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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의 왕’ 참두릅 넣고 밥 지을 땐 혼곤할 지경

제철의 맛, 박찬일 주방장이 간다 <4> 지리산 산나물

마침 봄비가 장하게 내리는데, 두 명의 산나물꾼들이 지리산 뱀사골로 들어섰다. 원추리나물 군락지를 찾아서다. 개선마을이라고, 본디 열 가구가 살던 깊은 산촌으로 이어지는 잔교가 계곡 위로 흔들거린다. 요즘은 다 이주하고 마을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잔교 위에서 촉촉한 봄비를 맞는다. 흐르는 계곡 물을 보니 아찔하다.
 

간장 뿌려 비볐더니 기막힌 맛
가지에 순 하나 나오고 시기 짧아

명이는 5년은 길러야 상품취급
한뿌리 두잎 나오지만 하나만 뜯어야

황해연(45)씨와 강승운(49)씨가 막 원추리를 뽑아 든다. 철쭉을 닮은 붉은 대꽃 사이로 원추리가 푸른 잎을 날렵하게 뻗고 있다. “식감 좋은 나물이지요. 나물은 철이에요. 딱 그때를 맞춰야 먹을 수 있지요.” 원추리는 여린 잎을 쓰며, 반드시 데친 후에 우려서 써야 한다. 독성이 있어서다. 독특한 씹힘이 있고, 비타민이 풍부하다. 이맘 때 원추리나물은 입맛을 돋우는 데 최고다. 산나물꾼들이 많이 뜯는 나물은 아니다. 값에 비해 뽑는 공이 많이 드는 까닭이다.
 
 
1 지리산 산나물꾼 강승운씨가 뱀사골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원추리를 뽑고 있다. 위로 보이는 다리가 개선마을로 가는 잔교다.

1 지리산 산나물꾼 강승운씨가 뱀사골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원추리를 뽑고 있다. 위로 보이는 다리가 개선마을로 가는 잔교다.

독성 있는 원추리 꼭 데친 후 우려서 써야
나물은 보통 산나물이라고 부른다. 들나물이라는 말은 잘 안 쓴다. 딱 춘궁기, 등짝과 배가 붙을 정도로 궁기가 심할 때 나물이 산에 솟았다. 이 절묘한 맞춤으로 우리 조상들은 겨우 봄을 넘겼다. 이제 우리는 나물을 대개 미각으로 먹는다. 나물은 초본 식물의 어린 싹이다. 봄이니 여리다. 크면 못 먹을 것도 순하고 여리므로 먹어 넘길 수 있다. 거기에 나물의 특징이 있다. “이쪽 지리산 남원에는 4월 중순에서 5월 말까지가 나물 철이지요. 물론 한 해 내내 나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옛날 식으로 하면 말리는 쪽이고, 요즘은 데쳐서 냉동하는 방법도 많이 씁니다.” 
 
남원에서 활동하는 요리연구가 고은정(59)씨의 말이다.
 
나물은 한정된 풀의 이름이 아니다. 갈무리한 재료의 총칭이자, 반찬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물은 대개 초본(풀)의 어린잎을 말한다. 날것으로 또는 데치거나 말려서 먹는다. 먹는 대상이 매우 많고 요리법도 다양하다. 한국임업진흥원에서는 대표적인 산나물로 참취·도라지·고사리 등  14가지를 인터넷에 게시하고 있는데 실제보다 너무 적다는 인상을 준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초본 식물은 8000여 종이고 먹는 것만 400~500종에 달한다. 동서양 모두 산과 들, 밭에서 나는 초본을 먹고 있지만 ‘나물’이라고 부르며 광범위한 섭취를 하는 나라는 역시 한국이다. 가까운 일본도 나물류를 꽤 먹지만, 한국의 나물은  ‘ナムル’(나무루)라고 부르면서 독자성을 인정한다.
 
여담인데, 자연보호에 까다로운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으로 갔던 초기 한국인 이민자들의 ‘전설’이 지금도 전한다. 산에 지천으로 피어난 고사리 등 나물을 캐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왕왕 있었다는 것이다. 산나물채취 관광상품이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아마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지금쯤 신문 광고에 등장한다. “나물 채취는 운동도 되고, 맛있는 나물도 얻으니 좋은 일인데 주의할 점이 있어요. 우선 국립공원이나 국유림에서는 채취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유림은 당연히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요.”
 
전문 나물 채취업을 하는 이들은 산림청 등 관청에서 허가를 받아 채취에 나선다. 하루 20kg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초본(풀)만 채취할 수 있고 나무는 건드릴 수 없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나물은 보통 뜯거나 캔다. 뿌리를 함께 먹는 고들빼기, 냉이 같은 경우는 뿌리째 얻는데 이런 경우를 빼면 ‘뜯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산나물꾼들의 조언을 들어보자. “나물을 뿌리째 캐 버리면 토양도 망가지고 다시 잎이 나오지도 않게 되지요. 개체 수도 줄고요. 저희들은 뿌리를 쓰는 나물이 아니면 잎만 추려냅니다. 나물에도 지속 가능한 방법이 있는 셈이에요.”
 
 
산나물 소비 가장 많은 철은 대보름 무렵
2 지리산 험준한 자락에서 두릅과 명이를 기르고 있는 양선배(왼쪽)씨가 황승호씨에게 명이 기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뒤쪽으로 지리산 운해가 펼쳐져 있다.

2 지리산 험준한 자락에서 두릅과 명이를 기르고 있는 양선배(왼쪽)씨가 황승호씨에게 명이 기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뒤쪽으로 지리산 운해가 펼쳐져 있다.

지리산 일대는 알려진 대로 산나물의 보고다. 취급하는 식당도 많다. “인터넷 판매나 도시의 농산물시장으로 넘길 정도의 양은 안 됩니다. 근처 민박집과 식당에서 사서 소비하는 정도지요. 더러는 말려서 생협 같은 데 공급도 합니다.” 산나물 소비가 가장 많은 철은 흥미롭게도 봄이 아니다. 겨울자락인 대보름 무렵이다. 이때 가장 많이 팔리고 먹는데 물론 말린 나물이다. 말리면 무게가 생체의 10%에 못 미친다. 자연산 나물을 인터넷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이유가 따로 있다. 규정 때문이다. 자연산, 천연 등의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냥 ‘국내산’만 표기 가능하다. 그래서 더러  ‘묘수’가 나오기도 한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등의 표현이다.
 
3 남원에서 활동하는 요리연구가 고은정씨(사진 맨 뒤쪽)의 ‘맛있는 부엌’에 지리산 산나물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가져온 싱싱한 나물로 고씨가 점심을 차려 냈다. 김경빈 기자

3 남원에서 활동하는 요리연구가 고은정씨(사진 맨 뒤쪽)의 ‘맛있는 부엌’에 지리산 산나물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가져온 싱싱한 나물로 고씨가 점심을 차려 냈다. 김경빈 기자

나물의 왕은 제각기 의견이 다르지만, 두릅과 명이(산마늘) 등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자연농법의 농사로 나물을 기르는 양선배(45)씨의 밭을 찾았다. 지리산의 험준한 자락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있다. 계단식 밭 아래 둔덕에 두릅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몇 그루가 있었는데 저 스스로 새끼를 쳐서 ‘밭’이 되었다고 한다. 한창 딸 시기다. “두릅나무에서 얻는 순을 참두릅이라고 합니다. 가지에서 나오는 새순을 말하는 거죠. 두릅나무가 재목도 안 되고 별 쓸모가 없는데, 봄에 순 나오는 하나로 가치가 있습니다.” 가지에 순이 하나씩만 나오고, 딸 수 있는 시기도 짧다. 억세어지면 가치가 없다. 우리 먹거리에서 참이란 말이 붙으면 맛이 진하다는 뜻이다. 참두릅은 데쳐서 나물로 먹고, 전을 부쳐도 향기롭다. 고은정씨가 참두릅으로 밥을 지어 냈는데 양념간장을 뿌려 비벼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밥 짓는 동안 부엌에 향이 가득 차서 혼곤할 지경이었다. 다 제철의 좋은 것들이 지닌 위력이다.
 
두릅나물에는 참두릅 말고도 개두릅, 땅두릅도 있다. 원래 우리 말 작명에서 ‘개’가 붙으면 전통적인 토종이란 뜻이 있다. 개두릅이 딱 그 경우다. 엄나무순을 뜻하는데, 양이 적고 귀하다. 땅두릅은 독활이라고도도 부르며, 땅에서 순이 나온다. 중국에서 나무에 싹을 틔운 채로 수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두릅 중에서 값이 가장 싸다.
 

양선배씨 밭에는 막 명이가 자라고 있다. 명이는 산마늘이라는 이름대로 매운맛이 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보통의 마늘은 본디 이 땅에서 자라던 종이 아니다. 그래서 단군설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아마도 이 명이로 추정하고 있다. 나물의 왕으로 불러도 될 만큼 맛있고 귀하다. 흥미로운 건 명이의 특징이다. “5년은 길러야 상품이 됩니다. 화학비료를 주면 뿌리가 녹아버리기도 합니다. 보통 까다롭지 않지요. 그래서 공급량도 적고 비쌉니다.” 인삼이 따로 없다. 인삼 농사가 어려운 점은 다년생이고, 6년을 채웠을 때 상품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만큼 기르는 동안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명이가 딱 그렇다. 잘 기르다가  4,5년차에 죽으면 긴 농사가 도로아미타불이다.
 
명이 종류는 잎이 넓고 주름이 큰 울릉도종, 폭이 좁은 오대산종과 지리산종이 있다. 장아찌나 생잎으로 쌈을 싸면 맛이 아주 좋으며 삶아서 나물로도 무친다. 강원도산은 조금 더 늦게 나오고, 이제 지리산쪽에서 출하가 있을 시기다. “명이는 한 뿌리에서 두 잎이 나오는데, 하나만 뜯어야 합니다. 한 잎은 남겨서 광합성을 계속 해야 살아날 수 있거든요. 그만큼 수확량이 줄어드니 비싸지는 것이지요.”
 
 
고사리 국내 생산 늘어 중국산 드물어
나물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고사리를 뺄 수 없다. 한때 중국산이 시장에 많이 나왔다. 요즘은 드물다. 국내 생산량이 크게 늘어서다. 자생 고사리를 재배하는 농민이 많다. 비료를 쓰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비탈지고 햇빛 잘 드는 둔덕에서 씨를 뿌려 얻는다. 고사리는 빛을 가리는 나무가 울창하면 잘 안 자란다. 번식력이 좋아서 고생대 이후 지구상에서 오래 살아남은 식물이기도 하다.
 
취재팀은 마지막으로 황승호(50)씨의 농원에 들렀다. 그는 자연농법으로 나물을 기른다. 오미자나무를 많이 심었고, 그 아래 초지에 나물을 군데군데 가꾸고 있다. 보통 나물을 재배하면, 수확량을 늘리고 재배의 편리를 위해서 한 종류만 심게 마련인데 그는 다품종을 조금씩 반에 산개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저마다 다른 나물이 어울려 자라는 농법이다. 마침 곤달비가 군데군데 보인다. 잎을 딸 무렵이다. “곰취랑 비슷한데, 비료 없이도 잘 자라서 좀 길러 보고 있습니다. 고들빼기도 많이 두고 있고요. 이렇게 어울려 각기 개성이 다른 나물이 자라는 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은정씨의 부엌에서 얻어먹은 밥상에 올라왔던 쌈채소가 바로 이 곤달비였다. 쌉쌀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있다.
 
귀경길에도 여전히 지리산 일대에는 비가 뿌렸다. 비에서 비릿한 봄 냄새가 났다. 그것은 산의 냄새이기도 했고, 그 산에서 자라는 나물의 여운 같은 것이었다.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라는 별칭이 있는 인물. 음식 칼럼을 오랫동안 써 왔다. 딱딱한 음식 글에 숨을 불어넣는 게 장기다. 청담동에서 요리사 커리어를 쌓았고, 지금은 서교동과 광화문에서 일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로 서양 요리를 만드는 일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일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지면에서 상식을 비틀고 관습을 뒤집는 제철 재료와 음식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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