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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민 부부 '변강쇠'와 '옹녀'의 애처로운 이야기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 개막했다. [사진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 개막했다. [사진 국립극장]

 인생은 나그네 길
 조선 왕조는 양란(임진왜란ㆍ병자호란)을 겪은 직후 사실상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다. 시방 유럽이 시리아 난민으로 시끄럽듯이 조선 팔도는 넘쳐나는 유랑민으로 몸살을 앓았다. 먹을 게 없어 시체를 뜯어 먹고 뜯어 먹을 시체가 모자라 노약자를 죽여서 뜯어 먹었다는 기록마저 전해온다.  

28일 개막한 고선웅 연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 첫날에 전 회 객석 예약률 99% 기록 세워
질펀한 성적 농담에 감춰진 민초들의 딱한 삶 다뤄

 그러니까 그 시절, 나라가 망해 놀 것은커녕 먹을 것도 없던 민초가 팔도를 떠돌던 시절의 이야기다. 평안도에서 한 여자가 난리통에 오랑캐들에게 당하고 씨 모르는 딸을 낳는다. 딸도 어미 못지 않게 팔자가 모질어 고향(월경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을 시작한다. 그맘때 남도에서도 고향을 떠난 남자가 있었다. 전국을 떠돌던 남자와 여자는 청석골(황해도 해주. 16세기 임꺽정의 산채도 예 있었다)에서 우연히 만난다. 기댈 곳 없던 두 사람은 서로에 의지하기로 약조한다.
 하나 청석골 같은 두메에선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임꺽정처럼 도적질할 깜냥도 못 돼 부부는 청석골도 떠난다. 갯가에선 굶어 죽지는 않겠다고 믿었던 것인지, 부부는 동해안 최대의 어촌 원산(함경남도 원산)을 찾아간다. 하나 여기에서도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부부는 다시 호남 최대의 포구마을 강경(충청남도 논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거기에서도 먹고 사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끝내 지리산 북쪽 자락의 깊은 골짜기 미천골(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로 숨어 들어간다. 여전히 먹고 사는 일은 막막했다. 동네 나무꾼의 텃새 탓에 산에서 나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남자는 결국 마을 어귀 장승을 베어 땔감으로 쓴다. 마을 공동체는 영물을 해쳤다는 죄를 물어 이방인 남자를 처형한다. 남자를 잃은 여자는 다시 유랑민이 되어 미천골을 뜬다.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선뜻 원작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원작에서 한 부분만 들어냈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는 판소리 열두 바탕의 하나인 ‘변강쇠전’의 줄거리다. 우리가 기억하는 ‘변강쇠전’에서 성(性)에 관한 대목만 뺐다. 음담패설이 하도 질펀해 판소리로도 제대로 불리지 못했다는 ‘변강쇠전’은 본디 나라가 망한 뒤 정처없이 떠돌던 민초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였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장면. 장승들이 변강쇠에게 질병을 주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장면. 장승들이 변강쇠에게 질병을 주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판소리 그리고 창극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가 4월 28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개막했다. 2014년 초연 이후 해마다 매진 기록을 세운 ‘옹녀’는 4년째인 올해 공연에서도 기록을 세웠다. 전 회(∼5월 6일) 예약률이 공연 첫날 이미 99%를 넘긴 것이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 작품으로 고선웅 연출이 당대 가장 뜨거운 연극 연출이자 이야기꾼으로 등극했다는 평가는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었다. ‘옹녀’가 얻은 숱한 기록을 새삼 열거할 생각은 없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바는 현대의 연극 연출가가 창극이라는 전통 장르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변강쇠전’은 구전된 이야기다. 민초의 희망 없는 삶을 다룬 비극이지만, 사람들의 입은 참혹한 전쟁 후일담을 질펀한 음담패설로 바꿔 버렸다. 왜 그랬을까? 시쳇말로 ‘하는 얘기’ 말고는 낄낄거리며 할 얘기가 없었던 암담한 현실에서 성의 희화화가 시작됐다. 극도로 과장된 색골 남녀의 섹스 스캔들 말고는 웃으며 떠들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유희로서의 섹스는 가장 본능적인 것이어서 가장 인간적이다.  
 음담패설만 들어내면 고선웅 버전의 ‘변강쇠전’은 여느 그리스 비극 버금가는 잔혹극이다. 물론 야한 대사와 야한 동작과 야한 노래로 흥건하지만(특히 변강쇠와 옹녀가 초야를 치를 때 부르는 ‘기물가(己物歌)’는 오늘날의 잣대에도 외설적이다. ‘기물가’는 사설로만 전해 내려온다), 창극 ‘옹녀’는 민초의 신산한 삶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판소리 ‘변강쇠전’과 다른 이야기다. 판소리 ‘변강쇠전’을 창극으로 만들면서 고선웅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라고 제목을 달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판소리 ‘변강쇠전’의 마침표를 찍고 옹녀의 이야기로 새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공연 장면. 옹녀 역을 소화한 소리꾼 이소연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사진 국립극장]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공연 장면. 옹녀 역을 소화한 소리꾼 이소연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사진 국립극장]

 옹녀를 앞세웠다고 여성주의 시각이 두드러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몇몇 장면은 여성 시선에서 불편할 수 있었다. 다만 강인한 여성성은 읽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창극은 막을 내리기 직전 내일의 생(生)을 말한다. 고선웅이 선택한 뜻밖의 결론은 의외로 전위적인 마무리일 수 있다. 팔자가 아무리 사나워도, 세상이 아무리 험난해도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포스터 [사진 국립극장]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포스터 [사진 국립극장]

 ‘흥보씨’와 ‘마담 옹’
 아무래도 4월 5∼16일 초연됐던 창극 ‘흥보씨’와 겹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연출가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고 같은 소리꾼들이 같은 무대에서 같은 장르의 공연을 했다. ‘옹녀’의 성공에 힘입어 ‘흥보씨’가 나왔다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흥보씨’의 파격에 비하면 2014년 공연계를 경악에 빠드렸다는 ‘옹녀’의 파격은 얌전하거나 소박했다. 상징적인 무대 장치와 소리꾼들의 연극적인 움직임은 ‘옹녀’에서도 두드러졌지만, ‘옹녀’를 지배한 건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라 소리꾼의 소리였다. ‘옹녀’의 소리도 결코 전통적이지 않았으나, 전통적이지 않은 소리까지 포함한 음악은 시종 이야기 전개를 주도했다. 역시 창극은 한국적 음악극 또는 한국적 오페라라 불러야 마땅한 장르였다.  
창극 '흥보씨' 포스터[사진 국립극장]

창극 '흥보씨' 포스터[사진 국립극장]

 ‘옹녀’가 유난히 달리 보였던 건 역시 ‘변강쇠전’이라는 소재에 있었다. 사상 최초의 ‘18금 창극’을 내걸어야 했던 소재의 특수성에 고선웅 특유의 재기 어린 연출이 얹히면서 전혀 생뚱한 장르로 비쳤을 뿐이었다. 반면에 ‘흥보씨’는 가장 전통적인 소재에서 출발했다. 판소리 ‘흥부가’는 형제의 우애를 바탕에 둔 권선징악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보씨’는 아예 캐릭터부터 전통과 선을 그었다.
벌써 국립창극단과 고선웅 연출의 다음 실험이 궁금하다. ‘옹녀’에서 시작한 장르 실험이 ‘흥보씨’로 한 단계 나아갔다. 다음 창극은 ‘흥보씨’로부터 더 나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디인가. 옹녀를 연기한 이소연은 이번에도 단연 돋보였다. 팬이 된 것 같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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