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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100일 미국은 정말 디스토피아로 가고 있는 걸까

훌루에서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오직 아이를 낳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 [사진 훌루]

훌루에서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오직 아이를 낳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 [사진 훌루]

“아기를 갖게 해줘요, 안 그러면 나는 죽어요.”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에서 시작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The Handmaid’s Taleㆍ시녀 이야기)’은 미국 내 기독교 극우 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여성을 국가적 자원으로 보고 적극 통제한다. 직장과 계좌를 빼앗고 발목에 네 자리 숫자와 눈 하나를 그려 넣은 뒤 가임 여부에 따라 이들을 재배치한다. 현실 속 남편과 아이를 모두 빼앗긴 채 마치 군대같은 새로운 세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훌루서 새롭게 선보인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노벨상 후보 캐나다 마거릿 애트우드 1985년작
출산율 저하로 번식 도구로 전락한 여성 삶 그려
여성ㆍ무슬림 혐오 반(反)트럼프 정서 타고 인기

 
상류층 불임 부부에게 파견된 시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행해지는 정기적 강간. 하지만 주인공 오브프레드(Offred)는 반항할 수 없다. 그녀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그녀는 프레드(Fred)의 소유격(of)이며, 정해진 기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식민지로 추방돼 핵폐기물을 치우며 살아야 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빨간색 드레스에 하얀 베일을 쓴 ‘시녀’들은 오직 건강한 몸을 만들어 아이를 낳는 생산에만 집중하면 된다. 집안일은 녹색 드레스의 ‘하녀’들 일이며, 감정을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아내’의 일이다. 그러니 오직 출산만이 살 길이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드라마가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토대로 만든 이야기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공포로 둔갑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미래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1984』,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등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1984』는 트럼프 취임 이후 아마존 판매량이 9500% 폭증했고, 1984년 개봉됐던 동명 영화가 미국 전역에서 재개봉되는 등 지금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콘텐트로 떠오르고 있다. 『1984』는 오는 6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제작된다.
 
이에 대해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인공지능ㆍ사물인터넷 등 SF물에서 그렸던 언젠가 닥쳐올 미래가 점차 실현가능한 일들이 되면서, 당장 몇 년 안에 곧 다가올 현실로 다루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같은 디스토피아가 도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즉각적인 공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대해서는 “새로운 울림이 있는 디스토피아가 온다”(뉴욕타임스), “우리는 ‘시녀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가”(글로브앤메일) 등 외신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빨간 드레스와 하얀 베일을 쓴 시녀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들은 집안을을 할 의무는 없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장려책의 일환으로 하루에 한 번씩 2인 1조로 상호 감시 하에 마트로 산책을 나갈 수 있다. [사진 훌루]

빨간 드레스와 하얀 베일을 쓴 시녀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들은 집안을을 할 의무는 없지만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장려책의 일환으로 하루에 한 번씩 2인 1조로 상호 감시 하에 마트로 산책을 나갈 수 있다. [사진 훌루]

사실 백인ㆍ남성ㆍ기독교 우월주의자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길리어드행’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에 맞서 취임식 이튿날인 지난 1월 21일 워싱턴 DC를 시작으로 미국 각지에서 ‘우먼스 마치(여성 행진)’가 벌어졌고, 그의 반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영국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건 정부 때 처음 생긴 낙태 관련 단체 지원을 금지하는 ‘멕시코시티 정책’을 부활시키고, 비영리기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존슨 수정헌법’ 파괴를 시도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취임 100일 만에 체포된 불법이민자 수가 전년 대비 32.6%(2만 1362명)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자 사람들의 공포감은 한층 높아졌다. 드라마의 프로듀서 브루스 밀러는 NYT와 인터뷰를 통해 “당초 제작자 측은 여성 프로듀서를 원했다"고 털어놨다. 30여 년 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성스럽게 여겨온 텍스트이니 만큼 여성이 만들기에 더욱 적합한 콘텐트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러는 “이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생존에 관한 이야기”라며 “지난해 11월 8일 열린 대선 이후 우리는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드라마 시위 장면에서 등장하는 “낙태는 여성의 자유” “여성의 선택은 여성의 몫” 같은 피켓 문구 역시 지난 1월 시위에서 볼 수 있던 것과 동일하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해 반 정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사진 훌루]

드라마 속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해 반 정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사진 훌루]

각색도 보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원작 소설에서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의 백인 여성 친구 모이라는 사미라 윌리가 맡아 흑인이자 레즈비언으로 바뀌었다. 또 원작에서 나이들고 추한 외모로 그려진 ‘아내’ 세레나 조이는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젊고 매력있는 역할로 탈바꿈했다. 당초 뉴잉글랜드 식민지 시대 청교도 사회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쓴 애드우드는 이에 대해 “매우 ‘현재적인’ 변화”라고 평했다고 베니티페어는 전했다. 1985년에는 인종이나 동성애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당면한 소수자 문제의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 『아메리칸 워』를 출간한 오마르 엘 아카드는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한 수요는 최악의 사태에 도달했을 때가 아닌 거기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정점을 달한다”고 설명했다. 2002년『시녀 이야기』(황금가지) 한국판 번역을 맡았던 김선형씨는 “소설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는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소수자 혐오 등을 동력으로 하는 극우정치가 득세하는 전세계 곳곳에서 목격된다”며 “특히 정부가 가임 여성 수를 표시한 출산지도를 발표한 한국에서도 여성이 자원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이는 한국 사회에 70~80년대 미국의 전투적 페미니즘을 불러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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