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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국민 대통합이라는 이데올로기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최근 우리 삶의 최대 관심은 대선이다. 요즘 진행 중인 대선주자들의 토론회를 보면 그 내용의 수준은 차치하고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계급장 떼고 동등한 자격으로 열린 공간에서 공공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기 때문이다. 여러 대선후보가 현실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후보가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국민 ‘통합’에 대한 논의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심각한 분열의 역사를 경험해온 나라의 대선후보들이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통합의 방식으로 연정(聯政), 합치, 협치 등을 언급하는 것도 불가피한 일처럼 보인다.
 

국민 대통합의 이유와 방식을 고민할 때
분열의 이유로 불일치를 두려워는 말아야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통합에 대한 발언들을 듣다 보면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국민 통합이라는 명제가 아무런 질문도 없이 당위로만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통합이 그것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자세한 논의도 없이 수행해야 할 과제로만 내던져질 때 그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대통합이 그토록 중요한 숙제라면, 그럴수록 더욱더 면밀하게 그것의 이유와 목적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1970∼80년대 군부독재의 과정을 통해 매우 혹독하게 국민 통합 혹은 화합의 정치학을 경험했다. 그러나 동질성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는 공동체 내의 다양한 주장들을 철저히 배제했으며, 통합과 단결의 이름으로 ‘다른 목소리들’을 억압했다. 랑시에르(J. Rancière)에 의하면 ‘일치(consensus)’는 정치가 아니라 ‘치안(police)’이다. 그에 의하면 정치란 ‘불일치(dissensus)’를 생산하는 것이고, 다른 견해들 사이의 충돌로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지난 세월에 경험했던 국민 통합은 사회적 ‘동의’가 아니라 치안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합’의 이름으로 위장된 가장 큰 ‘분열’과 갈등을 경험했다. 서로 다른 견해들이 공공영역에서 자유롭게 부딪히는 것, 그리하여 ‘유쾌한 상대성’이 살아나며, 합당한 과정을 거쳐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따라서 ‘분열’이라는 이름으로 위기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다양성을 죽이는 것을 국민 통합이라 부르면 안 된다. 배제의 원리를 먼저 가동시키면서 대통합을 주장하는 모든 입장들은 이런 의미에서 가짜다. 선(先)배제-후(後)통합의 원리는 단결의 이름으로 치안을 가장하는 구시대 독재 정권의 논리다. 정책보다 이념의 날을 세우는 담론들, 특히 낡아빠진 색깔론 같은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그것은 애국이라는 동질성과 통합의 판타지로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발톱을 감춘다.
 
또 하나 ‘문제적인’ 통합은 바로 원칙 없는 통합이다. 국가 단위의 통합은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원칙을 벗어나거나 배제한 통합은 그 내부에 더 큰 분열의 화약고를 가지게 된다. 국민 통합의 엄정한 기준과 원칙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합치나 협치를 주장하는 것은 정치를 ‘삶’이 아니라 ‘기술’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영혼 없는 기술로서의 정치는 소수의 권력자를 제외한 다수의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것은 오로지 권력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정치이며 다중(多衆)의 이해관계에 관심이 없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대선주자는 국민 통합과 합치, 그리고 그것의 당위성을 이야기할 뿐, 그것의 이유와 원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통합론이 설득력이 없고 실체 없는 유령의 담론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통합에 관심이 없는 이상한 현실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영역은 그 자체 불일치의 영역이다. 분열이라는 이유로 불일치를 두려워할 때 진정한 동의와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렵고 더디더라도 논의할 것은 논의하고 따져야 할 것은 따져야 한다. 이런 과정상의 정의(正義)를 생략한 통합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분열의 지뢰밭을 가져올 것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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