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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막을 정리하다

[삶의 방식] '스물두 번째 질문'
몇 년 전부터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서로의 성장을 오랜 기간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자는 취지의 모임인데, 1년에 두 차례 만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삶의 현안들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최근 대화의 주제는 ‘제2의 인생’이다. 그들보다 조금 일찍 삶의 변화를 모색한 나는 변화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먹는 과정은 이 칼럼에서 써 온 것처럼 마치 심리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면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파악하고자 할 때 죽음이라는 장치를 빌리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실제 관 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도 있고, 자신이 죽었다고 상상하고 비문이나 조문 작성하기, 또는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등의 방법들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임의 멤버인 한 친구는 실제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 치밀하게.
 
일본인인 그는 몇 년 전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의 투병상황을 경험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가족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새삼 놀랐다. 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구체적인 유언이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지 여러 차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아버지와 긴 대화를 가진 끝에 자신들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막상 마음을 먹고 보니 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정리를 하는 과정은 크게 다섯 개 분야로 나뉘어졌다.
 
첫째는 자신의 죽음 그 자체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와 관련된 것으로, 중병을 앓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맞게 되면 생명을 연장할 것인지, 연장을 한다면 어느 선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상담하다 보니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여부. 셋째는 유산을 남길 것인지, 그렇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넷째는 직계가족과 친지 외에 기부하고 싶은 단체들을 지정하고 그들에게 통보하는 작업이다. 마지막은 장례식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들로 이 역시 살면서 처음으로 검토하게 됐다.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이 작업은 변호사·세무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거의 1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는 앞으로도 1년에 한 번은 자신이 결정한 사항들을 재검토하여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이 경험을 주변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면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데, 이 작업이 재산이 많은 사람보다는 비싼 치료비를 어떻게 부담하고, 많지 않은 재산을 어떻게 물려줄지 결정해야 하는 일반인들에게 더욱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정리한 지금, 그는 매우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했다. 마치 실제로 자신의 인생 1막을 끝낸 것처럼. 그리고 삶의 2막은 그야말로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지현
쥴리안 리 앤 컴퍼니 대표, 아르스비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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