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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뇌에 안테나 심은 사이보그 … 색깔을 듣는 ‘제6 감각’ 생겨

#. 아방가르드 예술가 닐 하비슨의 뒤통수에선 더듬이처럼 안테나가 뻗어 나온다. 색맹인 그가 색을 인지하기 위해 뇌에 심은 것이다. 안테나는 그의 뇌 속에 있는 ‘제 3의 귀’에 색깔의 소리를 들려준다. 안테나 끝에 달린 센서가 색을 인식하면 뇌 속에 심은 마이크로칩이 색깔 주파수를 소리 주파수로 변환시켜 하비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시각도, 청각도 아닌 제6의 감각을 가진 것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안테나는 하비슨에게 초월적 능력도 갖게 해줬다. 인간의 가시권 바깥까지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를 테면 그는 자외선을 인식해 꽃 속 어디에 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색맹인 닐 하비슨은 뇌에 이식한 안테나로 색깔을 구분한다. 그는 “안테나는 내 뇌의 연장”이라고 주장해 안테나를 착용한 채 촬영한 사진을 여권에 사용하는 허가를 받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색맹인 닐 하비슨은 뇌에 이식한 안테나로 색깔을구분한다. 그는 “안테나는 내 뇌의 연장”이라고 주장해 안테나를 착용한 채 촬영한 사진을 여권에 사용하는 허가를 받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의 저자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사이보그화된 신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인간 잠재력이 극적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비슨은 커즈와일이 그린 미래의 구현자가 된 셈이다. 그는 최초의 사이보그 인증도 받았다. 영국 정부를 설득해 안테나를 달고 찍은 사진을 여권에 부착한 것이다. “안테나는 내 뇌의 연장”이라는 그의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인 것인데, 기계와 합체한 인간 존재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하비슨의 존재는 진화의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자연선택의 틀 안에서 이뤄지던 진화를 인간이 직접 결정하는 날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라며 “자연선택의 법칙을 지적 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썼다. 진화 끝에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 그 역사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종(種)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급진적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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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적설계, 즉 과학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진화한다는 주장은 이미 20년 전 등장했다. 1999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롬이 주도해 주창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 따르면 “기술을 사용해 노화를 제거하고 지적·육체적·심리적 능력을 강화해 인간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와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지적·문화적 운동”이 트랜스휴머니즘이다.
 
당시만 해도 이는 과학 숭배자들의 컬트적 주장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BNIC(Bio· Nano·Info·Cogno : 생명공학·분자나노·정보·인지과학) 기술의 발전 덕에 이들이 꿈꾸는 미래의 현실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과연 인간은 기술 진보를 통해 생물학적 운명을 뛰어넘어 인간 이후의 존재자,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될 수 있을까.
닐 하비슨이 뇌에 이식한 안테나로 색을 인지하는 방법 ① 안테나 끝에 있는 광섬유 센서가 물체의 색깔을 인식한다. ② 뇌 속에 있는 마이크로칩은 색깔 주파수를 소리 주파수로 변환. ③ 하비슨의 뇌가 각기 다른 소리 주파수를 인식해 색깔을 구분. 배경은 영화 ‘트랜센던스’ 포스터.

닐 하비슨이 뇌에 이식한 안테나로 색을 인지하는 방법 ① 안테나 끝에 있는 광섬유 센서가 물체의 색깔을 인식한다. ② 뇌 속에 있는 마이크로칩은 색깔 주파수를 소리 주파수로 변환. ③ 하비슨의 뇌가 각기 다른 소리 주파수를 인식해 색깔을 구분. 배경은 영화 ‘트랜센던스’ 포스터.

 
2014년 개봉한 영화 ‘트랜센던스’는 트랜스휴머니스즘 궁극의 목표인 영생을 다룬다. 주인공인 천재과학자 윌 캐스트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한 수퍼컴퓨터 완성을 앞두고 사망한다. 그러나 그의 두뇌는 컴퓨터에 업로드되고 네트워크 상에서 그는 되살아난다. 육체만 기계로 대체했을 뿐, 자아와 의식을 가진 채 윌은 불멸한다.
 
SF문학의 거장 아서 클라크가 1956년에 발표한 소설 『도시와 별』에도 유사한 모습이 그려진다. 미래도시 ‘다이어스퍼’에서 인간은 수천만 명의 유전자코드가 저장된 중앙컴퓨터로부터 기억을 주입받아 산다. 수명이 다한 육체는 새로운 육체로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뇌와 정신을 컴퓨터에 업로드·다운로드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무한 재생된다.
 
컴퓨터로부터 기억을 이식받거나, 입력된 기억으로 통제받는 것은 ‘공각기동대’, ‘토탈리콜’, ‘매트릭스’ 등 수많은 SF 영화에서도 사용된 설정이다.
 
네덜란드의 신경과학자 랜달 코엔은 이를 현실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른바 ‘마인드 업로딩’이다. 그는 두뇌를 정밀하게 매핑하고, 뇌 활동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변환해 코딩하면 인간 정신을 영구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재승(바이오 및 뇌공학과) KAIST 교수는 이 같은 가설로는 컴퓨터 안에서의 영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한다.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분리돼 있지만 인간 뇌는 일체형”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는 뜯어보는 것만으로 어떤 정보가 저장돼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뇌는 정보가 더해지면 세포가 늘고 연결망이 바뀐다. 뇌를 보는 것만으로 성별과 직업, 정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우리 뇌는 구조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구분돼 기능하는 형태로는 뇌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뇌와 구조까지 유사한 바이오 컴퓨터가 등장한다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땐 존재의 정체성 등 윤리적·철학적 고민이라는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취리히에선 ‘사이보그 올림픽’이라 불리는 ‘사이배슬론(Cybathlon)’이 열렸다. 장애인들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겨루는 대회다.
 
종목 중 하나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게임’은 뇌파를 이용해 게임을 한다. 선수들은 수많은 센서가 연결된 헬멧을 쓰는데, 이 센서가 뇌파를 읽어 게임 캐릭터를 움직인다. 생각만으로 회전·슬라이드·점프 명령을 내려 빨리 결승선에 도착하면 승리한다. 3가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뇌 신호를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은 손상된 기능을 복원하는 치료 목적으로 발전해 왔다. 신경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고, 인공칩을 심어 장기기억을 잃은 환자의 기억을 회복케 하는 연구가 그 예다.
 
지난해 열린 ‘사이배슬론’ 대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게임’에 출전한 선수. 뇌파를 읽어 게임 캐릭터를 움직인다. [사진 취리히연방공과대학 홈페이지]

지난해 열린 ‘사이배슬론’ 대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게임’에 출전한 선수. 뇌파를 읽어 게임 캐릭터를 움직인다. [사진 취리히연방공과대학 홈페이지]

그러나 최근 혁신가들은 이 같은 기술의 상용화를 선언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설립해 컴퓨터와 뇌의 결합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페이스북도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글자를 쓰는 ‘브레인타이핑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머스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물학적 지능과 디지털 지능이 합쳐질 것”이라며 사람이 기계와 결합한 사이보그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기능의 향상이라는 점에서 머스크의 생각은 트랜스휴머니즘에 맞닿아 있다.
 
그의 말대로 첨단 기술이 우리 몸에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우리는 마음을 읽어 소통하고 초월적인 지적 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초인간 ‘트랜스휴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정 교수는 뇌가 기계의 도움을 받아 인간 능력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개념 증명이 돼 있다”고 했다. “2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아서 클라크는 “모든 기술이 극도로 발전하면 마술과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마술 같은 기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의 주장대로 우리가 인간 너머 새로운 존재로 진화할지, 그 미래가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이미 존재했던 곳으로부터 멀리 와버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을 신봉한 여주인공 시에나 브룩스는 이런 말로 우리가 과학기술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보다 나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이 두려워서 얼어 죽는 쪽을 선택하는 원시인과 다름없다.” 
 
●인류 진화의 끝은 어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향상·진화시켜 새로운 인간 종(種)을 탄생시킬 것이란 생각,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 구체화되고 있다.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던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실현 가능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기술에 힘입어 스스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간의 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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