다면, 시간의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질이다. 한 장인이 한 개의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만든다. 
책임감이 있을 때 자존감도 생긴다.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은 존재가 부인되는 것이다. 에르메스의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 불경기에도 에르메스가 잘 되는 이유가 뭘까.
 
 “어려운 때일수록 에르메스는 사람들이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피난처 같은 역할을 한다. 에르메스 주식도 그렇고, 에르메스 제품도 그렇다. 모든 게 무너지고 분열되는 것 같을 때 오렌지색 에르메스 박스는 그 가치를 더욱 견고히 한다.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감정은 불행하게도 공포인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에르메스의 역사와 퀄리티, 가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늘 우리는 경쟁자보다 실적이 더 좋았는데, 우려를 불식시키는 안심(reassuring)이라는 가치 때문이다.”
 
- 올해의 테마 ‘오브제의 의미’는 어떻게 정했나.
 
 “지금까지 인류는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냈다. 미래 세대에게 21세기는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낸 시기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오브제의 홍수 속에 이제는 그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오브제는 어디에서 오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우리는 왜 오브제에 둘러싸여 살고, 그것을 모으고 열광하는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오브제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라는 에르메스의 초대장이라고 할까. 2018년, 2019년 테마는 이미 정했고, 지금은 2020년 테마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의 모든 영감을 동원하고, 철학자인 팀 멤버와 의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깊은 내면에서부터 오는 나의 직감을 가장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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