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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하산길 한잔 쭉 들이키면…

증권맨 K는 토요일 아침마다 도봉산으로 향한다. “산이 좋아서”라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정상에서 마시는 꿀맛 같은 막걸리 때문. 도봉산역을 나서자마자 가게에서 얼음 막걸리부터 몇 통 집어 든다. 문제는 취해서 내려가는 경우가 잦았다는 점. 한번은 산비탈에 미끄러져 다치는 바람에 헬기가 떴다. 그의 아내는 “산에 가서 또 술 먹기만 해봐!”라며 도끼눈을 떴다. 겁이 난 그도 패턴을 바꿨다. ‘차라리 내려가서 속 편하게 마시자!’ 그가 도봉산역 근처 막걸리 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이 집이 떠올랐다.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27> 팔뚝집

오늘 소개할 곳은 ‘팔뚝집’. 옥호가 특이하다. 조선 시대의 ‘내외주가(內外酒家)’에서 비롯됐다. 몰락한 양반가의 여인네들이 생계를 위해 문간방 한 칸을 내서 가양주를 팔았던 공간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반가의 여인들은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는 관습법인 내외법을 따라야 했다. 손님이 오면 안주인은 팔뚝만 내밀어 술과 안주를 냈다. 도봉산 팔뚝집은 이 옛 스토리를 그대로 반영했다. 등산객을 위한 맛있는 안주와 술을 내놓는 것이 컨셉트. 단, 예전과 달리 지금은 주모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주모인 김미숙(50) 사장님의 손맛은 보통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엔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북 출신 부모님을 도와 음식 준비를 하며 자연스레 집안의 음식을 전수받았다. 술도 빼놓을 수 없는데, 잔치 때마다 어머니가 직접 빚은 과하주를 접했다. 교육 기관에서 전통주를 공부하며 술 빚기를 배웠다.
 
원래는 편집디자인 회사를 오래 운영해왔는데, 2015년 ‘주안상 대회’에 나가 금상을 받게 되면서 업이 바뀌었다. 우리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주안상을 직접 요리해 차려내는 이 대회에서 그는 과하주와 어울리는 한상을 선보였다. 수상을 계기로 이듬해 2월 오픈한 곳이 이 집이다.
 
가장 고심했던 건 가격.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도봉구는 조기 폐업률이 높은 곳이다. 물가도 싸다. 막걸리 주점 시세도 파전이 5000원, 막걸리 3000원 선.
 
하지만 팔뚝집의 음식과 술 가격은 동네 시세의 두 배가 넘는다. 음식은 평균 1~2만원 사이. 하지만 그는 맛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전국에서 엄선해 공수해오고 있는 막걸리는 5000~9000원 선. 어디에서나 파는 막걸리는 리스트에서 빼 버렸다. 장수 막걸리를 찾는 분들에겐 취급하지 않는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주당인 사장님의 철학은 술꾼이 가져야할 자세는 모름지기 좋은 술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술 메뉴판도 목민심서를 모티브로 ‘주민(酒民)심서’라 부른다.
 
벽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전국 8도 술지도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어느 한 도시를 찍고 시계방향 또는 반대방향으로 지도를 따라 하나씩 클리어하다보면 주모가 엄선한 막걸리 맛에 빠져든다. 문 연 지 이제 1년 정도 지났지만 알음알음 소문이 많이 났다. “사장님 술 빚는 솜씨가 일품이라 들었는데 밀주가 있는 거 안다. 맛 좀 보게 해달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손님들도 있다.
 
이 집을 처음 찾은 날, 사장님에게 서로 잘 어울리는 안주와 막걸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특기인 이북식 메뉴부터 맛보기로 했다. 시작은 김치적과 북어전. 김치적은 보기 드문 메뉴다. 북한에서는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속이 빨간 김치가 아니다. 황석어 젓갈을 써서 만든 이북식 김장 김치를 밀가루와 계란으로 부쳐냈다. 슴슴한 김치 맛이 낯설던 손님들도 어느새 그 맛에 빠져든다. 여기에 해남 산이막걸리를 매칭했다. 팔뚝집서 가장 인기 있는 막걸리다. 900ml 큰 통이라 주당들이 즐겨 찾는다. 김치의 맛을 고소하게 코팅해준다. 요거트를 먹는 느낌도 들 정도로 궁합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다음은 북어전. 황태포를 불려 가시를 빼고 밑 간해서 부쳐냈다. 꼬들거리는 식감이 투박하면서도 정겹다. 아버지가 퇴근 후 홀로 앉아 막걸리로 반주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여기에 매칭한 막걸리는 포항의 영일만 친구. 포항공대에서 개발한 포항쌀과 우뭇가사리가 들어갔다. 입안에서 해풍이 부는 느낌은 포항 바다에서 맛보는 듯하다. 최백호 씨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이 술을 찾는다고 한다.
 
간장새우장은 이 집의 감초다. 냉동 새우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좋은 새우를 엄선해 쓴다. 양조간장에 청주·유자·생강을 넣고 만드는데, 맛을 보고 박스로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그래요??”하고 한 입 먹었다 “오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았다. 짜지 않고 비린 맛도 없다. 밥에다 올려서 먹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점심 식사 메뉴로 간장새우밥이 준비되어 있단다. 여기 매칭한 막걸리는 선호막걸리. 김포 금쌀로 만든 드라이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술이다.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특색 있는 간장새우장을 만나 서로를 지긋이 눌러주는 느낌이다. 각각 먹으면 튈 법한데 임자를 제대로 만난 셈이다.
 
대미를 장식할 음식은 만두전골. 간이 세지 않은 평양식 만두전골에는 직접 빚은 만두가 들어간다. 느타리와 배추가 들어가 개운한 맛이다. 베어 무는 식이 아니라 으깨 먹는다. 사장님 말로는 소주 다섯 병이 들어가는 안주라나. 이 메뉴에 워낙 자신이 있어 본인의 만두전골이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여기에 칠곡 신동양조장에서 4대째 빚고 있는 칠곡막걸리를 마셨다. 부드러운 목 넘김, 은은한 바나나향이 만두의 맛을 해치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 든다.
 
그는 이제 주말마다 여길 찾는다. 얼음물과 김밥만을 챙겨 산에 오르고, 내려와서는 팔뚝집에서 전국의 막걸리로 신나게 달린다. 요즘 날이 참 좋다.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이번 주말엔 도봉산에 가야겠다. 막걸리 마시러!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 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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