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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카드·빨래방·과일간식 … 가려운 곳 긁는 ‘깨알 공약’

‘대형 이슈와 작은 공약’.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북핵 등 굵직굵직한 현안 변수 속에 치러지지만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생활밀착형 ‘틈새공약’들이 많다. 과거 대선을 달군 건 ‘행정수도 이전’(2002년), ‘한반도 대운하’(2007년), ‘경제민주화’(2012년) 등의 대형 공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매달 들어가는 통신비와 교통비를 줄이고, 어르신들의 빨래를 돕고, 어린이들에게 과일과 유제품이 포함된 급식을 주는 등의 깨알 같은 공약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 속에 하루하루 ‘나의 생활’에 관심이 높아진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내 생활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세먼지 공약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부터 미세먼지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리자 “대책을 세우라”는 여론은 거세졌다. 그러자 5명의 후보가 앞다퉈 대책을 내놓았다. 후보들은 국내 석탄연료를 줄이고 중국과의 외교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유권자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마스크 지원 ▶공기청정기 설치 ▶실내놀이터 설치 등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 공약들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중교통비를 약 30% 줄이겠다며 ‘광역 알뜰 교통카드’를 교통공약으로 내놓았다. 1일권·1주권·1개월권 등 사용기간을 정해 놓고 사용 횟수나 이동거리에 제한 없이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정액 카드다. 버스가 잘 안 다니는 농어촌 마을에는 주민들이 100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100원 택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의사출신답게 건강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겨냥했다. 방과 후 모든 돌봄교실에서 초등학교 1~2학년생에게 과일과 유제품 간식을 지원하는 ‘과일닥터’ ‘우유닥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3일에는 ‘채식 식생활’을 활성화하는 정책협약식도 맺었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년층을 위한 공약도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홀로 사는 고령자들을 위해 이른바 ‘찾아가는 빨래방’ 서비스 공약을 마련했다. 도배·장판·화장실 보수 등 주거 환경 개선도 병행한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자서전 집필을 원하는 70세 이상 노인들을 돕는 ‘어르신 자서전 쓰기’ 공약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현대사를 평범한 가장의 이야기로 풀어낸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15년 기준 평균 1380만원에 이르는 장례비용을 600만원 수준으로 낮추는 ‘착한 장례식장’을 약속했다. 또 아이를 낳은 모든 가정에 유아복·기저귀·체온계 등 100만원 상당의 출산용품을 담은 최고급 ‘마더박스’를 선물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선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거대한 국가플랜보다 내 일터와 생활에 바로 혜택이 돌아오는 생활밀착형 공약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지속된 경기 침체로 대형 토목사업 등 사회간접자본(SOC) 공약 설계가 어려워진 것도 한 요인”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또 조기 대선으로 인해 후보들이 대형 공약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점도 들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큰 설계도’를 그릴 시간이 부족했다”며 “후보들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사실상 ‘차출’된 만큼 소속 정당과 자신의 기조와 철학을 담은 대형 공약을 준비할 여건이 안 됐다”고 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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