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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참고 바닷속 내려갈수록 내 안의 나를 만나죠"

[2017 스포츠 오디세이] 71m 맨몸 잠수, 프리 다이버 김선영
4 김선영씨가 서울 도곡동 머맨 프리 다이빙 아카데미에서 잠수용 모노핀을 들고 촬영에 임했다. 임현동 기자

4 김선영씨가 서울 도곡동 머맨 프리 다이빙 아카데미에서 잠수용 모노핀을 들고 촬영에 임했다. 임현동 기자

1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 한 섬에 있는 프리 다이빙 스쿨에서 찍은 사진.

1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 한 섬에 있는 프리 다이빙 스쿨에서 찍은 사진.

친구들과 숨 참기 시합을 해 본 사람. 수영장에서 잠수한 상태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도전해 본 사람. 그러다 숨이 차서 몸을 일으켰을 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질겁하고 허둥댄 기억이 있는 사람. 그런 분들은 이 매력적인 인어공주와 잠시 데이트를 할 수 있다.

성악 전공한 고교 음악교사 출신
휴직하고 세계 곳곳 포인트 순례

매일 숨 참기 연습, 최고 5분 7초
공기통·장비 없이 자유롭게 유영

세월호 트라우마 벗고 바다 도전을
프리 다이빙은 자신과 남 지켜줘

 
이름은 김선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맨몸으로 바닷속 가장 깊이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는 여성이다. 공식 기록은 65m, 연습 때는 71m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프랑스 영화 ‘그랑 블루’에 나오는 프리 다이빙 선수가 그의 현재 직업이다. 원래는 고교 음악 교사였다.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다.
 
2·3 지난해 9월 그리스 칼라마타에서 열린 프리 다이빙챔피언십에서 65m를 찍어 한국여자최고기록을 세우는 장면. [사진 김선영씨]

2·3 지난해 9월 그리스 칼라마타에서 열린 프리 다이빙챔피언십에서 65m를 찍어 한국여자최고기록을 세우는 장면. [사진 김선영씨]

성악의 기본인 복식호흡으로 단련이 돼서인지 그는 숨 오래 참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프리 다이빙을 접했다. 물을 겁내던 그에게 물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인간 존재의 근원에 다가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프리 다이빙 대회가 열리는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다. 국내 최고의 수중사진 전문가 장남원 선생의 소개로 김선영씨를 만났다. 지난 7일 서울 도곡동에 있는 머맨 프리 다이빙 아카데미에서였다. 그는 성악 전공자답게 목소리가 낭랑했고, 온몸에서 에너지가 넘쳤다.
 
 
남자 세계 최고기록은 129m
바다 속으로 계속 내려가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듭니까.
“내려갈수록 풍경이 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바다 안에 안긴다는 느낌, 태아 때 엄마 양수 안에 있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게 돼요. 어느 날 40m 다이빙 직전에 릴랙스 하고 있는데 가오리가 제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겁니다. 아, 이건 내게 은혜구나 싶었어요. 그 덕분인지 가뿐히 성공했어요. 가끔 정어리 떼가 와서 주변을 감싸 주면 환상입니다.”
 
프리 다이빙도 종목이 많죠.
“고정 웨이트(납덩이)를 달고 내려갔다가 그대로 올라오느냐 웨이트를 벗고 올라오느냐, 핀(물갈퀴)을 달고 하느냐 핀 없이(노핀) 하느냐 등으로 나뉘죠. 핀도 두 발에 각각 차는 바이핀과 두 발을 모아서 하나를 차는 모노핀으로 나뉩니다. 종목을 통틀어 남자 세계 최고기록은 129m입니다. 저는 지난해 9월 그리스 칼라마타에서 열린 AIDA(국제프리다이빙협회) 월드 챔피언십에서 모노핀으로 65m를 성공해 한국 여성 최고기록을 세웠어요. 노핀으로는 35m 내려간 게 최고기록입니다.”
 
숨 참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네요.
“프리 다이빙 종목 중에 숨 참기(스태틱)가 있는데 제가 그 쪽에 재능이 있나 봐요. 개인 최고 기록은 5분 7초, 공식 기록은 4분 43초입니다. 스태틱 종목의 세계기록은 11분이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숨 참고 멀리가기 종목도 있는데 핀을 달고는 300m, 핀 없이는 200m 넘게 가는 선수가 있대요.”
 
어떻게 숨을 그렇게 오래 참을 수 있나요.
“몸 안에서 숨 쉬고 싶은 욕구를 늦추는 훈련법이 있어요. 호흡을 통해 심장 박동을 늦추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거죠. 이산화탄소 내성(耐性) 기르는 훈련도 합니다. 계속 하다 보면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요. 단 절대 혼자 하면 안 돼요. 옆에서 친구가 지켜보고 도와줘야 합니다.”
 
프리 다이빙은 사고 위험이 높지 않나요.
“대회 때 ‘내가 몇 미터를 내려가겠다’고 적어 내면 그 깊이까지 줄을 내려줍니다. 줄 끝에 매달린 접시 모양에 붙어 있는 택을 떼서 가져오는 거죠. 중간중간 세이프티 다이버가 있어서 눈을 마주보며 같이 올라옵니다. 처음부터 풍덩 뛰어드는 게 아니라 물에 떠서 천천히 릴랙스를 하고 이퀄라이징을 한 뒤에 내려갑니다. 충분히 훈련한 깊이까지만 내려갔다 오니까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됩니다.”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은 없나요.
“초보 때 웨이트를 너무 무겁게 단 상태에서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할 뻔 했죠. 안전요원의 도움으로 겨우 구조됐는데 한동안 트라우마가 남았어요. 그때 다이빙을 그만둘 생각도 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는 물에 못 들어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전한 대회를 찾아 조심스럽게 다시 시도했죠. 그 이후로 얼마나 깊이 내려가느냐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지금도 안전수칙 무시하는 다이버들은 내가 가만 두지 않아요.”
 
물 밖에서는 주로 어떤 운동을 하나요.
“호흡과 명상 등 정적인 운동과, 팔·다리 근육 강화를 위한 트레이닝 등 다양해요. 특히 모노핀 동작은 허리가 유연해야 하기 때문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많이 합니다. 러닝머신을 뛸 때도 열 발자국 뛸 때마다 숨 한 번 쉬는 식으로 호흡 훈련을 병행하죠.”
 
 
바다에 빠진 장애인 구한 적도 있어

스쿠버 다이빙은 공기통을 메고 바닷속에 들어가 물고기들과 놀고, 수중사진도 찍는 레저 스포츠다. 프리 다이빙은 무거운 공기통이나 장비가 없이 자유롭게 바닷속을 노닐 수 있다. 순수 레포츠 활동인 스쿠버 다이빙과 달리 프리 다이빙은 아이다(AIDA) 시마스(CMAS) 같은 국제 단체가 개최하는 대회가 있다.
 
프리 다이빙을 하려면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도 안 되고, 수심이 어느 정도 나오고 조류가 없어야 한다. 국내에선 그런 포인트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프리 다이버들은 세계 곳곳의 포인트를 찾아 순례를 다닌다. 임정택 머맨 프리 다이빙 아카데미 대표는 “국내 프리 다이버들은 대부분 직장이나 생업을 그만두고 모아 놓은 돈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국내 여성 중에서는 국제대회에 출전할 만한 선수가 10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고 말했다. 김선영씨는 “국제 대회도 시끌벅적하지 않고 동네 운동회처럼 소박해요. 입상하면 상품이 있냐고요? 있죠. ‘성취감’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프리 다이빙 대회도 중계를 합니까.
“버티칼 블루 같은 큰 대회는 각 나라 대표 선수들을 초대합니다. 기록이 좋은 선수는 항공권을 제공받기도 하지요. 물속에서 실시간 전송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팀들이 인터넷이나 SNS에서 중계를 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경기 장면을 페이스북이나 유투브에 올리기도 하죠. 기욤 네리(프랑스)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수중동굴인 바하마제도의 딘스 블루 홀에 도전했는데 이 장면을 영상 전문가인 여자친구가 찍었어요. 이 영상은 국내 자동차 광고에도 나왔죠.”
 
프리 다이빙 오래 하면 잠수병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요.
“딥(deep) 다이버들은 70m 넘어가면 올라와서 산소를 흡입해 회복을 빠르게 합니다. 월드 클래스 선수들은 제게 ‘다이빙 많이 하지 말라. 짧은 기간에 깊이 자주 가는 트레이닝은 피하라’고 해요.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하고 나머지는 하이킹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저도 그걸 지키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바다에 가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지고 꿈에서도 나타나요. 하하.”
 
프리 다이빙의 좋은 점은 뭔가요.
“말 그대로 자유롭다는 점이죠. 무겁고 비싼 장비를 빌릴 필요 없이 물안경과 스노클만 있으면 다양한 장소와 수심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거든요. 교육을 이수하고 안전수칙만 잘 지키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요. 나이 드신 분은 침착하게 릴랙스 할 수 있고, 젊은 층은 모험과 도전을 즐길 수 있거든요.”
 
세월호 3주기를 맞았습니다. 바다·해저·다이빙 같은 말만 나오면 왠지 위축되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은데요.
“저도 마음이 너무 무거웠고, 뭔가 도움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바다를 겁내고 트라우마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잖아요. 더 적극적으로 바다에 도전해야 하는데, 혹시 생길 지 모를 사고에서 자신을 지키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게 프리 다이빙이죠.”
 
실제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적이 있다면서요.
“지난해 칼라마타에서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휠체어 타신 분이 부둣가에서 바다에 빠지는 걸 봤어요. 모두들 달려가 무사히 구조했죠. 스쿠버 다이빙은 장비 착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바로 뛰어들 수 있거든요. 라이센스를 딸 때도 수중에서 기절한 사람을 구조할 수 있어야 자격증을 줍니다.”
 
제주도 해녀들과 물속에서 오래 있기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예전에 어느 다이버가 실제로 해녀와 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이겼대요. 해녀분들은 힘든 작업을 하니까 중간중간 올라와서 숨을 쉬어야 한다네요. 저도 지금은 5분까지 있을 수 있는데 하루에 1초, 안 되면 한 달에 1초씩이라도 늘려 나가고 싶어요.”
 
김선영씨는 “바다로 내려가는 건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겁니다. 나의 본질, 나의 한계와 마주하는 거죠. 좀 더 여유있게 만나고 싶어서 트레이닝도 하고 요가도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안 해도 될 질문을 했다. “결혼은요?” “못한 거죠. 인연이 아직 안 왔나 봐요.” 그리고 오글거리는 멘트가 나왔다. “바다가 남자친구예요. 크하하.”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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