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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그곳'

범죄자의 도피처, 강력범죄의 온상, 경찰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치안, 여기에 테러 위협까지…. 
우리가 필리핀을 떠올릴 때 즉각 따라붙는 온갖 부정적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분명 한국인이 사랑하는 나라다. 이 나라를 찾는 외국인 4명 중 1명이 한국인으로, 매년 외국인 방문객 가운데 단연 압도적 1위를 차지한다. 

마닐라 인근 타가이타이 '소냐스가든'
싼값에 누리는 이토록 세련된 여유로움이라니

아열대성 기후에 크고 작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 나라에 걸맞게 지금까지는 보라카이·세부 같은 해변 휴양지를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나 골프를 즐기는 성인 남성 관광객 수요가 많았다. 최근 필리핀은 이와 다른 컨셉트의 여행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유유자적한 자유를 누리는, 이른바 웰빙 투어다. 

굳이 무슨 해양스포츠를 하거나 관광을 하지 않아도 여자들끼리도 얼마든지 싸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먹고 즐길 수 있는 그런 휴식같은 여행 말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는 필리핀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물론이다. 
소냐스가든에서 스파 받으러 들어가는 길. 무려 2 헥타르(1만㎡)에 달하지만 골목이 아기자기해 오히려 아담하게 느껴진다.

소냐스가든에서 스파 받으러 들어가는 길. 무려 2 헥타르(1만㎡)에 달하지만 골목이 아기자기해 오히려 아담하게 느껴진다.

 
한시간 거리의 다른 세상
휴양지로의 환승을 위해, 혹은 카지노나 골프를 즐기려고 마닐라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빈약한 인프라와 열악한 치안 상태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웬만한 호텔이나 쇼핑몰에 들어갈 때마다 보안 점검대를 통과해야 할 정도니 말이다. 사실 떠나기 전이 더 두려운 지도 모르겠다. 보라카이 같은 휴양지조차 테러 위협에 여행 유의 지역 아닌가. 
하지만 마닐라 남쪽으로 1~2시간만 달리면 영화 '마스터'가 보여줬던 마닐라 빈민굴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요즘 한국에선 만나기 힘든 새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기분좋은 햇살은 기본. 이토록 싼 값에 이렇게 과한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은, 천국 같은 휴양지가. 
화산 안에 호수가, 그 안에 화산이 있는 타알화산. 활화산이다.

화산 안에 호수가, 그 안에 화산이 있는 타알화산. 활화산이다.

바로 카비테 주 타가이타이 시에 있는 타알호수 인근 휴양지다. 타가이타이는 화산 폭발로 호수가 만들어지고 다시 폭발이 일어나 분화구 안에 다시 작은 분화구가 생긴, 다시 말해 세계 유일의 화산 속 화산 타알화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700m 구릉지대라 마닐라보다 시원해 주말이면 가족 단위 휴양객이 필리핀 전역에서 모여든다. 
그 흔한 해변 하나 없지만 잘 가꾼 정원 속에 콕콕 박힌 유명한 리조트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소냐스 가든(Sonya's Garden)이다. 
 
정원에서 행복을 찾다 
소냐스 가든은 이름 그대로 소냐의 정원이다.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1964년부터 20여 년 간 필리핀내셔널뱅크(PNB)에서 근무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인 소냐 가르시아가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정원을 생각하며 만든 공간이다. 1998년 레스토랑(Sonya's Secret Cottage Restaurant)을 시작으로 2002년 현재의 영국식 B&B(베드&브랙퍼스트) 컨셉트의 리조트를 공개했다. 2008년 스파까지 문을 열며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소냐스가든에서 만난 소냐 가르시아. 불쑥불쑥 튀어나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잘 나가는 뱅커였지만 '행복해지고 싶어' 소냐스가든을 열었다. CNN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소냐스가든에서 만난 소냐 가르시아. 불쑥불쑥 튀어나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잘 나가는 뱅커였지만 '행복해지고 싶어' 소냐스가든을 열었다. CNN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소냐는 한적한 시골에 이런 B&B를 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뜩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행복한 기억을 찾다보니 그게 정원이었다. "
결코 돈 많은 귀부인이 노년의 취미생활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표현하는 가식이 아니다. 소냐스 가든에 일단 발을 디디면 어디서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소냐와 마주친다. 정말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인다. 그렇다고 적당히 아무거나 걸친 푸근한 동네 할머니를 떠올려선 안된다. 흰색 숏팬츠를 멋스럽게 소화하는 스타일만 봐도 그의 남다른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소냐스가든 온실 안에 놓인 의자. 

소냐스가든 온실 안에 놓인 의자.

무려 2헥타르(2만㎡)에 달하는 정원 곳곳은 물론 이 넓은 공간 안에 동화처럼 자리잡은 22개의 오두막집(빌라)에서 안주인의 세련된 안목을 목격할 수 있다.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다 
체크인을 기다리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냐는 "이곳엔 에어컨처럼 자연을 해치는 기구는 없고 식재료는 모두 이곳 농장에서 기른 유기농"이라고 자랑했다. 분명 자랑인데 불안했다. 음식은 그렇다치고 한낮에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 에어컨 없는 방에서 자라고? 
단 하루를 머물러도 이곳에선 내가 주인이다. '프라이빗(사유지)' 표지가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오두막이 나온다. 

단 하루를 머물러도 이곳에선 내가 주인이다. '프라이빗(사유지)' 표지가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오두막이 나온다.

소냐스 가든은 영국식 B&B에서 컨셉트를 따왔지만 묵는 공간은 완전히 다르다. 좁은 방 한 칸이 아니라 집 한채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오두막집 크기는 모두 제각각으로 2~6명이 한 빌라에 같이 묵을 수 있는데, 모두 독립된 공간이라 이곳에선 단 하루를 묵어도 주인이 된다. 내가 묵은 곳은 '프라이빗(사유지)'이라는 표지가 붙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리코리쉬(감초)'라고 이름 붙인 2층 집이었다. 
소냐스가든은 호텔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식이 아니라 허브 이름을 딴 독채 오두막집을 독립적으로 이용한다. 

소냐스가든은 호텔 건물 안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식이 아니라 허브 이름을 딴 독채 오두막집을 독립적으로 이용한다.

방에 들어가니 정말 에어컨이 없었다. 심지어 냉장고도 없었다. TV는 있을 턱이 없고, 전화조차 없었다. 그래도 기분 좋게 놀랐다. 처음엔 방이 너무 예뻐서 놀라고 그 다음엔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한번 더 놀랐다. 
빳빳하게 풀 먹인 침대보와 레이스 테이블보, 독특한 가구까지…. 싼 값에 비해 너무나 우아한 인테리어에 감탄하게 된다. 

빳빳하게 풀 먹인 침대보와 레이스 테이블보, 독특한 가구까지…. 싼 값에 비해 너무나 우아한 인테리어에 감탄하게 된다.

주말이래야 식사를 모두 포함한 하룻밤 가격이 3400페소(1인당 7만 8000원)에 불과한데 빳빳하게 풀 먹인 새하얀 침대보 하며,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레이스 커튼이라니. 세면대와 샤워실에서까지 푸른 녹음을 볼 수 있게 야외 공간을 실내로 끌어들인 화장실도 인상적이었다. 
소냐스가든 오두막집은 화장실조차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니라 야외와 연결된다. 

소냐스가든 오두막집은 화장실조차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니라 야외와 연결된다.

하룻밤을 자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놓은 덕분에 새소리에다 기분좋은 바람을 맞으며 잠에서 깼다. 
소냐스가든엔 TV는커녕 에어컨도 없다. 덕분에 창문을 열고 자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소냐스가든엔 TV는커녕 에어컨도 없다. 덕분에 창문을 열고 자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인근 리조트보다 싼 값에 서비스 받을 수 있는 소냐스 스파. 

인근 리조트보다 싼 값에 서비스 받을 수 있는 소냐스 스파.

소냐스 가든은 꼭 이곳에서 잠을 자지 않더라도 스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많이들 찾는다. 인근 너처 웰니스 빌리지에선 90분짜리 필리핀 전통 전신 마사지 가격이 1800페소(4만1000원)인데, 여기서는 그 절반 가격 정도밖에 안된다. 
소냐스가든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 계곡에 있는 전용 수영장. 

소냐스가든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 계곡에 있는 전용 수영장.

이곳에 머물며 싼값에 맘껏 스파를 받아도 좋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묘미다. 그저 하릴 없이 산책을 하거나 너무 더우면 자동차로 5분 거리(직원에게 부탁하면 데려다준다)에 있는 계곡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도 좋다. 아니라면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인 팜투테이블(인근 농장에서 키운 채소로 음식 내기)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 정원 속 농장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르다. 
투숙객은 직원에게 요청하면 언제든 무료로 농장 투어를 하며 방울토마토 등 이곳에서 기르는 채소를 맘껏 따서 가져갈 수 있다. 오전에 파슬리 따러 나가는 셰프를 따라 나서보니 온실 속엔 다양한 향신료용 허브나 샐러드용 채소가 넘쳤고, 패션푸루트나 아보카도, 망고 같은 열대과일이 매달린 나무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다. 
소냐스가든 뷔페에서 직접 담은 샐러드. 인근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과일·채소들이다. 

소냐스가든 뷔페에서 직접 담은 샐러드. 인근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과일·채소들이다.

소냐스가든 식당 바로 옆에는 먹을 수 있는 꽃이 피어 있다. 바로 따다가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된다. 

소냐스가든 식당 바로 옆에는 먹을 수 있는 꽃이 피어 있다. 바로 따다가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된다.

 
외국인 적어 싼값은 매력
아쉬운 건 역시 인프라였다. 마닐라 도심에서 자동차로 1~2시간이면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데 마땅한 교통편이 없다. 차를 렌트해서 가거나 택시를 대절해야 하는데 초행길이라면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외국인 관광객보다 필리핀 내국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덕분에 숙소든, 스파든, 전망 좋은 레스토랑이든 값은 싸다. 아직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 싶다. 
타가이타이=글·사진 안혜리 기자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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