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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용지는 민주주의 투쟁의 산물

Outlook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08년 6월 21일. 황금빛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던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무려 25만 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이드파크를 향한 일곱 갈래의 행렬을 이끈 이들은 하얀 드레스와 꽃 장식 모자를 쓴 여성들. 뒤를 이은 군중의 물결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팔 소리와 함께 공원에 마련된 20개의 연단에 연사들이 올랐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정부는 여성참정권 법안을 즉각 제출하라.”(『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참조)
 

모든 국가의 참정권은 분투의 역사
영국 여성 참정권,서프러제트서 비롯
제헌국회 때 명시된 보통 평등선거
미군정 선물 아닌 독립운동의 산물

타임스 등으로부터 ‘유사 이래 최대’라는 평을 들은 이 경이로운 집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꿈쩍도 않았다. 열흘 후 10만 명이 다시 모인 집회에서 총리 관저의 창문이 박살난다. 돌멩이를 날린 2명의 여성은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 불리던 ‘전투파’ 여성 참정권 운동가. 남성 정치인에게 사정해봤자 돌아온 것은 무시와 경멸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여성들이 급진적 노선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이후 에멀린 팽크허스트 등 전투파 여성들은 집회와 시위, 창문 깨기와 우체통 불 지르기를 하고, 투옥과 감옥 안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 갔다. 단식한 여성들은 팔다리가 묶인 채 코에 꽂힌 호스를 통해 강제급식을 당했다.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열혈 여성은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며 경마장에서 말 앞으로 뛰어들다 목숨마저 잃는다.
 
반복된 투쟁과 실패 끝에 마침내 영국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1918년이다. 그나마 30세 이상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영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28년에 이르러서다. 서프러제트 결성으로부터 25년, 여성들이 법적 권리 주장을 해온 17세기 중반부터 치면 250년도 넘은 시간을 이겨내고서였다.
 
서구 각국에서는 이처럼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분투의 역사가 풍부하다. 우리는 어떤가. 1948년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역사상 첫 선거 때부터 남녀 공히 1인 1표의 보통 선거권이 보장됐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줄까 말까 하는 논쟁도 없었다. 때문에 여성투표권은 미군정이 부여한 ‘선물’이라거나, 여성의 투쟁 없이 ‘공짜로 주어진 것’이란 생각이 깔려있다. 과연 그런가.
 
한국의 보통·평등 선거권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유래한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결성되면서 민국의 탄생을 공포한 첫 헌법이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다. 헌장은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제3조)하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다’(제5조)고 선포했다.
 
역사상 어떤 권리도 저절로 주어지는 건 없다. 3·1운동에서 2000만 동포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투옥되고 피를 흘렸다. 전국 방방곡곡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남녀노소, 각계 각층은 3·1운동을 석 달이나 이어 갔다. 여성의 발자취도 뚜렷했다. 검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수많은 ‘유관순들’이 줄지어 거리를 행진하는 빛바랜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 뭉클하다.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동등하게 참여했으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렀다.
 
이 같은 피의 항쟁과 희생을 토대로 국왕의 국가로부터 국민의 국가, 즉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 땅에서 정식정부를 수립할 수 없었기에, 그 대한민국은 외국 땅에서 임시정부의 모습으로 출범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남녀동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대한민국은 그 성립부터 여성과 남성이 공적으로 동등한 주권자가 되었다. 1948년의 보통선거권은 1919년 이래 30년의 축적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역사상 어느 선거인들 중요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촛불’의 주권자 혁명으로 앞당겨진 이번 대선의 의미는 각별하다.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은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국회의 탄핵 소추와 헌재의 탄핵 심판의 결과이지만 이를 이끌어 낸 진정한 주역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이다.
 
미국의 교육지도자 파커 파머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라고 했다. ‘하고 있는’ 그 무엇의 첫 걸음은 투표다. 특권 소수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청지기 대통령을 만드는 첫 걸음은 투표다. 찢겨진 민주주의의 그물을 다시 짜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지도자를 뽑는 길도 투표에서 시작된다. 어두운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안정되고 품격 있는 미래로 나아가도록 민주주의의 엔진에 시동을 거는 이도 투표하는 우리들, 유권자밖에 없다.
 
1500만 촛불의 함성은 대통령 탄핵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다. 광장의 열기는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의 존엄과 행복, 우리 모두의 안녕과 공공선은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보장된다. 내 손안의 투표용지가 누구의, 어떤 투쟁과 희생의 산물인지 뜨겁게 느껴 보자.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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