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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조원 가치' 훈민정음 해례본 들고 있는 배익기씨 "정부가 상주본 뺏으려 해" 주장

지난 10일 배익기씨가 잔디 위에서 찍어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2015년 발생한 화재로 일부가 불에 그을린 모습이다. 

지난 10일 배익기씨가 잔디 위에서 찍어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2015년 발생한 화재로 일부가 불에 그을린 모습이다.

 
문화재청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을 갖고 있는 배익기(53)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요구한 최종시한인 28일이 지났다. 배씨는 "문화재청이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상주본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나아가 상주본을 강제 인수하려는 문화재청의 행위가 위법이라며 법원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배씨, 문화재청의 반납 최후통첩시한(28일) 넘겨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배씨 첫 입장 표명

배씨 "정부가 소유권 인정하면 해법 찾을 것"
문화재청 "정부 소유…인도 않으면 고발할 것"

간송미술관 소장 해례본보다 가치 높단 평가
2008년부터 법정 공방해온 상주본 귀추 주목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배씨는 문화재청의 최후통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배씨의 사무실엔 그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적·유물들이 쌓여 있었다. 지난 12일 치러진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을 때 메고 다녔던 이름표도 벽에 걸려 있었다. 배씨는 상주본 국보 1호 지정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기자에게 문화재청이 상주본 인도를 요구하며 보낸 내용증명을 보여주면서 '협박장'이라고 주장했다.
내용증명엔 '상기 기한까지 인도하지 않을 시는 물건 반환 소송 및 문화재 은닉 등에 관한 문화재 범죄에 대해 고발 등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주본을 둘러싼 정부와 배씨와의 갈등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배씨는 2008년 한 방송국을 통해 상주본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기나긴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공방 끝에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조씨는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배씨와의 일문일답.
 
문화재청이 상주본 인도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했다. 이번엔 상주본을 넘길 건가.
최근에도 문화재청 국장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나는 단호하게 '범죄집단'에게 상주본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소유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주본을 국가에 귀속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그 다음에 이야기할 문제다. 세종대왕이 쓴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많으니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라고 적혀 있다. 지금 정부는 세종의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지난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지난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 문제는 결론이 난 것 아닌가. 왜 정부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나.
내가 상주본을 훔쳐갔다고 하는 조씨의 주장부터 틀렸다. 내가 그에게서 훔친 것이 아니니 소유권은 애초에 그에게 없었다는 소리다. 조씨는 내가 2008년 7월 28일 자신의 집에서 다른 책을 구입해 가면서 상주본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보다 하루 전인 2008년 7월 27일 오전에 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상주본 국보 지정을 신청하는 글을 올렸다. 시간상으로 조씨의 주장이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조씨가 이 같은 주장을 하기 전에 '배익기는 10억 벌었다''어디 돌아다니다가 주웠나 보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갑자기 도난 당했다고 신고했다.
 
 
훔친 것이 아니라면 상주본을 어디서 처음 손에 넣었나.
한문학자 집에 한문책이 왜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내가 어릴 적 우리 가족들이 이곳저곳에서 고서적을 많이 모았다. 매일 같이 박스에 든 한문책들이 집에 들어왔다. 집도 큰 데다 안에 고서적과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으니 우리 집을 귀신집이라고 부르는 이웃도 있었다. 나이가 들고 골동에 대해 조금 깨우치고 나서 집에 쌓여있는 것들을 하나씩 재분류하고 재검토했다. 거기서 상주본을 발견했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우리 집에 들어온 거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국보 70호인 간송본과 동일 판본이다. 하지만 보존상태가 간송본보다 더 좋다. 무엇보다 한글 표기나 소리 등 음운학적인 주석이 붙어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1년 9월 대구지검 상주지청의 감정 평가 의뢰에 따라 상주본 가치를 평가한 결과 '자국의 문자와 관련된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에 대한 금전적 판단은 부적절하나 굳이 가치를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명시했다.
  
높은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발견했다고 정부에 바로 알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학자로서 확인도 안 된 오보(誤報)를 날릴 수 없었다. 거창하게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는데 만약 틀린 것이라면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그 가치를 다방면으로 확인하는 데 시일이 많이 걸렸다. 특히 훈민정음은 진본을 제대로 본 학자도 별로 없어서 확인이 더 어려웠다. 과연 이것이 진본인지 사본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지난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지난 27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배익기씨. 상주=김정석기자

 
2015년 (배씨의) 집에 불이 나면서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다고 전해진다. 이때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개인의 욕심으로 국보급 문화재를 갖고 있다가 태우고 말았다'는 지적이었다. 지금 상주본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나.
상주본을 처음 공개한 뒤 9년여가 흘렀다. 지금 언론들은 상주본이 어디에 있나, 몇 장이냐, 낙장이 얼마나 됐느냐 등 끊임없이 묻는다. 상주본이 훼손된 것은 결코 내 책임이 아니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문화재청·검찰·법원의 책임이다. 상주본 훼손에서 당사자인 내가 가장 피해가 크다. 도의적으로 상주본을 잘 지키기 못한 데 대한 죄송스러움이 있지만 관(정부)의 침탈로부터 이것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박물관 수준처럼 안전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있다. 어디 있는지 밝힐 수는 없다.
 
당시 화재는 2015년 3월 26일 오전 발생했다. 불은 30여 분 만에 진화됐지만 배씨의 집 안에 보관돼 있던 고서적과 유물들이 모두 불탔다. 사고 당시 배씨는 외출 중이었고 집에 혼자 있던 어머니가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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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나.
오랜 세월 상주본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져 내가 지쳐서라도 대충 샛길이 없나 생각해 봤다. 하지만 샛길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정부의 중대한 범죄 행위를 밝혀야 한다.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판결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모든 범죄행위가 밝혀지고 나서 소유권이 정리된 후에 타당한 해결 방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확정된 판결에 대의 재심판을 요구하는 '재심' 제도가 있다. 왜 그렇게 하지 않나.
법에 의뢰하려고 해도 어려운 상황이다. 돈을 노리고 연락 오는 변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자문도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배씨는 지난 27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에 소송구조를 신청했다. 소송구조는 소송비용을 지출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 소송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판결에 따라 갚도록 하는 제도다.
 
원하는 대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돌아오게 된다면 상주본을 정부에 넘길 건가.
국가가 상주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상주본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세종이 이를 지키라는 임무를 나에게 준 것이 아니겠느냐. 세종의 뜻을 이어갈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한편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소유권이 법적으로 정부에 있는 만큼 배씨로부터 상주본을 인도 받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배씨에게 보낸 공문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 보존·관리 협조 요청'에서도 "국가 소유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3차례 인도 요청을 했으나 현재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이 해례본이 불에 탄 채 잔디 위에서 찍은 사진이 전국 TV, 신문 등 언론매체에 공개됨으로써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문화재 훼손으로 인해 문화재 관리에 대한 우려와 질책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이어 "언론에 보도된 사진으로 봤을 때 문화재 상태가 많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므로 빠른 시일 내 보존처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소중한 문화재가 하루 빨리 국가에 인도되길 바라고 있으며 인도될 때까지 이 문화재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관리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상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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