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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꼭 묵직해야 하나요”

서울 금호동 가라지가게 전경. 사진 노경 작가

서울 금호동 가라지가게 전경. 사진 노경 작가

가라지가게 연희점

가라지가게 연희점

최근 서울 연희동의 한 주택가 차고에 간판 하나가 새롭게 달렸다. ‘가라지가게.’ 일명 차고 가게다. 들여다보니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벽면에는 얇은 나무 수납장이 빙 둘러쳐져 있다. 선반 위로 책과 작은 소품들이 올망졸망하다. 차를 파는 걸까, 소품을 파는 걸까.  
 

21㎜ 막대기로 만든 수납가구 ‘빼빼장’

빼빼체어

빼빼체어

온라인 홈페이지상의 가게 소개는 이렇다. “가라지가게는 가라지(Garage)에서 쓰임새가 좋고, 모양새가 검소하며, 알맞은 가격의 좋은 수납 가구들을 만들고 판매하는 가게입니다.” 그러니까 수납장을 파는 가게다. 가게 주인장은 건축가 장영철(47ㆍ와이즈 건축 소장)씨. 그는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고, 이듬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서울 성산동 소재)으로 서울시 건축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전도유망한 건축가다. 그런 그가 가구에 꽂혔다. 그는 왜 ‘딴짓’을 시작한 걸까.  

와이즈 건축 장영철 소장

와이즈 건축 장영철 소장

 
저성장 시대, 간결해지는 삶 따라 만든 빼빼장  
건축가들도 종종 가구를 디자인한다.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에 두기 위한 용도가 많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 즐겨 앉던 의자는 스위스 출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검은 가죽 소파(LC3)였다. 이 의자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랑 콩포르(Grand confort·위대한 편안함)’다. 잡스는 아이폰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전략적으로 이 의자에 앉았었다.  
 
빼빼장. 사진 노경 작가

빼빼장. 사진 노경 작가

장 소장이 디자인한 가라지가게의 수납장도 별칭이 있다. ‘빼빼장’이다. 생김새가 이름대로 빼빼하다. 21㎜ 두께의 자작나무 막대기로 만들었다. ‘빼빼장’은 그가 사무실용으로 직접 만들어 쓰던 수납장이다. 방문객들의 반응이 좋고, 스스로 제품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지난해 말부터 금호동 사무실 건물 주차장 한 편에 대형 보링기를 들여 놓고 본격적인 가구 제작에 뛰어 들었다. 두꺼운 원목 대신 나무 막대기로 만든 가구를 선보이며 그는 질문한다. “왜 가구는 묵직해야만 할까요.”  
 
장 소장은 “막대기는 기본적인 조형재료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버릴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막대기로 ‘빼빼장’‘빼빼책장’‘빼빼체어’‘빼빼테이블’을 만들었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다.  
 
그런데 무거운 책을 수납해야 하는 책장의 경우 흔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빼빼장’은 바닥과 천장에 딱 맞춰 제작해 준다. ‘높이 2340㎜ 이하, 맞춤 수납 공간’이다. 내구성을 갖추기 위해 고안한 방법인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공간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수납장’이라는 차별화된 컨셉트도 얻었다. 810(가로)×340(세로)×2340(최고 높이)㎜의 빼빼장 한 모듈의 가격은 13만9000원이다. 최고 높이로 했을 때 무게는 약 7㎏이다.  
 
“원룸 사는 싱글족의 경우 수납장 사기가 부담스럽잖아요. 무거워서 이사 다닐 때마다 짐 되기 일쑤죠.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요. 그런 싱글족을 타깃으로 만들었는데 오히려 빼빼장을 여러 개 사서 벽면 전체에 설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저렴하니까, 얇아서 공간이 좁아보이지 않으니까요.”
 
건축가로서의 욕구도 빼빼장 디자인에 반영됐다. ‘더 얇게 만드는 것’이다. 집으로 치면 튼튼하면서 더 얇은 집을 짓고 싶어하는 게 건축가가 가진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그는 “부재가 얇아질수록 시각적으로 쾌감이 극대화된다”며 “디자인할 때 안전하면서 얇게, 적절한 비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성장 시대에 삶 자체가 간결해지는 트렌드도 자연스레 풀어놨다. “무지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말했죠. 이것으로 충분하다고요.”
 
가라지가게만의 설치방법도 있다. ‘DIY(Do It Yourself)’가 아닌 ‘DIT(Do It Together)’란다. 고객이 드릴 들고 함께 작업하면 설치비를 깎아주는 시스템이다. 장 소장은 “캔맥주 나눠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라며 “건축현장과 다른 친밀감이 느껴져서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가라지가게 연희점 전경

가라지가게 연희점 전경

이케아와 무지의 기성품 조합해 완성
높이에 따라 빼빼장을 선택하고 설치했다면 골격까지 완성한 셈이다. 가라지가게의 흥미로운 장점은 변주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취향과 용도에 따라 소비자가 디테일을 완성하게 했다. 수납장 칸을 밑받침하는 상판의 경우 합판 또는 메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소재에 따라 지탱할 수 있는 무게가 다르다. 빼빼책장의 경우 상판을 깔지 않아도 책을 꽂을 수 있다. 옷걸이를 걸 수 있게 구멍 난 메탈상판도 있다.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수납장의 용도가 달라진다. 막대기로 만든 가구의 완성을 영민하게 열어놓은 셈이다.
 
이케아(IKEA)의 투명한 플라스틱 수납함 ‘삼라(SAMLA)’를 상판 대신 끼워넣어 쓰라고 대놓고 권장하기도 한다. 빼빼장의 사이즈는 애초 이 수납함의 폭에 맞춰 정했다고 한다. 빼빼체어의 경우 무지(MUJI)의 좌식의자 라지 사이즈를 프레임에 걸쳐 쓰도록 했다. 장 소장은 “가라지가게가 이케아, 무지와 마음대로 협업하고 있다”며 웃었다. 일종의 큐레이션이기도 하다. 그는 “두 브랜드의 다양한 물건 중에 간결하고 저렴한 물건을 골라 조합해서 사용자에게 제안해 보자고 아이디어를 낸 결과”라고 전했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조합해 가라지가게 방식으로 더 쓰기 좋고, 더 멋지게 만들어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 소장은 “빼빼장의 제작 방식이 간결해서 훗날 도면과 만드는 방법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뭘 먹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또다른 영역으로의 확장을 기대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납장 자체가 백그라운드잖아요. 가방, 책, 그릇 뭐든 올려놔도 되죠. 물건 하나를 팔아서 계속 먹고 살 수 있는 세계는 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고 철학을 공유하다 보면 그 너머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침 가라지가게 연희점이 있는 2층 주택 건물에는 6개의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독립출판서점 ‘유어마인드’, 카페 ‘비하인드’, 찻집 ‘사루비아 다방’ 등이다. 이들의 상품을 가라지가게에서 전시하고, 가라지가게의 빼빼장을 다른 가게에 설치해 놨다. 장 소장이 말하는 ‘공유와 확장’은 이미 시작된 듯 했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노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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