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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유발자' 선거 유세차의 모든 것

 
“이른 시간이라 아직 주무시는 분도 있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일찍 왔습니다.”
 
휴일이었던 30일 오전 9시20분 경기도 포천의 한 재래시장 주변. 4.5톤 트럭 위에 올라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안보를 주제로 한 짧은 연설을 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홍 후보의 2분 남짓한 연설에 앞서 유세단이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이들은 한 시간이 넘게 음악을 틀고 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유세 차량과 100m 거리엔 주택가가 있다. 
 
유세 동안 소음 측정기에 기록된 최고 수치는 97.6㏈로 기차 소음(100㏈)에 버금간다. 시장에서 도토리묵을 팔던 한 상인은 “아침부터 시끄럽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홍보가 아니라 방해”라고 말했다.
 
19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적 의미와는 별개로 요즘 시민들의 귀는 안녕하지 못하다. 트럭을 동원한 차량 유세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차량 유세나 연설은 소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불만을 표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차량 유세 현장을 방문해 선거철마다 ‘죽지도 않고 또 오는’ 선거 유세 소음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①얼마나 시끄럽나
26일 오전 11시30분,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의 유세 현장(구로구 고척근린시장 입구)에서 발생한 소음 크기는 97.1㏈이었다. 김민관 기자

26일 오전 11시30분,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의 유세 현장(구로구 고척근린시장 입구)에서 발생한 소음 크기는 97.1㏈이었다. 김민관 기자

같은 날 오후 4시30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캠프 유세 현장(신림역 5번 출구 앞)에서는 94.3㏈의 소음이 발생했다. 윤재영 기자

같은 날 오후 4시30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캠프 유세 현장(신림역 5번 출구 앞)에서는 94.3㏈의 소음이 발생했다. 윤재영 기자

지난 26일 소음 측정기를 들고 서울 구로구 고척근린시장에서 열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유세현장과 서울 관악구 신림역의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유세 현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소음측정기에 기록된 수치는 85~95㏈. 공사장(90㏈)보다 시끄럽고 기차소리보다는 조금 작은 수준이었다. 유세 음악도 음악이지만 더 시끄러운 건 유세 연설이었다. 안 후보의 유세 차량에 올라선 당 관계자가 “부도덕한 세력과 부도덕한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외칠 때엔 97.1㏈까지 치솟았다. 유세 시작 전 거리의 소음은 60~70㏈이었다. 
 
②어디까지 들리나 
 
소음은 방과 교실 안, 상점 카운터까지 파고들었다. 오후 4시, 문 후보의 유세 차량이 도착하자 신림역 인근 미용실의 몇몇 손님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가게 안에서도 들린 유세소음은 80㏈이었다.
 
학교 근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7일 페이스북 페이지 ‘경북대학교 대신 말해드려요’에는 “인문대에서 오전 10시 반부터 시험을 치는데 밖에서 콘서트 수준의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문재인 후보의 선거유세였다. (시험을 치는) 학생들부터 배려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가 과연 국민을 배려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경북대학교 대신 말해드려요' 캡처]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경북대학교 대신 말해드려요' 캡처]

 
③얼마나 불편을 호소하나
 
지난 17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8일간 전국의 경찰서엔 1932건의 유세 소음 신고가 접수됐다(25일 오후 3시 기준).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 수치다.
 
24일에는 대구에서 한 50대 남성이 “소음 때문에 신경질이 난다”며 국민의당 선거 유세 차량을 곡괭이로 파손했다. 27일 전북 부안에서도 30대 남성이 같은 이유로 유세차량을 둔기로 내리쳐 경찰에 붙잡혔다. 인터넷에는 ‘유세 소음 때문에 아이 잠을 못 재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불만글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온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선거 소음 공해를 호소하는 글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선거 소음 공해를 호소하는 글들.

 
④규제는 왜 안되나
 
시민들이 아무리 불편을 호소해도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 확성장치를 사용할 장소(제80조)와 유세 시간대(제102조)는 규제하지만 소음 관련 규정은 없다. 오전 7시부터 확성장치를 사용해도 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너무 이르다"는 불만이 많다. 
 
해가 떠 있을 때 주거지역 주변에서 65㏈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비교된다. 이 때문에 경찰이 소음 신고를 접수받더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권고가 전부다.
 
공직선거법 제102조. 여기에 따르면 차량에 설치된 스피커를 활용한 연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능하다. 별도의 소음 크기 한도는 없다. 

공직선거법 제102조. 여기에 따르면 차량에 설치된 스피커를 활용한 연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능하다. 별도의 소음 크기 한도는 없다.

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구체적인 데시벨 수치를 명시해 소음 크기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구체적인 데시벨 수치를 명시해 소음 크기를 제한하고 있다.

 
 
⑤언제 시작된 문제인가  
 
선거 유세 차량의 소음 공해 논란은 10년이 더 된 문제다. 2006년 “공직선거법이 소음 제한 기준을 두지 않아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한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확성기의 사용장소와 개수 등이 정해져 있어 위헌의 소지가 적다”며 기각했다.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당시 재판관들의 의견은 반반(합헌 4, 위헌 4)으로 갈렸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인터넷이나 방송매체를 이용하는 선거운동 방식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어 확성장치 출력에 대한 규정을 두더라도 공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다”고 밝혔다.
 
⑥돈은 얼마나 드나
 
선거용 차량을 운영하기 위해 각 당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90억 원대다. 업계에 따르면  LED전광판과 스피커를 설치해 일반 트럭을 선거용 트럭으로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당 3000만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05대, 국민의당은 301대, 자유한국당은 264대의 트럭을 한 달간 빌려 선거 유세용 트럭으로 사용하고 있다.  
 
⑦왜 하나  
 
만만치 않은 비용과 수많은 불만이 접수되지만 정당들이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관성’탓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방식도 활용하지만 단기간에 많은 사람에게 임팩트를 주는 건 차량 유세다. 다른 정당이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고 말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한국 선거문화의 특성상 단기간에 홍보를 해야하기 때문에 나타난 특징이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관행은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⑧해외는 어떤가
 
한국처럼 유세 소음으로 골치를 앓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대형 트럭과 확성기를 동원한 길거리 유세를 쉽게 볼 수 있다. 두 나라는 선거운동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도 같다. 단기간에 후보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가두유세 방식을 택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운동 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는 대신, 선거운동 비용을 규제하는 영국과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 미국은 주로 실내 공간에서 유세가 진행된다. 영국은 후보자나 당원이 유권자의 집을 방문하는 조용한 방식을 택한다.
 
김민관·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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