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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로 둘러싸인 이곳,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품어줘”

[정재숙의 공간탐색] 가수 전인권의 삼청동 산꼭대기 작업실 
작지만 음악 작업에 필요한 모든 걸 갖춘 서울 삼청동 작업실에서 ‘전인권 밴드’가 호흡을 맞췄다. 

작지만 음악 작업에 필요한 모든 걸 갖춘 서울 삼청동 작업실에서 ‘전인권 밴드’가 호흡을 맞췄다.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펜화가인 안충기 섹션에디터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이 연재물의 두 번째 주인공은 가수 전인권(63)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력으로 1980년대 한국 록의 전형을 만들어 낸 그는 지난 30여 년 시대를 행진하는 대중음악을 이끌었다. 2016년 11월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울려 퍼진 그의 노래는 뒤집힌 세상을 끌어안는 포옹이었다.

 
서울 삼청동 마을버스 종점 하고도 한참 더 위로 올라간 길 끝에 가수 전인권의 집이자 작업실이 있다. 어떻게 찾아가느냐 했더니 “절집 칠보사 길로 접어들어 손전화를 하면 내가 나와 소리를 지를 테니 거기로 오라”고 했다. 그의 재래식 길 찾기 방식은 그다웠다. “여기요, 여기” 목소리를 따라 삼청동 산꼭대기 하얀 철대문집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길었다. 그는 아침저녁 이런저런 물건을 지고 이고 그 먼 길을 운동 삼아 오르내린다고 했다.
 
“1962년부터 여기 살았으니까 내가 이 동네 터줏대감이네요. 어린 시절부터 이 근방 산을 쏘다녀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어요. 버찌·앵두 뒤져 먹고 진달래·아카시아를 좋아했죠. 밖은 무서웠지만, 삼청공원은 즐거웠어요. 삼청공원이 내 안마당이요 놀이터였으니까. 온 동네 휘저으며 돌아다니면 어르신들이 ‘저 찹쌀 강아지 잘도 뛰논다’고 했죠.”
 
그의 집은 큼지막한 돌산을 담벼락으로 치고 있다. 주변이 온통 암석이다. 바위 위에 지은 집은 반백 년이 흐른 지금도 끄떡없다. 강건한 땅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전인권의 집터는 기가 세다. 암자 삼기 딱 좋은 이곳을 노리는 사람들이 여럿 돈 싸 들고 찾아왔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다. ‘내가 노래로 도를 닦는 도인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오’가 그의 답이다. 대문 옆쪽에 ‘기천석(祈天石)’이란 큰 석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아낙네들이 소원을 빌러 찾아오던 골짜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여기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산과 바위가 품어 주니 사람들 불평이 없어요. 내 목소리 정도론 여기 바위들 힘을 이겨낼 수 없죠. 옛날 판소리하는 분들이 바위를 붙들고 독공을 하며 득음을 했다는 말이 실감나요. 화강암의 그 꺼슬꺼슬한 질감, 풍상에 절어 빚어진 겸손하면서도 묵지근한 도저함이 멋있어요. 록 음악의 록(rock)도 바위이니 여길 어떻게 떠나겠어요. 록만큼 좋은 게 없어요.”
 
그의 집에 와 보고서야 전인권의 목청이 이해가 됐다. 삼청동 암석 밭에서 자란 한 소년이 홀로 노래하며 걸어온 길에는 알게 모르게 스며든 바위의 힘이 있다. 2016년 11월 1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60여만 명과 함께 가슴을 열고 합창했던 그 힘이다. ‘아무 걱정 말라고, 우리 아픈 기억들 모두 가슴 깊이 묻어 버리자고’ 그는 상처 받고 분노한 청중을 도닥였다. 촛불 정국의 주제가가 되었던 ‘걱정말아요 그대’는 바위가 들려준 노래가 아니었을까.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3평 남짓 정방형 방이 요즘 그가 ‘전인권 밴드’ 멤버들과 작업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저렇게 좁은 데서 연주를 할까 싶었는데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자리를 잡고 전인권이 중심에 앉으니 온전한 무대 하나가 완성된다. 친구가 와서 보고 ‘환상 속에 들어와 있구먼’ 했다는 그의 음악천국이다. 키보드에 녹음 장비, 컴퓨터까지 들어찬 그 알뜰한 연습실에서 전인권은 새 음악을 꿈꾸고 있다. 발전이 없는 밴드는 죽음이란 걸 알기에 다 같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연마하자고 다짐하며 연습실을 재정비했다. 약을 끊고, 아침마다 강된장 보리비빔밥으로 뱃심을 다잡으며 그는 앨범 제목처럼 ‘2막1장’을 열어가고 있다.
 
“밴드는 주관이에요. 주관이 없으면 오합지졸이죠. 주관이 없는 밴드 연주는 소음이고요. 요즘 음악은 화장이 심해서 줏대 없는 어릿광대 같아요. 연습을 제대로 많이 하면 얼굴에 균형이 잡혀요. 화장이 필요 없죠.”
 
그는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오데요’라며 곡 하나를 빨리 써야 한다고 했다. 제목은 ‘축하해요’다. ‘당신은 당신을 잘 몰라요. 당신은 강하고 귀한 사람인지 몰라요. 홀로 외로이 비바람 부는 바다에 사노라면…’으로 이어지는 노래는 그가 이 시대에 바치는 진혼곡이자 응원가다. 그 자신의 인생역정이 배어 있는 고백록이기도 하다. 가까웠던 여배우의 죽음, 유혹에 약한 심성 탓에 겪은 숱한 난관들로 전인권의 인생은 굽이굽이 찢기고 터져 나갔다. 그는 그럴 때마다 넘어져 울었다고 했다.
 
“또 넘어졌네요. 적폐 논란에 표절 시비까지 덮쳤어요. 광화문광장의 그날이 준 감동이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말입니다. 말문이 막힙니다.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죠. 하지만 이번엔 자신 있어요. 오히려 이 기회에 세계로 한번 날아보려고요. 5월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을 마치고 9일 선거를 하고 난 10일, 홀가분하게 독일로 떠날 예정입니다. ‘걱정말아요 그대’와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노래를 부른 독일 그룹 ‘블랙 푀스’ 멤버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고 함께 작업도 하고 싶어요. 오히려 그들과 음악 동지로 새 관계를 맺는다면 멋지지 않을까요.”
 
전인권은 오늘도 길 위에 있다. 4월 29일 ‘2017 영암 모터락 페스티벌’, 30일 ‘2017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 무대를 자신이 사랑하는 록 음악으로 달군다. 오는 6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의 하이라이트는 7월 1일 뉴욕 카네기홀 연주다.
 
“내 노래 중에 ‘나는 사랑하고 싶다. 영원한 숙제지만, 사랑이 진리라면 탐구하겠다’는 가사가 있어요. 손에 잡을 수 없는 진리와 사랑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목청 터져라 행진하자고 노래 부릅니다. 그게 다예요.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고 있죠. 과거가 어둡건 힘들었건, 미래가 밝지 않건 비가 내리건, 난 노래할 겁니다. 매일 그대와.”
 

전인권은 늘 맨발이다. 양말을 안 신는 그의 발은 굳은살투성이다.

전인권은 늘 맨발이다. 양말을 안 신는 그의 발은 굳은살투성이다.

전인권은 늘 맨발이다. 양말을 신지 않는다. 그의 발바닥은 온통 굳은살이 박여 두툼하다. 깎지 않은 발톱이 멋대로 자란 야생적인 발 풍경이 원시인의 풍모를 닮았다. 그는 “양말을 신으면 코가 막혀서”라고 했다. 바닥에 털버덕 앉아 기타를 튕길 때, 그의 맨발은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전인권의 맨발은 자신을 구속하는 복잡하고 불결한 모든 장치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 주는 상징 같았다. 온몸에서 뜨겁게 뿜어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그 열기를 땅으로 빼내는 혈이 가득한 발을 자연 상태로 놔두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육십 줄에 들어선 전인권은 여전히 ‘맨발의 청춘’이다. 맨발이란 말은 시원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운 그의 음악 여정을 함축한다. 그는 모든 걸 풀어헤친 맨발로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음악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신난다고 했다.
 
“난 맨발로 삽니다. 바닥과의 친화력이 강하죠. 난 맨 밑자리 가수입니다. 밑바닥이 좋아요. 거기선 모두 똑같고 모두 마음이 통해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 밀려날 수 없는 막장은 거룩하고 진정한 자리입니다. 난 그 밑바닥을 노래할 거예요. 맨발의 나라로 행진할 겁니다.” 
 

전인권  1954년 서울생. 본능과 독학으로 한국 록 음악과 청년 문화의 중심이 된 가수 겸 기타리스트. 고음역의 타고난 목청으로 세상을 향해 내지르듯 토해내는 반항적 목소리가 일품이다. 1979년 ‘따로 또 같이’의 멤버로 데뷔한 뒤 85년 밴드 ‘들국화’의 메인 보컬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사랑한 후에’ ‘걱정말아요 그대’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대표곡을 발표했다. 마약 사건, 요양원 생활 등 굴곡 많은 인생사로 부침을 겪었으나 음악의 힘으로 이겨내고 2014년 ‘전인권 밴드’를 결성해 앨범 ‘2막1장’을 발표하며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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