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트럼프 당선 예측 못해 낭패 본 월가, 르펜 공약 열공 중

[투자은행의 세계] 대통령 선거와 금융정책
지난 4일(현지시간)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가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승리를 점치고 있으나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당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르펜의 정책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안느맹(프랑스) 로이터=뉴스1]

지난 4일(현지시간)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가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승리를 점치고 있으나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당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르펜의 정책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안느맹(프랑스) 로이터=뉴스1]

제19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느 나라든 대선 후보들은 각자의 공약을 쏟아 내고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특히 선거운동 중 유력 대선 후보들이 외치는 경제 공약은 향후 국가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금융시장은 여론 조사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상승세를 탄 후보의 공약이 미칠 영향력을 빠른 속도로 반영하고, 대선 후에는 당선자의 정책이 향하는 방향으로 일단 달려가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이는 지난해 미 대선 이후 미국 금융시장에서도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일단 은행주가 앞장서서 주식은 강해지고 채권은 약해진 후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 실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모양새다.

브렉시트 예상하지 못한 데 이어
미국 주가 약세 전망했다 헛발질
르펜 당선 시 유로·주가 폭락 경고

한국은 선두권 후보들 공약 비슷
미국식 금융규제 완화 어려울 듯

 
 
칼 아이칸 등 역발상 투자로 대박
투자은행은 대선의 결과를 예측하면서 스스로의 위험을 감수하고 고객에게 거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대선과 같은 대형 이벤트를 앞두면 해당 국가를 담당한 이코노미스트가 리더가 되어 네트워크를 가동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역할은 책상에 앉아 숫자를 들여다보고 리포트를 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경제 관료 및 고객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언론을 상대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경제 관료들은 자신들이 집행할 정책을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 하고, 고객은 영향력 있는 투자은행의 경제 전망을 참고해 사업 전략을 세우려고 하고, 언론은 전문가의 의견을 기사에 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교류는 투자은행 정보력의 원천이 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더들리와 같은 투자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들이 요직에 중용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뻗은 안테나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물론 그 외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예상되는 거시 경제 지표를 산출하고, 이를 넘겨받은 스트래터지스트(strategist)는 자신이 맡은 금융시장별 반응을 예측해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성적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모든 투자은행은 한 목소리로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에 대한 분석도 미흡했다.  
 
미 대선 하루 전 골드만삭스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정책 불확실성으로 상당 기간 동안 주식시장은 충격에 휩싸이고 달러화는 약해질 것으로 예측한 반면, 씨티그룹은 주식시장은 하락하지만 달러화는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레이즈도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는 주식 약세를 점쳤고, 소시에테제네랄은 지난해 12월로 예상되던 미 연준(Fed)의 2차 금리 인상도 물 건너갈 거라고 봤다. 트럼프 당선 후 금리 방향을 묻는 블룸버그의 선거 전 설문 조사에서도 영국 RBS만 유일하게 금리가 오를 거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당선 후 주식과 달러화 모두 강한 랠리를 펼치고 Fed는 편안하게 금리를 인상했다. 대부분의 투자은행은 브렉시트(Brexit)에 이어 지난해 두 차례의 역사적 정치 이벤트에서 모두 예측이 틀려 체면을 구겼다.
 
스티븐 므누신

스티븐 므누신

반면에 ‘트럼프 지지’라는 일생일대의 역발상(contrarian) 거래를 한 소수의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대박을 터트렸다.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후원한 칼 아이칸은 선거 결과 발표 직후 10억 달러 어치 미국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 기존에 보유한 트럼프 수혜주뿐만 아니라 단기 거래로도 큰 수익을 올렸다. 존 폴슨은 10년 전 모기지 시장 폭락 베팅에 이어 이번 선거전에서 트럼프의 경제 자문 역할을 자처해 역발상 거래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월스트리트에서 트럼프 당선의 최대 수혜자는 스티븐 므누신이다. 역발상의 위험 감수로 미국 재무장관 자리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오늘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
계속되는 정치의 계절에 투자은행들은 또 하나의 시험을 치르고 있다. 바로 프랑스 대선 예측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1차 투표부터 오늘(7일) 실시되는 결선 투표까지 투자은행들은 지난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에도 모든 투자은행은 결선 투표에 오른 두 아웃사이더 중 온건 중도 정치인 에마뉘엘 마크롱의 당선에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예측이 틀려 르펜이 승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장위험에 대비한 거래 아이디어를 내는 데도 힘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혹시라도 ‘유로회의주의자’ 마린 르펜이 당선된다면 프렉시트(Frexit)는 물론 유럽연합(EU)과 유로존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워낙 엄중해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혼란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들은 15%에서 높게는 40%까지 르펜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만약 르펜이 당선되면 유럽의 정치·경제를 상징하는 유로화는 패러티(유로 대 달러 환율이 1인 상태) 아래로 폭락할 거라고 다수가 경고하는 상황이다. 특히 뱅크오브아메리카·도이치뱅크·UBS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식이 심각한 정치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최대 35%의 하락을 예상하고 있고, 골드만삭스는 프랑스 국채 금리의 급등을 예상해 고객들에게 10년 국채 매도를 권고하고 있다.  
 
과연 프랑스 대선에서는 이변 없이 예측이 들어맞을지, 이변이 일어나더라도 이번엔 금융시장이 예상대로 반응해 부분 점수는 챙길 수 있을지, 이제 몇 시간 후면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다.
 
대선에는 화두가 되는 주요 논제가 있다. 트럼프와 클린턴은 총론으로 고립주의 대 세계주의, 작은 정부 대 큰 정부라는 이슈 대결을 벌였다. 각론인 월스트리트 공약으로 클린턴이 더욱 강력한 금융 규제를 내세운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이 최악의 금융 규제라 부르는 ‘도드-프랭크법’의 폐지를 약속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인 2010년 만들어진 이 법은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결국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악법’이 사라질 거라는 기대로 미국 대형 은행들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벌였다. 최근엔 도드-프랭크법을 사수하려는 민주당 강경파를 달래기 위해 백악관 온건파를 중심으로 ‘글래스-스티걸법’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공황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최악의 규제를 없애고 차악의 규제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다.  
 
가능성이 큰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투자은행업이 본업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화려한 재기가 기대된다. 하지만 상업은행 업무 비중이 높은 다른 대형 은행들은 결코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의 대변인 격인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모건 회장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프랑스 대선은 친유로 대 반유로의 대결이다. 만약 르펜의 당선으로 프렉시트의 위험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 런던의 유럽 금융 허브 지위를 놓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경쟁하는 프랑스 파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은행이 유럽연합 회원국 한 곳에서 인가를 받으면 다른 모든 회원국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패스포팅 권리(passporting rights)’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의 부동산 관련 비용은 파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당장 1000명의 런던 투자은행 직원들을 파리로 재배치하기로 결정한 HSBC는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각각 1000명의 프랑크푸르트 재배치를 고려 중인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바로 실행에 옮길 것이고, 아직 행선지를 놓고 고민 중인 다른 투자은행들에게 파리는 버리는 카드가 될 것이다.
 
 
한국은 금융지주사로 겸업화·대형화 기대
우리나라도 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대선과 미국·프랑스 대선의 가장 큰 차이는 선두권 후보들의 공약이 매우 흡사해 누가 당선되든 금융시장의 단기적 반응은 미지근할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히 이번 대선에 대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후보 모두 성장, 규제 완화, 감세는 금기시 하면서 양극화 해소,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 미국식 금융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것 같다.
 
금융과 관련한 두 후보 공약의 핵심 주제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다. 그동안 필자가 접한 다수의 해외투자자들이 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한국 기업이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영에 개입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정치·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 공약이 실현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각론을 들여다보면 두 후보는 특히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와 ‘복합금융그룹 통합 규제’ 공약에서 같은 내용을 담았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고 금융 계열사 간 금융 위험의 전이를 방지한다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기관 투자자와 금융 감독권을 활용해 재벌 오너의 지배력을 견제하겠다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는 기관 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에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아베노믹스가 스튜어드십을 발판으로 ‘행동주의(activism) 투자’의 장을 열었듯이 우리나라도 대선 후 새 정치 리더십의 등장이 유사한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합금융그룹의 통합 규제는 비금융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를 모두 지닌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 계열사의 자본적정성 및 위험을 통합해 연결 감독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지주사를 세우지 않고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정 대기업과 관련한 ‘중간금융지주사’ 논쟁은 차치하고, 단순히 규제만이 아닌 겸업화와 대형화를 통해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금융지주사 설립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들의 성공 모델도 결국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자회사들을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지원 업무를 공유해 효율성을 높이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최정혁 전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경영학박사. 씨티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UBS에서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현재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jungchoy@gmail.com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