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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수채화 같은 슈베르트

기타로 반주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음반

기타로 반주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음반

클래식 음악에서 기타가 차지하는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매일 짧은 손가락만 탓하는 방구석 기타리스트인지라 가끔 이런 엉뚱한 질문도 해본다. 후하게 봐줘도 호부호형을 허락받지 못한 홍길동 취급인 듯하다. 피아노와 더불어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칭송받기도 하지만, 작은 음량으로 인해 오케스트라에서는 문전박대요 기타를 위한 협주곡이 있다고 해도 떠오르는 곡이 다섯도 채 되지 않는다.  
 

WITH 樂 : 기타로 반주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독주곡은 처지가 좀 나은 편이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 류트를 위한 곡들이 꽤 있었으니 슬쩍 가져다 쓰면 된다.  
 
그러나 고전 낭만 시대로 넘어오면 기타는 말 그대로 찬밥 신세다. 거장들에겐 기타 음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었는지 베토벤도 브람스도 기타에 무심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의 줄리아니가 기타를 눈여겨봤을 뿐이다. 다만 기타의 고향인 스페인과 라틴 계열의 작곡가들이 이 악기를 위한 곡들을 남겼다. 국제적인 악기인데도 민속악기 대접을 받은 셈이다.
 
억울한 상황은 대중음악으로 넘어오면 바뀐다. 여섯 줄 기타는 ‘육룡이 날으는’ 왕족 대접을 받는다. 밥 딜런, 한대수 같은 포크 가수들은 기타를 자식인 양 메고 다닌다. 록에서는 또 어떤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리프(반복되는 짧은 리듬)와 간주의 화려한 기타 솔로는 록의 꽃이다. 깁슨 레스폴의 기타 소리에 현혹된 적이 없는 록 팬이라면 스타인웨이를 모르는 클래식 팬과 같다.  
 
비록 못난 주인 만나 인테리어용으로 쓰이고 있을 때가 더 많지만, ‘나의 기타가 부드럽게 울어줄 때’를 생각하며 독일 작곡가의 기타 음반을 찾아냈다.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부른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다. 슈베르트를 록 기타로? 괜찮은 상상이긴 하지만 그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된다. 이 음반은 피아노 대신 클래식 기타 반주로 편곡된 음반이다. 슈베르트 시대에는 그의 가곡들이 종종 기타 반주로 연주되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녹음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음반에서 기타와 편곡을 맡은 이는 콘라트 라고스닉(Konrad Ragossnig)이다. 그는 197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이 연주를 처음 선보였다. 그는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빈 국립음대 교수로도 명성이 높았는데,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약하는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그의 제자다.  
 
테너 페터 슈라이어는 프리츠 분덜리히 이후 최고의 테너로 이름 높았다. 그는 분덜리히처럼 카리스마 있는 매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음색에 섬세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말년에는 지휘에도 실력을 발휘했는데 루치아 폽, 테오 아담 등과 함께 녹음한 바흐의 ‘마태수난곡’도 좋은 음반이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기타버전에서도 그는 신중한 미성을 들려준다. 하지만 물방앗간을 찾은 청년에 완전히 감정 이입된 목소리는 아니다. 분덜리히의 카리스마와도, 요즘 테너들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떨림과도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처리하는 집중력은 높이 살 만하지만, 방황하다 설레고 좌절하는 청년치고는 애늙은이 같다.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모범생이 애써 아닌 척하는 느낌이랄까?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남긴 음반에서는 세월의 무게까지 느껴진다.  
 
사실 피아노 반주와 비교하기에는 공평하지 않아서 다른 기타 반주를 찾아보았는데, 가지고 있는 음반 중 딱히 비교할 만한 음반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프레가르디엥이 기타 반주로 녹음한 ‘겨울 나그네’에 부록처럼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어디로’ ‘일을 마치고’ 두 곡이 들어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슈라이어보다 드라마틱하고 공격적인 편곡이자 가창이다.  
 
페터 슈라이어의 기타 버전 물방앗간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밝은 곡들에서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요즘 같은 봄날에 어울린다. 피아노가 유화처럼 깊은 색을 만들어낸다면 기타는 날렵한 수채화와 같다. 전반부의 ‘방랑’ ‘어디로’ 같이 꿈에 부푼 청년의 발걸음을 그려내는 곡에서는 이런 가벼움이 매력적이다. 작사자 빌헬름 뮐러가 그려낸 낭만적인 시골의 모습도 소박한 기타와 잘 어울린다. 음유 시인이 방랑하며 노래하는 인상을 받는다.  
 
다만 이것이 진정 슈베르트가 의도한 음향과 정서인가를 생각해보면 의문이 남는다. 10번 곡인 ‘눈물의 비’에서는 내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촉촉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16번 곡인 ‘좋아하는 빛깔’에서도 공허의 색감이 부족하다. 결국 슈베르트 가곡에서 중요한 축을 맡는 피아노 반주의 풍부한 표현력에 비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청년 슈베르트에게 가벼운 리넨 셔츠를 걸쳐본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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