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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병이 양조장 건축을 바꾸다

와인 이야기
1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마르께스 데 리스깔의 양조장.

1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마르께스 데 리스깔의 양조장.

와인 한 병의 가치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와인마다 또는 와인의 빈티지마다 천차만별이란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쉽게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가격인데,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와인 로마네꽁띠의 어떤 빈티지는 몇 천만 원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 그런데 가격을 떠나 한 병의 와인이 한 인간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면, 그것은 측정 가능한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여 년 전, 필자가 아직 스페인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었을 때 우연히 접한 와인이 있었다. 병 겉면에 금실로 망을 씌워 놓은 모습이 매우 특이했다. 스페인 와인의 중심지 리오하 지역에서 185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전통의 양조장 마르께스 데 리스깔(Marqués de Riscal)의 대표 와인이었다. 1990년 빈티지로 기억되는데, 첫 맛을 봤을 때 밀도 있고 부드럽게 입안 전체를 감도는 균형 잡힌 맛이 필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한참 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있는 빌바오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빌바오는 리오하 바로 위쪽에 있다. 그곳에는 구겐하임 현대미술관도 있었다. 예술을 겸비한 와인 문화여행이라는 필자의 로망에 모두 부합되는 곳이었다.
 
철강과 조선산업으로 유명했던 빌바오는 이 산업들의 쇠락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될 운명에 처했다. 그때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미술관 건립을 의뢰한다. 도시를 관통하는 에브로 강가에 현대적 재질의 티타늄으로 지어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덕분에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술 도시로 부활했다.
 
에브로 강가를 산책하면서 이 기괴하지만 한없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대한 꽃송이 같은 외관은 사람이 기획해 지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선이 부드러웠다. 그때 처음으로 프랑크 게리라는 건축가의 천재성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2 황금실로 감싼 마르께스 리스깔 와인.

2 황금실로 감싼 마르께스 리스깔 와인.

그 충격을 접고 리오하 와인 여행 길에 올랐을 때 재미난 일이 일어났다. 차창으로 구겐하임의 축소판 같은 건물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마르께스 데 리스깔 양조장이었고 설계자는 프랑크 게리라는 게 아닌가. 방문 일정엔 없던 마르께스 데 리스깔, 그 옛날 금실 두른 와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게리의 작품이 저곳에 있을까. 마르께스 데 리스깔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2000년 양조장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책임자로 프랑크 게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작은 양조장이 건축 대가에게 부탁한다는 자체가 어려웠고 받아들일 확률은 더 적었다.
 
생각 끝에 프랑크 게리가 참석하는 한 모임에 게리가 태어난 빈티지인 1929년산 한 병을 선물로 들고 가 부탁했는데, 그는 기꺼이 제안을 수락했단다.
 
거장은 19세기 오래된 셀러를 중앙에 살리면서 양조장과 현대식 호텔을 배치했다. 외관은 대표 와인의 금실 색과 와인의 붉은 색, 병 목의 은색을 의미하는 세 가지 색의 티타늄 장식을 완성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건물의 완성으로 마르께스 데 리스깔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양조장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지하 저장고 깊숙이 있던 와인 한 병이 대가의 마음을 움직여 쇠퇴해 가던 와인 가문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이다.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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