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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야 잘 친다는 걸 승철이 형한테 배웠다”

가수 이승철이 양용은 캐디가 된 사연
이승철(왼쪽)은 양용은이 버디를 할 때도 보기를 할 때도 옆에서 지켜줬다. 양용은은 “형은 삶의 길을 인도한 내 인생의 캐디”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이승철(왼쪽)은 양용은이 버디를 할 때도 보기를 할 때도 옆에서 지켜줬다. 양용은은 “형은 삶의 길을 인도한 내 인생의 캐디”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프로님, 벙커에 좀 넣지 마시지요.”
 
가수 이승철(51)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벙커를 정리하면서 프로골퍼 양용은(45)에게 농담을 했다. 양용은은 “캐디가 준 클럽이 조금 잘못된 것 같아요”라고 응수했다.
 
“야 네가 쳤지, 내가 쳤냐. 공 똑바로 치라고 줬지 비뚜로 치라고 줬냐.”(이승철)
 
두 사람은 낄낄거리면서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알았어 형! 그런데 여기, 벙커 구석구석 다 깔끔하게 정리해야지.”(양용은)
 
이승철이 양용은의 캐디가 됐다. 4일 성남 남서울골프장에서 열린 매경오픈 1라운드에서다. 3일 연습라운드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양용은은 50대에 접어든 이승철을 배려해 가방에서 우산이나 여분의 공 등 불필요한 물건을 싹 뺐다. 그래도 무게가 만만치 않다. 15㎏ 정도 된다. 이승철은 “캐디가 되기 위해 3주 동안 트레이너를 고용해 체력을 다졌다. 또 카트를 타지 않고 가방을 메고 세 번 라운드를 해 봤다. 그래도 남서울골프장은 오르막·내리막이 많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매경오픈에서 한 타 차 컷 탈락했으나 “오랜만에 경기를 즐겼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양용은은 매경오픈에서 한 타 차 컷 탈락했으나 “오랜만에 경기를 즐겼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2009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절친이다. 양용은이 봄에 열리는 마스터스에 나갈 때마다 이승철이 따라가 응원을 했다. 2011년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에선 이승철이 캐디를 했다. 웃고 즐기는 가족 이벤트였다. 수준급 골프 실력을 갖춘 이승철은 칩샷을 대신 쳐서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해 성적이 좋았다. 양용은은 마스터스 본경기 한때 단독 선두에 오르기도 했다. 양용은이 아멘코너의 끝자락인 13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핀 옆 30㎝에 붙여 이글을 기록했을 때는 이승철이 더 좋아했다.
 
지금은 아니다. 양용은은 몇 년간 부진했다. 마지막 우승은 2010년이다. 미국 PGA 투어 경기 출전권을 잃고 주로 유럽 투어에서 뛴다. 타이거 우즈에게 첫 역전패를 안기고 포효하던 아시아 첫 메이저 우승자 양용은의 기억은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다.
 
이승철은 “용은이가 소처럼 우직한데 그게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문제다. 내가 그렇게 했다면 성대가 다 망가졌을 것이다.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잘 쉬지 않더라”고 말했다.  
 
콤플렉스도 있었던 것 같다. 양용은은 “스무 살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이전에 보디빌딩을 해 근육이 너무 많았다. 백스윙 때 팔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골프를 한 선수들은 헤드스피드를 느낄 수 있는데 나는 힘으로 치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유연한 스윙을 갖고 싶었다. 늦게 시작해 불리한 조건이니까 다른 선수보다 연습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바꾸고 발전하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화가 통할 때도 있지만 스윙을 고치려다 망가진 선수가 훨씬 많다. 양용은도 어려움을 겪었다.
 
양용은의 재능 중 하나는 단순함이었다. 실수를 잊어버리는 것, 또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재 자체로 엄청난 부담감을 주는 타이거 우즈에게 두 번이나 역전승을 거둔 이유는 생각을 적게 하고 경기에 집중하는 양용은의 능력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양용은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 나니 욕심이 생기더라. 한 번 가져 봤으니까 또 갖고 싶었다. 마음을 비울 때 경기가 잘됐는데 욕심을 내려놓기 싫으니까 머리가 복잡했다”고 말했다. 그 어려운 시간들을 이승철이 함께 지켜줬다. 이승철은 양용은이 마스터스에서 단독 선두로 경기할 때처럼 아프리카에서 대회를 치를 때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가끔 TV에 양용은이 나오면 카톡을 보낸다. 역시 짓궂다.  
 
“머리 좀 움직이지 말고 쳐라. 리듬 잃으면 훅 내면서 왜 그러냐.”  
 
“ㅋㅋㅋ.”(양용은)
 
양용은은 이승철에게 자신이 우승한 PGA 챔피언십에서 캐디를 부탁했다. 이승철은 큰 대회는 부담스러워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남서울골프장에서 열리는 매경오픈에서 한 라운드만 가방을 메게 됐다. 이승철은 “마스터스에서 회원들이 자원봉사하는 것처럼 내 홈코스를 위해 일하고, 남자 골프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용은이와 추억도 남겨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용은이 캐디 이승철에게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거리를 재거나 그린 경사를 측정하는 건 전문 캐디의 영역이다. 이승철은 “그런 것은 잘 모른다. 벙커 정리도 힘들더라. 내가 용은이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건 용은이가 나한테 노래 어떻게 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신적인 도움은 크다. 양용은은 “믿는 형이니까 편하게 도움 받을 수 있다. 승철이 형은 나를 이끌어 준 인생의 캐디”라고 했다. 이승철은 “스타는 결코 혼자 될 수 없는데 용은이는 혼자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엔터테인먼트계만큼은 아니라도 스포츠에서도 유대관계가 중요하고 함께 협력해 만드는 시너지란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주위 사람들은 자기가 못 보던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다. 한동안 뭐가 씌었는지 용은이가 다른 것 하나도 안 하고 골프만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제 귀를 열고 있다. 나도 노래 ‘네버 엔딩 스토리’가 히트하기 전에는 어려움도 정말 많이 겪었다. 아시아 유일한 메이저 챔피언인 용은이가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지난주 유럽 투어에서 6위를 했다. 495등까지 떨어졌던 세계랭킹이 417위로 올랐다. 양용은은 “대체로 캐디와 즐겁게 지내는 선수들이 잘 친다. 즐거워야 한다는 것을 형에게 배웠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기분 좋은 날에는 캐디가 실수하더라도 웃고 넘어간다. 형과 함께하는 내일은 기분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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