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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은 대학에서 완성될 수 없죠”

어떤 바람과 햇빛과 토양이 현재의 저 사람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드러나는 모습과 내면이 모두 경이로울 때 그렇다. 베이스 연광철(52)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쌓인다. 그가 꼭 세계 최정상의 베이스 가수여서만은 아니다. 절대 수월하게 이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JCC에서 두 번째 마스터 클래스 연 베이스 연광철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오른쪽)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오른쪽)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국립오페라단의 2013년 ‘파르지팔’, 2015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국내 오페라 팬들도 그를 만날 수는 있었지만, 주로 해외에서 활약하는 그의 국제적 위상을 국내에서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국내 음악전문가들은 그를 작곡가 윤이상,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국제무대 최고의 한국 성악가로 꼽는다. 1년 내내 메트, 라 스칼라, 로열오페라, 빈·파리·뮌헨·베를린 국립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극장을 오가며 국왕, 군주, 제사장, 아버지 역할을 노래한다.  
 
그 바쁜 일정 중에도 지난 7년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가 최근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나이 오십을 넘어서 안정적인 토대를 포기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특히 서울대 교수직을 접는다는 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연광철이기 때문에 놀랍지 않았다. 교수가 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그리고 25일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재능문화센터(JCC·관장 안순모)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JCC에서 무료 마스터클래스(24~27일)를 연 것이다. 이틀간 마스터 클래스를 참관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JCC 마스터 클래스 중에서

JCC 마스터 클래스 중에서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사전 음원 심사로 선발된 9명의 참가자가 나흘 동안 2회씩 그에게 배웠다. 발성과 호흡에 어려움이 있는 참가자에게는 발성 연습을 시키며 기본 원리부터 가르쳐주었고, 기본기가 탄탄한 참가자에게는 어떻게 하면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노래할 수 있는지를 일러주었다. “작품 속 인물이 된 것처럼 노래해야 하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이 지나치게 감정에 빠져 들어 먼저 울면 안 돼요. 감정을 콘트롤하면서 관객을 울려야죠.” “호흡을 어떻게 배분하고 끌고 갈지 미리 충분히 계산해야 합니다.” “악보에는 그렇게 적혀 있지 않은데…, 유튜브에서 들은 가수가 이 부분을 그렇게 불렀나보네요. 노래 잘 하는 가수들도 잘못 부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해석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자신이 스스로 준비하기 전에 처음부터 다른 가수들을 모방하면 틀린 것까지 따라하게 됩니다.”  
 
그의 조언은 직설적이고 간결하며 매번 정곡을 찔렀다. 복잡한 표현을 쓰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았고, 이해하기 쉽고 유머러스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놀랍게도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참가자들이 너무도 빠르게 발전하는 게 보였다. 발성과 호흡, 표현력과 가사 전달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 소프라노 참가자는 늘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노래를 불러 온몸이 아팠는데, “횡격막과 호흡이 있는 곳에 집중하고 성대를 경직시키지 말라”는 그의 시범과 조언에 그 자리에서 자연스런 발성법을 터득하고는 “노래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  
 
2012년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린 연광철 독창회. 반주는 김덕기.

2012년 고양아람누리에서 열린 연광철 독창회. 반주는 김덕기.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중앙 뒤쪽)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중앙 뒤쪽)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 전념 위해 서울대 떠나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자랐다. 그 흔한 동화책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노는 일이 재미였다. 부지런한 농부인 아버지는 노래에 맞춰 퉁소도 부셨다. 할아버지께는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러면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알게 됐고 한시를 읽었다. 노자와 장자도 읽었다.  
 
충주공고 3학년 때 건축설계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낙방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노래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청주대 음악교육과 진학을 위해 부모님은 한 마리뿐인 소를 팔아야 했다. 힘겹게 도착한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예술학교의 교수가 단박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해.” 그의 추천으로 베를린 국립음대로 옮겼다.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무대에 알려져 94년부터 2004년까지 베를린 국립오페라 전속단원으로 활동했고, 96년에는 ‘꿈의 무대’라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가수가 된 뒤 뭐가 달라졌을까. 일상이 달라진 건 없단다. 여행가방 싸서 돌아다니는 건 똑같다고. “하지만 무대에서 책임감이 커집니다. 젊은 가수들이 제가 과거에 하던 역을 맡아 준비할 때 제 노래를 들어본다고 말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우선 스스로 그 배역을 충분히 공부해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남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해요. 처음부터 남의 노래를 들으면 은연중에 똑같이 하게 되니 개성이 없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정상의 베이스가 된 지금도 스스로 최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같은 배역을 노래해도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지휘자의 의도와 제 의도가 공연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나를 생각하죠. 공연 하러 오페라극장에 가면 리허설 기간 동안 계속 빈 연습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1년 후 공연할 작품도 미리 준비하구요. 파바로티나 도밍고의 노래에도 부족한 점이 있듯, 누구든 고칠 점이 있고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어요. 계속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과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서울대를 그만 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연주에 전념하고 싶어서였지만, 성악은 대학에서 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시간수를 채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회의도 작용했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된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문학·음악·미술·건축·사회 분야 등의 다양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에 와 보니 학생들 공부하는 내용이 고교 때 입시준비 공부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1학년 때는 이탈리아 가곡, 2학년 때는 독일 가곡. 이런 식으로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야 하죠. 하지만 독일에서는 독일 가곡에 관심이 있으면 2년 동안 그것만 해도 돼요. 가르치는 쪽이 아니고 배우는 쪽 중심의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독일 가곡을 공부하면 슈베르트 가곡의 시를 쓴 빌헬름 뮐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시 유럽의 정치 상황은 어땠고 젊은이들은 뭘 고민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김치는 배추와 소금으로 만든다’라는 기본만 배우고 있는 셈이죠. 나박김치, 물김치, 갓김치 등 다른 김치도 많은데. 커리큘럼 따라가는 데만 초점을 두면 정작 무대에서 필요한 건 못 배웁니다.”  
 
교수로 학생을 만나며 괴로웠던 건 “결국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희망을 줘서 계속 학교에 다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놀랐던 것은 학생이 원하는 방향의 공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또 무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았죠.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 역을 맡았을 때 연출가는 제 키가 작으니 이렇게 연기하는 것이 좋다, 동선을 왜 그렇게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논리적으로 가르쳐줬거든요.”  
 
JCC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열게 된 것도 배움의 열망이 있는데 자격이나 조건 때문에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학생뿐 아니라 직업 음악인에게도 문을 열었다. 이 마스터 클래스가 아카데미 형태로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공개적으로 지도 받는 일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아서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에서 연광철이 회상에 잠긴 구르네만츠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에서 연광철이 회상에 잠긴 구르네만츠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대지와 자연에서 힘을 얻는 예술가
18년간 함께 한 바이로이트에서 “독일인 가수보다 정확한 독일어 발음”이라는 찬사를 받아온 그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도 완벽하게 전달한다. 이 다양한 언어를 어떻게 공부했을까.  
 
“프랑스어는 바리톤 제라르 수제의 LP판으로 배웠어요. 집에 전축이 없어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에 복사해 워크맨으로 들었죠.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먼저 텍스트를 구해 끊임없이 반복해 읽은 후 그 다음에 악보를 보며 음악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바그너 대본의 작센 사투리까지 독일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뜻을 파악했죠. 오페라 텍스트 외에 작품 분석에 도움이 될 원전과 관련서적도 찾아 읽었습니다.”
 
최근 빈 국립오페라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과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역을 노래한 그는 “이 역할들을 수 없이 맡아왔지만 구르네만츠보다 마르케 왕 역이 더 매력있다”고 털어놓았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구르네만츠에 비해 마르케는 사랑과 분노 등 다양하고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발성, 호흡, 표현 등 갖가지 요소를 생각하며 초집중해야 했지만, 이제는 무대에서 훨씬 자유로워졌어요. 연출가들도 제 연기를 재미있어 하죠. 연출가가 정한 기본 동선을 따르긴 해도, 다른 동료들이 안 하는 즉흥연기를 보여주니까요.”  
 
한 번도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선 어릴 때부터 1등이 되는 데 너무 집착해서 가수들도 그런 결심으로 출발하는데, 그 생각이 발목을 잡죠. 노래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노래하지 않으면 못 살겠거든 성악을 계속하라’고 합니다. 무병이 들어 무당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는 심성이 웅숭깊다. 자신의 역할을 다른 가수에게 뺏겨도 분노하지 않는다.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면 결국 기회가 온다는 믿음에서다. “당장 불이익이 있어도 신중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합니다. 베를린 전속가수로 있던 99년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에서 제가 작은 역할과 동시에 주인공 베르트람 역 커버(주인공 유고시 대타)를 맡았거든요. 당시 이탈리아의 유명 베이스 로베르토 스칸디우치가 베르트람 역이었는데, 분량이 엄청난 이 역을 그리 열심히 연습하지 않더군요. 저는 커버였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요. 결국 공연 2주 전에 그가 아프다면서 그만두게 되어 제가 맡을 수 있었죠. 이 공연이 제게 중요한 도약의 포인트가 됐습니다.”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맡은 연광철이백조를 죽인 파르지팔에게 훈계하고 있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맡은 연광철이백조를 죽인 파르지팔에게 훈계하고 있다. 사진 국립오페라단

2008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2008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한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로 출연한 연광철. 사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한국 오페라 발전하려면 관객 교육부터”
뉴욕 타임스의 극찬을 받으며 꾸준히 메트에 서 온 연광철은 작년 가을 시즌에는 ‘돈 조반니’와 ‘윌리엄 텔’을 번갈아가며 22회나 공연했다. 올해도 파리국립오페라 ‘리골레토’의 스파라푸칠레, 시드니의 ‘파르지팔’, 베를린의 ‘마이스터징어’, 드레스덴의 ‘오네긴’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11월 김선욱의 피아노 반주로 가곡 연주회를 연다.
 
그는 한국 오페라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우선 관객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객이 공연 수준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직접 운영도 성사돼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자연스럽게 상주해 함께 계획할 수 있으니 공연의 질이 높아지고, 캐스팅이 2, 3년전에 이루어져 해외에서 좋은 가수들도 데려올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귀국해 고향에 가서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과수원에 가서 사과꽃 따는 일을 거들었다. 꽃이 너무 많으면 사과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 나무가 지탱을 못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자연 속에서 일하며 어린 시절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요. 저를 원하는 극장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그 뒤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어요.”  
 
하얀 사과꽃을 따고 있는 세계적인 베이스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의 경이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바로 어릴 때부터 그와 한 몸이었던 튼튼한 대지와 자연에서 나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연광철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노래했던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가 그러했듯. ●
 
 
글 이용숙 음악 평론가 rosina@chol.com,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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