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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증거인멸 판단하는 영장심사가 최종심처럼 재판 결과 좌지우지

[탐사기획] 영장실질심사 도입 20년 功過
퀴즈 하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과 ‘구속영장 실질심사’의 차이는? 정답은 ‘없다’다. 같은 제도를 놓고 검찰은 전자로, 법원은 후자로 부를 뿐이다.

과거 검찰 조서만 보고 영장 발부
기존 관행 제동, 인권보호 기여

본안 재판과 다를 바 없이 심사
사실상 1심이자 최종심 돼버려

일반인 구속 땐 방어권 행사 못해
변호사 도움 한계, 무죄율 0.5%뿐

 
왜 그럴까. 탄생 배경에 답이 있다. 1997년 제도 도입 전만 해도 검찰은 구속의 주체였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은 서류만 형식적으로 검토한 뒤 대부분 발부했다. 하지만 구속 수사에 따른 인권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법원이 전면에 나섰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법관이 피의자를 직접 대면한 뒤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새 제도를 법원은 ‘실질심사’라 불렀다. 과거 ‘형식적’ 심사 관행에 대한 반성적 의미에서다. 반면 검찰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라는 용어를 썼다. 법관 심사 여부와 무관하게 구속의 주체는 여전히 검사란 쪽에 방점이 찍힌 작명이다. 제도 시행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영장실질심사 제도는 지난 20년간 피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한국 형사소송의 구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법전에서만 볼 수 있었던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구속영장 발부 건수는 96년 14만1540건에서 지난해 3만2369건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검찰의 영장청구 건수도 17만2358건에서 4만83건으로 줄었다. 검찰에 접수된 형사사건 중 구속자 비율을 나타내는 구속 점유율은 최근 몇 년간 1%대에 머무르고 있다. “제도의 득과 실을 따지는 게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인권보호와 사법의 객관성 담보 측면에서 큰 발전을 이뤄냈다”(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제도 도입 후 20년이 지나면서 공(功)이 아닌 과(過)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예상 못했던 부작용들이 생겨나면서다. 최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피의자 중 일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불거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현행 영장실질심사 제도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선 이후 개헌 논의와 맞물려 인신구속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본심’보다 더 중요해진 ‘예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지 3일 만인 지난달 30일에 열렸다. 심사 전 3일간 영장전담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10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심사 당일엔 8시간40분 동안 양측이 공방을 벌였다. 종료 후 판사가 8시간가량 추가로 검토한 끝에 이튿날 오전 3시 영장을 발부했다. 사실상 5일간 집중적으로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만 들여다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원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영장실질심사 제도의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구속을 신중하게 판단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여기에 너무 많은 노력을 쏟게 되면서 이 결정이 사회적으론 1심 또는 최종심인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상의 위상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즘 영장실질심사는 본안 재판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 엄청난 노력을 들이다보니 유무죄 입증에 가까울 정도의 증명을 요구하게 됐다. 신중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거기서 이미 재판이 끝나버리게 된다. 체포를 가지고 밤새 심사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영장실질심사가 사실상 1심이자 최종심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수사와 심리가 덜 된 설익은 상태의 결론이 형벌로서 기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까지 침해한다는 점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피의자는 검찰 조사받을 때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다. 혼자 가서 조사받고 온다. 이후 검찰에서 영장 청구했다는 연락이 오면 그때부터 변호사를 찾는다. 통상 이틀 뒤 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잡히는데 시간이 짧다 보니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신의 진술을 제외한 수사기록은 수사 진행 중이란 이유로 볼 수도 없다. 결국 제대로 대비 못한 상태에서 법정에 들어가고 ‘어버버’ 하다 구속된다. 영장실질심사 자체가 검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지는 경기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결과가 본안 재판부에 알게 모르게 예단을 준다. 변호사 입장에선 의뢰인이 구속되면 본안에서 무죄를 입증하기는 정말 어렵다.”
 
형사사건 변호사들은 이 같은 폐단이 정치인이나 재벌 오너가 아닌 일반인에게 보다 더 극명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유력인사들은 구속돼도 많은 돈을 들여 전관 출신 유력 변호사를 선임해 본안 재판에서 검찰과 동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구속되면 자신이 증거를 수집하지 못해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할 수 없는 만큼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데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중앙SUNDAY가 2000년 이후 대검 중수부 등에서 구속기소한 주요 사건 피의자 119명의 확정판결 유무죄 여부를 조사한 결과 무죄율이 10.1%에 달했다. 구속 단계에서의 혐의의 소명 판단이 오류가 많은 점을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일반인이 구속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율은 0.58%(2015년 기준)에 불과하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의 설명이다.
 
“구속되면 대부분의 일반인 피의자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걸 포기해 버린다. 계속 부인하면 양형에서 불이익을 받을 걱정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적당히 인정하고 양형을 좋게 받은 뒤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길 바란다. 검찰이 사실상 자백을 구속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결국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만 판단하면 되는 꼬리 격인 영장실질심사가 본체 격인 본안 재판 결과까지 결정해 버리는 ‘왜그 더 독’(wag the dog) 현상이 발생한다.”
 
영장실질심사의 ‘최종심’화 현상은 사법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 국민 마음 속에 ‘구속=유죄=형벌’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법상 구속은 피의자 처벌 절차가 아니다. 영장이 기각됐다면 피의자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얘기지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적 설명과는 달리 여론은 구속 여부를 두고 들끓는다. 실제로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태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법관들은 인터넷상에서 ‘신상털이’를 당하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출신 학교, 연수원 동기, 가족관계를 근거로 피의자 또는 피의자 측 변호사와 인연이 있다는 그럴듯한 ‘음모론’까지 어김없이 등장했다.
 
 
‘구속 올인’은 사법 불신 초래
한 판사 출신 로펌 변호사는 “구속 자체를 형벌처럼 인식하게 되다 보니 수사 단계에서 지나친 관심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재판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범죄자를 풀어줘서야 되느냐’며 그렇게 질타하던 여론도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올 땐 잠잠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법원이 일정 부분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장실질심사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법원은 기각 이유를 객관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한 줄로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없다’ 정도만 적는다. 왜 그렇게 봤는지는 내부적으로만 알 뿐이다. 명확한 기준을 모르니 다른 외부적 요인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교수는 “기준이 추상적이다 보니 당사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재량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거액을 들여 전관 변호사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도주 및 증거인멸만 따지면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할 이유가 없다. 도망갈 이유도 없고 특검이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나갔다. 증거도 많이 수집됐다. 그런데 한 번은 영장이 기각되고 다음엔 발부됐다. 무슨 기준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원님 재판’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영장청구 기준도 보다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상교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영장청구 권한을 검사가 독점하는 제도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거기다 구속 자체에 형벌 효과까지 부여하고 있다. 엄청난 권한인 만큼 일관된 예측가능성이 생기도록 검찰도 청구 기준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정비해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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