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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손에 다시 책 들어야 나라를 반듯하게 세울 수 있다

[CRITICISM] 출판과 우리사회의 미래
일러스크=강일구

일러스크=강일구

1961년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유대인 학살의 주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1906~62)이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75)는 시사잡지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이 세기의 재판을 취재했다. 1963년에 간행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은 아렌트의 아이히만 재판 관찰기다.
 

아렌트가 갈파한 ‘악의 평범성’
현대인들에게 보편적 현상화
국정농단도 집권층의 사유불능 탓
인간은 독서로 이성적 사회 만들어

한국 공공도서관 책 구입비 550억
하버드대 2000억과 비교도 안돼
송인서적 부도 사태는 예견된 일
책과 독서, 일상적 질서로 삼아야

아렌트는 나치의 이 유대인 학살범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임에 놀랐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히만은 유대인 친구를 두었고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교양인이었다. 재판과정에서는 칸트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수백만  명을 학살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와 상관의 명령에 성실하게 복종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국제적 관심 속에 7개월 동안 진행됐고, 1962년 5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미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등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아렌트는 이 재판을 관찰하면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세계인들에게 제시했다. 지식 사회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악의 평범성’은 생각의 부재, 생각의 불능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아렌트는 진단했다.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로부터 인간사회의 불행은 비롯된다.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는 행동의 부재를 낳는다. 사유하는 능력의 부재 때문에, 인간사회의 구조와 의미를 사유하는 문제의식의 부재 때문에, 그 인간은 윤리적 책임도 부재하게 된다.
 
미디어가 메시지가 되는 대중의 시대에 매스미디어는 인간을 더욱더 획일화하면서 생각 없게 만든다. 고도로 발달한 이 디지털 문명의 과학기술 시대에 우리는 모두 일차원적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기술전체주의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은 현대인 모두에게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존재한다.
 
일본제국이 몰락으로 치닫고 있던 1945년 2월 16일, 식민지 조선의 시인 윤동주(1917~45)는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아름다운 시혼(詩魂)의 윤동주는 43년 3월 체포돼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다 그렇게 요절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96)는 그의 소설 바다와 독약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들을 고발한다. 나의 가슴과 머리에는 지금도 소설 『바다와 독약』의 섬뜩한 풍경이 선연히 각인돼 있다. 생체실험을 하다 퇴근한 후 태연하게 술 마시고 담소하는 그 과학기술자들은 또 다른 아이히만들이었다.
 
 
사유 불능자들을 몰락시킨 촛불평화혁명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이어진 한국의 촛불평화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측근의 사유불능으로 성취된 것이었다. 무엇이 정치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권력자와 그 부하들, 무엇이 공적 영역이고 무엇이 범죄행위인지 의식하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의 몰락이었다. 지도자의 생각 없음과 사유불능 때문에 그 부하들은 부당한 명령을 생각 없이 기능적으로 집행했던 것이다.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사유불능의 권력자들에 의해 초래되는 국정 농단을 각성하게 한 준거였다. 촛불평화혁명 과정에서 한 권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한국인들은 치열하게 담론하고 사유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소식을 듣고 봉직하던 튀빙겐대학 뒷동산에 올라 동료들과 환희의 춤을 추었다는 철학자 헤겔(1770~1831)은 그의 책 법철학(1821) 머리말에 명언을 기록한 바 있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성이란 사유로부터 형성될 것이다. 사유 없는 사회란 이성적인 사회가 아닐 것이다. 한 권의 책이란 이성을 담론한다. 이성적 행위가 한 권의 책이다. 인간은 한 권의 책으로 인간답게 존재한다. 인간은 독서하면서 이성적인 사회를 키워 낸다.
 
동서고금 현인들의 생각을 담아낸 책은 인간의 반듯한 삶을 모색하는 질문이다. 삶이 구현되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고 그 질문에 대한 성찰적 대답이다. 한 권의 고전이란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유와 이성의 축(蓄)이다.
 
명대의 이탁오(李卓吾, 1527~1602)는 질문의 사상가였다. 그의 저서 분서(焚書)와 『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은 기존의 사유와 이론을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질문하기다. 질문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사상과 이론에 감동한다.
 
하나의 이론과 사상만을 강요하는 것이 전체주의다. 파시즘이다. 나치는 그와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았다. 다른 사상과 이론을 분서했다. 민주주의란 나와 다른 생각을 용인하고 나와 다른 견해를 포용한다. 나와 다른 이론과 사상을 보장하는 정치시스템이다.
 
책은 다원의 세계다. 다양한 생각과 이론을 담아내는 것이 책이다.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기에 한 권의 책은 아름답다.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는 책의 세계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다.
 
 
슬로건으로 나라와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촛불평화혁명의 경이로운 성취를 체험하면서 나는 책을 생각하고 있다. 한 손에 촛불을 들면서 또 한 손에 책을 들어야 한다고. 촛불평화혁명의 가치와 미학을 성찰하는 책과 책읽기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국가사회는 새로운 차원으로 일어설 수 있다고.
 
촛불평화혁명과 대통령선거를 체험하면서 나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치에 나서는 사람들,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지도자들이 표명해 내는 말의 내용과 그 수사를 관찰하고 있다.
 
슬로건이 난무하고 있다. 창조라는 슬로건만 외치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권력자가 창조경제라고 외치면 생각 없는 그 추종자들은 창조경제가 구현된다는 황당한 착각에 빠진다.
 
창조와 창조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정치고 정책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조건으로 뒷받침되고, 교육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창조와 창조경제는 가능해진다. 2014년 나라 전체의 공공도서관 책 구입 예산이 650억원이었다. 2015년에는 55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해 하버드대학 1년 도서구입예산은 2000억원이었다. 서울대는 110억원, 연세대는 80억원 정도였다. 창조와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창조와 창조경제의 한 원천인 책과 독서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정치가 자행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책 도매회사 송인서적이 어느 날 느닷없이 부도를 맞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산될 수밖에 없다. 도산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사실은 기적이었다.
 
2000년 우리나라의 서점 수는 3500여 개였다. 2015년에는 2000개로 줄어들었다. 서점은 지식사회·창조사회의 실핏줄이다. 지식사회·창조사회의 실핏줄이 이렇게 줄어들고 있는데 송인이 버틸 수는 없다.
 
1997년부터 98년에 휘몰아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시기에 이 나라의 출판계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책값으로 받은 어음들이 하나같이 휴지가 됐다. 그 혹독한 시절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어쩜 대견하다고 할 것이다.
 
‘송인 부도’와 같은 책 유통의 위기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나라와 사회의 건강한 정신적 삶, 창조와 창조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조건으로서의 출판정책이 조직되고 실현되지 않는 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대선에 나선 사람들, 그와 함께 캠프를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 내놓는 문화정책이란 것들도 나에겐 지극히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슬로건이다. 창조적인 나라와 사회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조건과 기반을 구축하기보다 무턱대고 지원만 하겠다고 한다.
 
모든 문화·예술 창조의 원천은 책 쓰기, 책 만들기, 책 읽기로부터 시작된다. 사유의 힘, 창조의 정신이란 사실은 책으로 실체화된다. 어디 문화·예술뿐인가. 반듯한 정치·경제·과학이란 책으로 구현되는 인문정신으로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정의롭고 도덕적인 국가사회의 지속적인 운용이란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선순환 구조의 이행과정을 의미한다. 책 쓰기, 책 만들기, 책 읽기란 국가사회의 공공시스템이다. 도로·항만과 같은 국가 사회 인프라보다 차원 높은 문제의식이고 이론이다.
 
이 높은 차원의 국가사회 인프라를 사적 영역에 맡겨 둘 수는 없다. 이 21세기 지식정보 문명시대에, 이 4차산업시대에, 책 쓰기와 책 만들기와 책 읽기는 공공의 영역이 돼야 한다.
 
1960년대에 경제개발정책을 펼치면서 과학기술자와 산업엔지니어들의 육성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발전의 한 동력이 됐다. 이 과학기술문명시대에, 지식정보 기획자·에디터들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진다. 공공차원에서 이들을 육성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복지가 우리 모두의 중심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몸을 치유해 주는 복지뿐 아니라 마음을 치유해주는 복지가 사실은 더 중요하다. 몸의 병을 건강하게 하는 복지와 더불어 마음의 병을 건강하게 하는 문화예술복지가 우리의 당면한 과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1958년 6월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을 발표했다. 생각하는 삶은 이 국토 산하에 사는 민족성원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생각을 가슴에 각인시키는 정신의 힘이 되고 있다. 1961년 6월 다시 함석헌 선생은 ‘5·16을 어떻게 볼까’를 썼다. 총칼 든 군인들의 쿠테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정신의 글이었다. 총과 칼로, 물질만으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했다. 생각의 힘, 정신의 힘 없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고 했다.
 
촛불평화혁명은 무엇인가. 정의롭고 도덕적인 국가사회를 구현하자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고 지향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국가사회란 무엇으로 가능한가. 정신의 힘, 생각의 힘으로 가능하다. 문화와 예술이 자유롭게 창조되는 민주주의 국가사회다.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반듯한 교육으로 가능하다. 반듯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젊은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기를 우리의 교육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가사회의 창조적인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기를 정치와 정책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책과 독서를 우리 삶의 일상적인 질서로 삼아야 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6년 한길사 창립. 한국출판인회의·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역임.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책의 탄생』『책의 공화국에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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