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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지 않은 깊은 장맛, 말 그대로 밥도둑

간장게장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맞다. 감칠맛 덩어리다. 약간 비싼듯하지만 먹고 나면 본전 생각이 전혀 안 난다. 산낙지데침은 메뉴에 없지만 부탁하면 친절하게 해준다.

간장게장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맞다. 감칠맛 덩어리다. 약간 비싼듯하지만 먹고 나면 본전 생각이 전혀 안 난다. 산낙지데침은 메뉴에 없지만 부탁하면 친절하게 해준다.

“얼릉 밥할 테니까 우선 이거 좀 먹어 봐라. 아침에 남광주 시장에 가서 싱싱한 놈 사왔으니까 맛있을 거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99> 서백자의 간장게장

고향 집에 내려갈 때면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산 낙지를 구해놓고 기다리시다가 바로 데쳐서 내놓으셨다. 입맛 까다로운 아들이 냉동 낙지를 싫어한다고 일부러 멀리 있는 큰 시장에까지 가서 구해 오신 것이다. “야들야들 하지야?” “이전에 담아 놓은 자두주가 어째 맛이 들었는지 모르겄다. 맛 좀 볼래?”  
 
그래… 집에 왔구나, 내 어머니의 집,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나의 모든 것이 그 존재만으로도 그냥 최고인 곳이다.  
 
지방 출신 ‘촌놈’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었다. 그럴 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기다려주고 품어주던 고향 집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음식이 다 있었다. 내 입맛의 기준이 되었던 어머니의 음식이니 나에게는 최고의 음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세상을 헤쳐갈 근육을 얻었던 것처럼,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으면서 객지에서 부딪히며 살아갈 힘을 또 얻곤 했다.
 
그 시절, 고향 집 생각이 날 때면 그 ‘야들야들한’ 낙지가 생각나곤 했는데, 서울에서는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당시 서울 식당에서는 냉동 낙지가 표준이었다. 산낙지를 파는 곳이 드물었고, 맛 좋은 전라도 뻘낙지는 더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한 곳을 찾았다.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전라도 목포 출신 주인 할머니가 싱싱한 해산물로 ‘개미(곰삭은 맛)’있는 음식을 하시고 있었다. 원하던 낙지가 거기 있었다. 원래 메뉴에는 산낙지데침은 없었지만 부탁을 하면 일부러 해주셨다.
 
어느 날 그 곳에 들렀는데 음식 맛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달라도 분명히 달랐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할머니가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개업을 하신 것이었다. 수소문을 해서 찾아가 봤다. 사정인즉, 할머니의 동생이 원래 주인이었는데 그동안 본인이 대신 맡아서 하시다가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독립을 하신 것이었다. 나야 이분의 음식 맛에 반해서 단골이 된 것이었으니 당연히 따라 옮겼다.  
 
아들이 하는 회사를 보고 싶다고 어머니가 서울에 오셨을 때도 이 집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했다. 간장게장을 사드렸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다. 고향 광주에는 거의 없는 메뉴다.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아서 고향에 내려갈 때면 가끔 사들고 가곤 했다.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입원하셨을 때 입맛을 찾으시라고 사 들고 내려갔던 것도 이 집 간장게장이었다. 기력이 없어서 힘들게 드시면서도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머니께 사드린 마지막 음식이 되었다.  
 
▶서백자의 간장게장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42 전화 02-552-2254 휴일은 따로 없다. 간장게장 1마리 3만원 연포탕 3만5000원

▶서백자의 간장게장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42 전화 02-552-2254 휴일은 따로 없다. 간장게장 1마리 3만원 연포탕 3만5000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한참 그곳을 찾지 않았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날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오랜만에 다시 찾고 보니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다. 상호도 바뀌었다. 지금 삼성동에 있는 ‘서백자의 간장게장’이다. 서백자(75) 할머니가 두 딸, 노경(49) 노민(48)씨의 도움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다.  
 
이 집 간장게장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것 중에서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다. 질 좋은 꽃게와 짜지 않고 구수하면서 감칠맛 넘치는 장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 장맛의 비결은 ‘접장’에 있다. 게를 담았던 장 국물에 간장과 육수, 야채수 등을 계속 첨가해 가면서 다시 끓여 사용하는 것이다. 서 할머니가 처음 게장을 담을 때 사용했던 장을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오고 있으니 벌써 몇십 년이다. 이렇게 만든 장은 아주 풍부하고 깊은맛이 난다. 과한 짠맛 대신에 꽉 들어찬 감칠맛이 느껴지는 것이 일품이다. 그냥 수저로 떠먹어도 맛있고, 밥을 비벼 먹으면 순식간에 두 그릇이 없어지는 마술이 벌어진다.  
 
이곳 음식은 간장게장 외에도 다 맛이 깊다.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도 있고,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시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일하던 주방장이 지금도 할머니 곁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도 음식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두 딸이 이제는 밑반찬도 하고 요리도 거들면서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음식은 우리의 삶이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인생의 이야기들이 음식과 함께 엮이면서 쌓여 간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곶감 빼먹듯 하나씩 꺼내보면 그 추억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향 집, 어머니의 음식, 모두 다 그립다. 그리고 어머니는 더 그립다. ●
 
 
주영욱 :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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