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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비판하는 후보들 싸잡아 비난 ‘모두까기’ 모드

[대선 D-2] 북한이 보는 19대 대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한 지난달 17일 북한 병사들이 남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AP=뉴시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한 지난달 17일 북한 병사들이 남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AP=뉴시스]

“특유의 정교함이 사라졌다.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를 정도다.”
 

미시적 비방 선전에 치중하며
정작 큰 흐름은 놓치고 있어
김양건 같은 대남전략가 없는 듯

한때 대선 최대 변수였던 북풍
최근 들어 점점 약발 안 먹혀

19대 대통령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6일 대북 부처의 핵심 당국자는 북한의 대선 개입 움직임을 이렇게 분석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하부 선동기구들이 구사하는 선거 개입 전술이 남한 내 판세 변화나 대선후보의 입을 좇아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혹평이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노련한 대남 전략가가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김양건(2015년 12월 사망) 대남비서의 공백과 후임인 군부 출신 김영철 통전부장의 좌충우돌을 꼬집는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대선 때마다 북풍(北風)이니 총풍(銃風)이니 하며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강력한 대남라인 부재 등으로 선거 막판까지 북한 요인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북한 관영 매체들은 연일 남한 대선과 관련한 노골적 선전·선동을 펼치고 있다. ‘구국전선’ 등 160여 개의 인터넷 선동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총동원해 선거 투쟁과 사이버 여론 조작에 나섰다는 전문가 주장도 나온다. 선거가 임박하면서 비방 수위도 한껏 높아졌다. 초점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에 대한 은근한 지지와 그에 맞서는 보수·중도 대선주자 비방과 폄훼에 맞춰진다.
 
언뜻 보면 대선 관련 흐름을 제법 꼼꼼히 짚어 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가 남조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이 정도는 분석해 낸다’는 북측의 메시지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에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에 대해 즉각 “야당 세력의 집권을 기어이 막아 보자고 ‘보수 대통합’과 ‘보수후보 단일화’까지 떠들며 최후 발악을 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8일엔 비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보수층 표심이 쏠리는 이른바 ‘차악(次惡) 선택론’을 문제 삼았다. “파멸 위기에 직면한 보수패당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 선택’이니 뭐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시적 비방 선전에 치중하다 보니 북한이 정작 큰 흐름은 놓치고 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은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점까지는 퇴진 선동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눈을 돌렸다. 같은 달 14일 통일부 당국자가 “북한의 대남 선동이 탄핵에서 선거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브리핑한 건 이를 짚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3월 23일 “보수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대선 개입 포문을 열었다. 이후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 등을 소재 삼아 “정치인들은 반미 평화 수호 투쟁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대선주자가 확정되자 개별 후보에 대한 차별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 대남파트는 커다란 벽에 부닥쳤다. 무엇보다 ‘서울 핵 불바다’ 위협에 미사일 도발까지 들고 나온 김정은 정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싸늘해진 것이다. 2월 중순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사건은 결정타가 됐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대선 주요 후보 5명이 모두 대북 비판 입장을 취하자 북한이 싸잡아 비난하는 전례 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6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안보대통령’을 주장하며 야당과 그 후보들을 ‘종북좌파’로 몰아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뒤질세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안보 강화와 한·미 동맹 중시를 떠들며 ‘북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못된 소리를 줴치고(외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 대선에서 ‘모두까기 인형’(모든 사람을 비판하는 행위를 호두까기 인형에 빗댄 우스개) 역할을 한 건 보기 드문 일”이란 말이 나온다.
 
이 같은 국면에서도 북한은 19대 대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보수 성향인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논란과 탄핵 사태를 기화로 차기 남한 정부에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군사 압박과 제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 줄 남한 정권의 탄생을 기대하는 듯하다.
 
보수정권의 재집권은 북한으로선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악몽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집권 첫해인 2012년 말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자 큰 실망감을 보였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2002년 5월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록을 폭로하겠다는 위협까지 가하며 집권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서울의 대선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생각은 종잡기 어렵다. 핵 위협은 물론 ▶미사일 도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대규모 대남 타격훈련 등을 이어가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노동신문은 5일 김정은이 서해 연평도와 마주한 장재도·무도 방어대를 방문했다며 그가 “(남조선) 괴뢰들의 사등뼈(척추뼈)를 완전히 분질러 버리라”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북한 국가보위성은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한·미의 김정은 생화학테러 음모를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마치 남한 대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이다.
 
대선 때마다 불거졌던 북한 문제
남한 선거에서 북한 문제는 한때 최대 변수로 꼽혔다. 북풍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4월 총선 때 북한 무장병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진입한 사건은 신한국당이 서울에서 사상 최초로 여대야소를 이루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97년 대선 후 불거진 ‘총풍’ 사건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경우다. 2000년 4월 총선 며칠 전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도 여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터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망명도 마찬가지다. 북풍의 약발이 점점 먹히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북풍 무용론의 틈을 북한 당국이 파고들어 오는 모양새다.
 
북한은 미국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트럼프는 ‘막말 후보’나 ‘괴짜 후보’가 아닌 현명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맞아 “악독한 폭력배이자 사기꾼”이라고 맹비난했다. 고위 탈북 인사는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던 미국통 참모들은 지금 김정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의 대남통들도 이제 시험대에 섰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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