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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우리는 우리를 믿고 있나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의 북한대표부에선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핵대사와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기본합의문’에 서명했다. 필자는 100여 명의 내외신 기자와 함께 현장을 지켜봤다. ‘북한의 핵시설 동결,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 공격 방지, 미·북 관계 정상화, 남북대화 지속’이 담긴 기사를 서울로 전송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북한이 제공한 병 속에 뱀이 든 황구렁이술과 불로술을 놓고 기자들이 박수 치며 축하하던 장면도 또렷이 남아있다(아무도 마시지는 않았음). 한국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하던 한반도 군사 충돌의 위기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는 줄 알았다.
 

북폭 위기에도 사회는 ‘태평’
트럼프 더 믿는 서글픈 신세

그해 여름, 한반도는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과 핵 개발 강행으로 긴장감이 흘렀다. 라면이 동나고 국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전쟁 공포에 떨었다. 미국은 6월 크루즈 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추진했다. 100만 명이 넘는 미군·한국군·민간인 사상자, 천문학적 경제 피해를 예상한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가 보고됐다. 훗날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회고록에 “막대한 피해 규모에 관해 정신이 번쩍 드는 보고를 받았다”며 폭격 카드를 접었던 이유를 적었다.
 
2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7년 4월, 2차 북폭설(北爆說)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94년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 분위기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이 풍전등화에 놓였지만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점철된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인가.
 
세간에는 낙관론이 떠돈다. 첫째, 국내에 체류하는 미국인 때문이라는 논리다. 30만 명의 미국인을 위험에 노출시킨 채 북한을 폭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둘째, 100만 명의 한국 내 중국인이 인계철선(引繼鐵線)이 된다는 주장이다. 중국과의 개입 명분과 충돌을 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셋째, 북한의 반격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으로 시리아 정부군을 응징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가(IS) 근거지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GBU-43을 투하한 미국의 힘을 북한은 목격했다. 보복 공격 시 김정은은 북한 초토화와 정권 교체까지 각오해야 한다.
 
이런 희망적 판단에는 미국이 지켜주리라는 순진한 믿음이 깔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미 상원의원과 유엔 이사국 대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핵은 세계의 큰(big) 문제”라며 설득했다. 칼빈슨 항모 전단과 핵추진 잠수함 미시간함을 급파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전격 배치했다. 트럼프만큼 한국 안보를 챙기는 미국 대통령은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청구서는 날아오겠지만 내가 발 뻗고 자는 게 트럼프 덕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트럼프는 광인전략(madman strategy)을 쓰고 있다.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덤비지 말라는 이 전략이 북한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물리치면 다행이다. 그러나 “북한이 ‘물고기도 죽고 어망도 터지는’(魚死網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94년에는 불안·걱정·동요가 있었다. 북한의 핵무기가 없던 시절이라 재래식 전투에 맞서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지킬지 고민했다. 2017년에는 평온·차분·침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핵무기가 동원되면 94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피해가 뻔히 보이는데도 태평하다. 94년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허구한 날 포용정책과 퍼주기, 색깔론과 종북론 논쟁으로 세월을 허송했다. 자강안보론의 공허한 구호만 요란했을 뿐 미국에 기댄 안보불감증을 불치병으로 만들었다.
 
외과적 선제타격을 예고 하고 감행하겠는가. 트럼프는 전쟁 시뮬레이션을 만지작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 인권과 주적(主敵) 논란이나 벌이는 한국이 끼어들 틈은 좁다. 내 운명을 미국에 의탁하는 서글픈 신세를 바꿔줄 리더십을 갈망한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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