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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 39조 마리 미생물은 유익한 물질 만드는 ‘제2 장기’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
대장에서 비타민 K2 등을 생산하며 병원균의 증식을 막아주는 대장균. 일부 변종은 식중독을 일으킨다. 막대 모양이다. [사진 픽사베이]

대장에서 비타민 K2 등을 생산하며 병원균의 증식을 막아주는 대장균. 일부 변종은 식중독을 일으킨다. 막대 모양이다. [사진 픽사베이]

인간의 세포는 모두 30조 개 정도지만 인체에 기생하는 미생물은 39조 마리에 이른다. 이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 즉 세균이다. 이들은 사람의 생존과 건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장내 미생물이 음식에 들어 있는 단백질·지질·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우리가 섬유질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또한 미생물은 비타민K와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신체 미생물을 ‘제2의 장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신체에 없는 비타민K 등 만들며
1500만년 동거, 생존·건강에 필수
박테리아 종류가 비만에 영향
스트레스 견디는 능력과도 관계
생균 요구르트 심리 안정시켜

 
건강한 사람은 거의 모두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병원균이 발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익한 미생물 덕분이다. 실제로 여성의 질내 박테리아 구성비는 출산을 앞두고 극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이는 태아가 처음으로 미생물을 접하게 되는 산도를 좀 더 적절하게 정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태아는 거의 무균상태지만 출산 과정에서 엄마의 질에 있는 박테리아를 얻게 된다.
 
 
출산과정에서 유익한 미생물 물려받아
출생 후 2, 3년간 아기의 미생물 군집이 성숙해 가는 동안 면역계도 이와 조화를 이루고 함께 발달하면서 이들이 적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오히려 인간의 친구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예컨대 모유에는 아기가 소화할 수 없는 올리고당이 풍부하다. 모유의 고형물 중 지방, 유당에 이어 셋째로 많다. ‘인간모유올리고당’은 아기의 대장에 살고 있는 유익균인 비피더스의 먹이가 되며 장 점막에 병원균이 달라붙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원래 아기의 면역력이 약한 것도 유익한 박테리아를 체내에 정착시키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11월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을 보자. 이에 따르면 생후 6일된 쥐의 적혈구에는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특정 단백질(CD71+)이 성체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에서 이 단백질을 제거하자 정상적인 장내 박테리아에 전에 없던 염증 반응이 나타났다. 문제의 단백질은 사람의 탯줄 혈액에도 성인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체내 미생물이 건강에 필수라는 사실은 과학 실험실의 무균 생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으며 뼈가 허약하고 면역계가 손상됐으며 행태도 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의 체내·외에 사는 대부분의 미생물은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장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 2011년 뉴욕의 몬테피오르 의료센터 연구팀이 난치성 장염(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77명을 치료한 사례를 보자. 그 전 3개월 동안 5곳 이상의 병원을 전전했던 환자들이었다. 이들의 대장에 내시경을 넣고 건강한 친척의 대변을 한 차례 투입하자 91%가 며칠 내로 완치됐다. 이 치료법은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비만자에게는 피르미쿠테스 더 많아
다양한 박테리아를 배양해 군체를 이룬 모습. 염색한 결과다.

다양한 박테리아를 배양해 군체를 이룬 모습. 염색한 결과다.

체내 미생물은 비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6년 12월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을 보자. 미국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연구팀은 비만자 12명과 날씬한 사람 5명의 대변 내 박테리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주류를 이루는 특정 종의 비율이 크게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비만자는 피르미쿠테스(P)가 20% 더 많았고 박테로이디테스(B)는 90% 가까이 적었다.
 
비만자들은 이후 1년간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자 체중이 25% 줄면서 P의 비율은 떨어졌고 B의 비율은 높아졌다. 하지만 애초에 날씬했던 그룹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이로써 양자의 연관성은 드러났다. 하지만 박테리아 구성비는 비만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비만의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연구팀은 비만 생쥐와 날씬한 생쥐의 장내 박테리아 샘플을 각각 추출한 뒤, 장내 세균이 없는 무균 생쥐들에 주입했다. 2주가 지나자 비만 박테리아를 주입받은 생쥐들은 날씬 박테리아를 주입받은 개체들에 비해 체지방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47% 대 27%).
 
세계의 언론이 이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비만? 장내 미생물 책임’ 같은 제목이 주류였다. 하지만 원인은 복합적이라는 사실이 2013년 다른 팀의 연구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비만한 사람과 날씬한 사람에게서 채취한 미생물을 두 그룹의 무균 생쥐에게 각각 투여했다. 다음으로 이들을 한 우리에 넣었다. 생쥐는 서로의 배설물을 먹기 때문에 상대의 미생물을 계속 복용하는 셈이다. 그 결과 비만 미생물이 이미 자리 잡은 곳에 날씬한 미생물이 침입하자 숙주의 체중이 더 이상 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날씬한 미생물이 자리 잡은 곳에 침입한 비만 미생물은 제대로 번식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운동장이 애초에 기울어져 있었던 데 있었다. 모든 생쥐가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성 사료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사료를 지방이 많고 섬유질이 적은 것으로 바꾸자 상황은 역전됐다. 날씬한 미생물 군집은 번성하지 못했고 생쥐의 체중 증가를 막지 못했다. 건강식을 하는 경우에만 좋은 군집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후속 연구도 있다. 2014년 다른 팀의 연구결과 앞서의 두 박테리아 비율(P/B)은 사람의 비만과 일관된 관련은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정한 계통을 콕 집어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미생물 교체하면 회춘도 가능하다?
지난달 독일 막스플랑크 노화생물학 연구소가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한 내용을 보자. 연구는 아프리카의 민물고기인 ‘청록색 킬리피시’를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3주 만에 성체가 되고 몇 개월 만에 늙어 죽는다. 출생 후 12주가 되면 선명하던 색소를 잃고 운동능력과 정신능력이 퇴화하기 시작하며 암에 걸린다.
 
연구팀은 생후 9.5주된 늙은 개체에게 항생제를 투여해 장내 미생물을 청소한 다음 중년에 해당하는 6주짜리 개체의 장내 미생물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이들 물고기는 16주가 된 다음에도 중년처럼 팔팔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명도 상당히 늘었다.
 
체내 미생물은 뇌 기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4년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 연구팀은 불안증 환자의 장내 박테리아를 무균 생쥐에게 이식했다. 생쥐들은 더욱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미생물은 스트레스에 견디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5년 5월 옥스퍼드대 신경생물학자팀이 ‘정신약리학(Psychopharmacology )’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건강한 자원자 45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한 연구다. 한 그룹에는 좋은 박테리아(락토바실러스와 비피더스)의 양분이 되는 갈락토올리고당 5.5g을, 다른 집단에는 플라시보(위약)를 제공했다. 그러자 올리고당 그룹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화면에 잠깐 떴다 사라지는 단어들을 파악하는 실험에서도 부정적 정보보다 긍정적 정보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환자들이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복용했을 때 나타내는 변화와 유사했다.
 
심지어 요구르트도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 UCLA 연구팀이  2014년 6월 ‘소화기병학(Gastroenterology)’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건강한 여성 25명을 모집해 이중 12명에게만 시판 중인 요구르트 한 컵씩을 하루 두 차례 4주간 먹게 했다. 요구르트에는 생균 4종이 포함돼 있었다 (비피더스, 스트렙토코커스, 락토코커스, 락토바실러스). 연구팀은 복용 기간 전후에 이들의 뇌를 스캔했다. 행복·슬픔·분노 등의 표정을 담은 이미지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측정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요구르트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평온한 반응을 분명하게 보인 것이다. 연구팀의 추론에 따르면 요구르트의 박테리아가 장내 박테리아의 구성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라 생성된 물질이 뇌의 화학적 반응을 바꾼 것이다.
 
이에 앞서 장내 박테리아가 세로토닌·도파민·가바(GABA) 등의 신경전달 물질을 생산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PLOS pathogens’  2013년 11월호). 모두가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많은 항우울제가 이들의 체내 농도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일부 미생물은 이들 물질이 체내에서 대사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 뇌와 혈액 속의 농도를 조절한다.
 
 
신경전달 물질 생산도 확인
장내 박테리아는 낙산염을 포함한 다른 신경 전달물질도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낙산염은 불안과 우울의 감소와 연관이 있다. 일부 미생물은 장기와 뇌 사이의 주된 신경통로인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럴듯한 일이다. 사람의 장내 박테리아 중 일부는 1500만 년 전 여러 유인원의 공통조상이 살던 시절부터 장내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테로이데스(Bacteroidaceae)와 비피더스 계통은 야생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16년 7월 ‘사이언스’). 이렇게 공존해 온 박테리아 중 몇몇이 숙주인 인간의 행태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종하는 방법을 개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한 사람들은 사회성이 높으며 우리의 사회성이 높을수록 미생물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퍼져나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 미생물이 프로작이나 발륨 같은 정신과 치료약 비슷하게 사용되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다. 뇌 기능을 조절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서울대 졸업. 중앙일보 논설위원, 객원 과학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역임. 2011~2013년 중앙일보에 ‘조현욱의 과학산책’ 칼럼을 연재했다. 빅 히스토리와 관련한 저술과 강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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