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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로 거듭난 중년의 로맨틱 판타지

‘문고리를 대체 어쩔 셈인가.’  
 
1990년대 최고의 로맨스 소설로 꼽히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뮤지컬화 소식을 접했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이다. 소설 원작보다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고, 차 문고리를 잡고 뛰쳐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메릴 스트립의 명연기에 큰 감동을 받았던 탓이다. 보는 이까지 가슴 조이게 했던 문고리 장면 없이 그 감동을 살려낼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낡은 픽업 트럭을 타고 광활한 옥수수밭을 달리며 미묘한 감정이 교차되고, 빨간 지붕이 덮인 문제의 다리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커다란 현장감을 비좁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문제는 상상력이었다. 15일 국내 초연 막을 올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런 1차원적인 우려들을 무색케 했다. 모든 예술엔 시성(詩性)이 있다고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뮤지컬은 예외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소극장 뮤지컬의 경우 곧잘 연극적 상상력이 동원되긴 해도 대극장 뮤지컬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이 무대는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미학을 추구하는 대극장에서도 시적이고 서정적인 감성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는 고스란히 뮤지컬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존재 이유가 됐다. 성공한 영상물을 무대화할 때 필요한 차별화 전략의 교과서적 전범이 되었달까.  
 
무대 디자인부터 은유적이었다. 허름한 헛간 같은 닫힌 공간에 외부로 커다랗게 뚫린 창은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가 꿈꾸는 자유이자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를 만나는 통로였다. 대극장 뮤지컬에서 통상적인 테크니컬한 무대와는 정반대로 소극장 연극처럼 앙상블들이 대소도구를 움직이는 아날로그한 무대였지만, 60년대 시골마을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에 녹아들 것 같은 편안한 첫인상 뒤로 놀랄만큼 창의적인 장면전환이 마법처럼 이어졌다.  
 
장면이 무대 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되는 방식에 스크린을 넘어선 무대만의 미덕이 있다. 프란체스카를 에워싸고 있던 살림살이가 걷히고 의자 두 개만 남은 바닥 중앙이 살짝 움직여 오케스트라 피트를 가로지르면 대형 스크린에는 덜컹이는 차안에서 바라보는 옥수수밭 풍경이 펼쳐지고, 어느 순간 양쪽에서 앙상블들이 밀고 온 난간들이 합쳐져 다리가 되지만 빨간 지붕은 관객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 식이다. ‘문고리’라는 망설임의 감각은 오히려 무대 위에 드넓게 펼쳐졌다. ‘만약 따라갔으면 어땠을까’라는 모든 관객의 상상을 마치 필름을 되감듯 현실과 상상이 오버랩되는 반전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다.  
 
음악도 흔한 대극장 스타일은 아니었다. 2014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토니상 작곡상과 편곡상을 휩쓴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은 잔잔했지만 소설과 영화에서 어딘지 찜찜했던 개연성과 설득력을 보충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오프닝부터 가슴을 저미는 우수에 찬 첼로 선율이 대변하듯, 간절히 원하는 것을 때론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쓸쓸한 인간사를 읊조리는 노래들이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다.  
 
사실 무대화에 있어 문고리보다 더 관건인 것은 배우였다. 소설과 영화에선 사랑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끝사랑’이기에 특별한 감동을 자아냈던 것이 아닌가. 사랑이 당연해 보이는 30대 팔팔한 배우들이 그 특별한 느낌을 살려낼 수 있을까.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관록의 대배우들이기에 ‘딱 4일간의 어처구니없는 사랑’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것 아닌었던가.
 
하지만 배우들의 생생한 호흡이 더해진 무대는 그런 제약을 잊게 했다. 거창한 세계관을 가진 시대극에서 주로 만났던 박은태와 옥주현이 처음으로 현대극 무대에서 평범한 남녀의 슬픈 사랑을 연기하는 모습은 일견 낯설게 다가왔지만,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섬세한 연기와 노래는 세대를 초월해 금지된 사랑의 안타까움만 고스란히 남겼다. 특히 역할에 완벽히 몰입돼 한없이 쓸쓸한 모습으로 프란체스카의 행복을 멀리서 지켜보는 박은태의 로버트 킨케이드는 모든 여심을 흔들 만 했다.  
 
뮤지컬 버전에만 있는 후일담도 백미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가슴 깊이 품고 산 오랜 세월을 노래 한 곡에 압축해 담아낸 것이다. 원작자인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이 이야기가 마치 실화인 것처럼 헷갈리게 만드는 프롤로그로 소설을 열었다. 모든 여성이 꿈꾸는 환상적인 로맨스로 보이지만, 어쩌면 누구에게나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암시로 읽혔다. 그런 평범한 여자의 일생을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무대의 진짜 미덕 아닐까.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프레인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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